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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메이저 왕관’ 쓴 축구의 신

중앙일보 2021.07.12 00:03 경제 6면 지면보기
아르헨티나 주장 리오넬 메시(가운데)를 비롯한 선수들이 코파 아메리카에서 우승한 후 환호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아르헨티나 주장 리오넬 메시(가운데)를 비롯한 선수들이 코파 아메리카에서 우승한 후 환호하고 있다. [AP=연합뉴스]

경기 종료 휘슬이 울리자, 아르헨티나 주장 리오넬 메시(34)는 그라운드에 무릎을 꿇고 주저앉아 흐느꼈다. 동료들이 달려와 그를 얼싸안았다.
 

메시, 아르헨 대표로 코파 첫 우승
득점왕·도움왕·MVP ‘신화 완성’
“스페인인” 비난 뚫고 투혼 선보여
“아름다운 광란, 아르헨티나는 챔프”

11일(한국시각) 2021 남미축구선수권대회(코파 아메리카) 결승전이 열린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마라카낭 경기장. 아르헨티나는 라이벌 브라질을 1-0으로 꺾고 28년 만에 우승했다. ‘축구의 신’이라 불리는 남자가 마침내 조국 아르헨티나에 우승 트로피를 안겼다. 메시 커리어의 유일한 약점을 떨쳐낸 순간이었다.
 
그동안 일부 아르헨티나 축구 팬은 메시를 ‘스페인인’이라고 불렀다. 아르헨티나 태생 메시는 13세 나이에 2000년 바르셀로나(스페인) 유스팀에 스카우트됐다. 그는 바르셀로나에서 스페인 프리메라리가 10회, 유럽 챔피언스리그 4회 등 각종 대회에서 34회의 우승을 달성했다. 축구계 최고 권위 상인 발롱도르(올해의 선수상)를 역대 최다인 6차례나 수상했다. ‘축구의 신’이라고 불려도 모자람이 없는 업적이었다. 유럽에서는 분명 그랬다.
 
그러나 메시는 아르헨티나 대표팀 유니폼만 입으면 작아졌다. 2005년 20세 이하(U-20) 월드컵과 2008 베이징올림픽 등 연령별 대회 우승이 전부였다. 지난 16년 동안 성인 메이저 대회에서 조국을 우승으로 이끌지 못했다. 주요 대회에 나설 때마다 메시는 “아르헨티나에 우승을 안기겠다”고 약속했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결승전에서 지고 눈물을 흘리는 브라질 네이마르를 위로하고 있는 메시. [AP=연합뉴스]

결승전에서 지고 눈물을 흘리는 브라질 네이마르를 위로하고 있는 메시. [AP=연합뉴스]

이번 대회 전까지 그는 월드컵에 4회, 코파 아메리카에 5회 출전했다. 월드컵에서는 2014 브라질월드컵 준우승이 최고 성적이었다. 코파 아메리카에선 준우승만 세 차례 했다. 2007년 처음 출전해 결승전에서 브라질에 0-3으로 졌다. 2015·16년 결승에선 칠레를 두 번 연속 만나 모두 승부차기로 패했다.
 
거듭 실망한 아르헨티나 팬은 “스페인에서만 잘하는 메시는 아르헨티나인이 아니다”라고 조롱했다. 메시는 2016년 자신의 승부차기 실축 탓에 우승에 실패하자, 무력감을 이기지 못하고 대표팀 은퇴를 선언하기도 했다. 그러나 아르헨티나 대통령을 비롯해 여론의 강한 반대로 이를 번복했다.
 
1987년생 메시는 다음 코파 아메리카 대회 때 37세가 된다. 이번 대회가 사실상 마지막 출전이었다. 그는 개막을 앞두고 “아르헨티나는 코파 아메리카에서 항상 좋은 성적을 거뒀지만, 우승은 못했다. 이번엔 꼭 하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많은 전문가들은 특급 골잡이 네이마르(29)가 이끄는 개최국 브라질이 대회 2연패를 할 것으로 내다봤다. “30대 중반에 접어든 메시의 시대는 끝났다. 네이마르의 대관식이 열릴 것”이라는 예상이 많았다.
 
메시는 결국 자신의 신화를 완성했다. 최고의 활약으로 아르헨티나에 첫 우승을 선물했다. 4골 5도움을 기록했다. 득점과 도움 부문 모두 1위. 대회 최우수선수(MVP)에 뽑혔다.
 
메시의 기록들

메시의 기록들

공격만 잘 풀어낸 게 아니다. 매 경기 사력을 다해 뛰었다. 콜롬비아와 4강전에선 상대 수비의 집중 태클에 수 차례 쓰러졌다. 양말엔 피가 맺혔지만, 고통을 참고 뛰는 ‘핏빛 투혼’을 발휘했다. 결승에선 후반 추가 시간에도 몸을 던지는 슬라이딩 태클로 상대 공격을 저지했다. ‘축구의 신’이 발휘한 인간적인 집념을 본 동료들도 포기하지 않고 하나로 똘똘 뭉쳤다.
 
이날 결승전은 경고 카드를 9장(아르헨티나 5장, 브라질 4장)이나 주고받을 만큼 치열했다. 아르헨티나는 전반 21분 하프라인 후방 롱패스로 이어진 역습으로 결승 골을 터뜨렸다. 로드리고 데 파울(27)이 브라질 페널티박스 우측을 파고드는 앙헬 디마리아(33)에게 롱패스를 찔렀다. 디마리아는 왼발 로빙슛으로 브라질 에데르송(28) 골키퍼 키를 넘겨 골망을 흔들었다.
 
아르헨티나는 디마리아 골을 지켜 1993년 대회 이후 28년 만에 통산 15번째 대회 챔피언에 올랐다. 우루과이와 대회 공동 최다 우승국이 됐다. 메시는 풀타임을 뛰며 상대 수비를 헤집었다. 경기 후 동료들은 메시를 헹가래 치며 축하했다. 메시는 휴대폰 영상 통화로 가족에게 우승 메달을 자랑했다. 이를 바라보던 네이마르가 아쉬움의 눈물을 흘리자, 메시가 다가가 먼저 안아주며 위로하는 따뜻한 장면도 연출했다. 두 선수는 2013년부터 2017년까지 바르셀로나에서 한솥밥을 먹은 동료이자, 라이벌이다.
 
이어 열린 시상식에서 우승 트로피를 받은 메시는 라커룸으로 들어갈 때까지 잠시도 내려놓지 않았다. 동료들도 트로피가 탐났겠지만, 어린아이처럼 기뻐하는 메시에게 양보했다. 영국 BBC는 “오랜 기다림이 오늘 끝났다”며 메시의 우승을 축하했다. 미국 ESPN은 “세계 축구계가 손꼽아 기다리던 순간”이라고 전했다. 메시는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이 얼마나 아름다운 광란인가. 환상적인 일이다. 신이여 감사합니다. 우린 챔피언”이라고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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