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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계모와 팥쥐 어찌 됐을까…‘콩쥐팥쥐’의 끔찍한 결말

중앙일보 2021.07.07 10:00

[더,오래] 권도영의 구비구비옛이야기(63)

흔히 동화적 환상을 얘기할 때, ‘그리고 그들은 오래오래 행복하게 잘 살았답니다’고 하는 ‘Happy ever after’의 행복한 결말을 떠올리곤 한다. “~and they all lived happily ever after.”
 
“A long time ago~” 옛날 옛적,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 즉 지금은 아닌 과거의 어느 때 왕자와 공주가 살고 있었고, 그들이 마녀의 저주를 받기도 하고 괴물과 싸우기도 하면서 이런저런 시련을 겪다가 결국 그 모든 어려움을 물리치고 둘이서 결혼해 행복하게 오래오래 잘 살았다는 이야기. ‘Happy ever after’에 대해 정말 사람들은 그걸 바라고 믿고 있는 걸까, 어떤 생각들을 갖고 있을까 궁금해 인터넷 검색창에 대뜸 입력해 보았다. 유명한 아이돌의 팬미팅 행사 제목이 이거였나 보다. 온통 그들 소식부터 떠오른다. 아이돌 그룹과 팬들이 ‘그 후로도 오랫동안’, ‘행복하게 오래오래’ 함께할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행복한 일이기도 하겠다. 내가 좋아하는 그들이, 내가 좋아하는 그 모습 그대로 있을 수 있다면 더욱 좋겠고, 그들도 언젠가는 나이를 먹고 지금 같은 모습과는 사뭇 달라지기도 할 테지만, 진짜 진한 사랑을 갖고 있다면 그런 모습마저도 함께하며 보낼 수도 있겠다. 내 주변에도 한 연예인의 팬클럽 활동을 벌써 이십 년 넘게 하고 있는 이가 있다.
 
위기에 처해 있던 공주를 왕자가 구하고 결혼해 행복하게 오래오래 잘 살았다고 한다. 그 과정에서 대체로 공주는 특별히 하는 일이 없었기에, ‘백마 탄 왕자’의 환상이 이런 이야기와 쌍으로 함께 드러나기도 한다. 그렇다 보니 과연 정말 그들은 그 후로도 오랫동안 행복하게 살았을까 질문을 던지며 실제 이들의 결혼 생활을 상상해 보기도 한다.

 
디나 골드스타인이라는 사진작가는 동화속 공주의 결혼 이후의 삶을 상상했다. 백설공주는 육아에 지쳤고, 신데렐라는 알코올중독자가 되었으며, 잠자는 숲속의 공주는 양로원에 가서도 잠만 자는 바람에 남편은 평생 무료한 삶을 보내야 했다는 것이다. [사진 디나 골드스타인 웹사이트]

디나 골드스타인이라는 사진작가는 동화속 공주의 결혼 이후의 삶을 상상했다. 백설공주는 육아에 지쳤고, 신데렐라는 알코올중독자가 되었으며, 잠자는 숲속의 공주는 양로원에 가서도 잠만 자는 바람에 남편은 평생 무료한 삶을 보내야 했다는 것이다. [사진 디나 골드스타인 웹사이트]

 
디나 골드스타인이라는 사진작가는 동화 속 공주의 결혼 이후의 삶을 이렇게 상상하였다. 백설공주는 육아에 지쳤고, 신데렐라는 알코올중독자가 되었으며, 잠자는 숲속의 공주는 양로원에 가서도 잠만 자는 바람에 남편은 평생 무료한 삶을 보내야 했다는 상상력이 재미있다. 행복하게 오래오래 잘살았으면 좋겠지만 결혼은 현실이고, 현대의 복잡한 세상은 공주의 순수한 아름다움을 영원히 유지하도록 내버려 두질 못한다.
 
그런데 신데렐라의 행복한 결혼은 계모의 구박을 받으며 고생하던 신데렐라가 무도회에서 왕자의 눈에 띈 덕분에 그저 이루어진 것만은 아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신데렐라는 월트 디즈니 스튜디오에서 1950년에 제작한 애니메이션의 이미지가 큰 자리를 차지한다. 디즈니의 ‘신데렐라’는 프랑스의 작가 샤를 페로(1628~1703)의 판본을 바탕으로 한 것이다. 신데렐라 이야기는 전 세계적으로 수많은 판본이 존재하는데,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독일의 그림 형제(야콥 그림, 1785~1863. 빌헬름 그림, 1786~1859)가 정리한 이야기도 있다. ‘부엌데기’ 혹은 ‘재투성이’로 변역될 만한 ‘아셴푸텔(Aschenputtel)’이다.
 
그림 형제의 판본에서는 신데렐라가 왕자와 행복한 결혼식을 올리는 장면에서 그저 끝나지 않는다. 그러기엔 아직 처리하지 못한 인물이 남아 있다. 계모와 두 언니다. 신데렐라(Cinderella)라는 영어 이름은 프랑스어의 샹드리용(Cendrillon)을 잘못 표기한 것이라고 한다. ‘Cinderella’의 ‘Cinder’는 그을음, ‘Cendrillon’의 ‘Cendre’는 잿더미와 연관된다. 실제는 더러운 상태를 뜻하는 그을음보다는 완전하게 연소되어 깨끗한 가루 상태인 재가 이 이야기 주인공의 이름으로서 비유적 의미를 갖는다는 것이다.
 
그림 형제의 판본에서 신데렐라는 아버지에게 부탁해 얻은 나뭇가지를 어머니의 무덤에 심고 매일 찾아가 울며 기도를 했다. 그 눈물로 나뭇가지는 자라났고, 나무에는 작고 하얀 새가 날아와 신데렐라가 바라는 것을 가져다주기도 했다. 계모가 어려운 일을 시켰을 때, 신데렐라가 무도회에 가고 싶어 할 때 도움을 주는 것도 이 새들이었다. 새들은 신데렐라의 결혼식에 참석한 두 언니의 눈을 하나씩 쪼아먹었다. ‘그리하여 사악한 마음과 그릇된 행위로 인해 그들은 평생 앞을 못 보고 사는 벌을 받아야 했다’는 결말을 갖게 되는 것이다.
 
두 언니는 왕자가 유리구두의 주인을 찾아다닐 때, 신발이 발에 맞지 않으니까 발가락을 잘라내기도 하고 발뒤꿈치를 잘라내기도 한다. 그렇게 억지로 유리구두 안에 발을 집어넣어 구두 주인인 것처럼 속여 왕자를 따라나섰으나, 하얀 새들이 왕자에게 사실을 알려주어 정체가 들통났다.
 
'신데렐라'에서 두 언니와의 관계가 해결되어야 했던 것처럼, '콩쥐팥쥐'에서 콩쥐도 팥쥐와의 관계를 해결해야 한다. 신데렐라와 콩쥐의 성취는 내면의 성장을 상징한다. [사진 pxhere]

'신데렐라'에서 두 언니와의 관계가 해결되어야 했던 것처럼, '콩쥐팥쥐'에서 콩쥐도 팥쥐와의 관계를 해결해야 한다. 신데렐라와 콩쥐의 성취는 내면의 성장을 상징한다. [사진 pxhere]

 
‘신데렐라’와 같은 서사를 가진 우리의 ‘콩쥐팥쥐’에서도 콩쥐가 원님과 결혼하는 것에서 끝나는 이야기로만 알고 있는 경우가 많은데, 사실은 후반부가 좀 더 늘어진다. 이제는 이 사실도 예전에 비해서는 많이 알려진 것 같은데, 후반부 내용을 알고 있더라도 단지 ‘옛날이야기는 다 잔혹해’ 하는 식으로 받아들이지 않았으면 좋겠다.
 
콩쥐도 계모의 갖은 구박에 시달렸지만 잔치에 가던 길에 꽃신을 잃어버리는 바람에 원님과 결혼하게 되었다. 그런데 이렇게 주인공에게 시련을 부여했던 인물이, 주인공이 잘되고 나서 이야기에서 그냥 사라져 버리는 것은 논리에 맞지 않는다. 주인공을 그렇게 구박하던 인물이 주인공의 행운을 그냥 두고 넘기지는 않을 것이다. 신데렐라에서 두 언니와의 관계가 해결되어야 했던 것처럼, 콩쥐도 팥쥐와의 관계를 해결해야 한다. 두 이야기는 일단 ‘나쁜 계모’에 관심을 갖기 쉬운데, 자매간의 갈등을 기본 관계로 생각해 보면 해석할 수 있는 여지가 달라진다. 브루노 베텔하임은 친형제 사이에서 발생할 수 있는 경쟁심리와 이로 인한 갈등을 이야기에서는 의붓형제의 관계로 바꾸어 놓은 것이라고 설명한다. 현실 독자는 친형제 사이의 일이라고 받아들이기는 어려웠을 것이기 때문이다.
 
아무튼 ‘콩쥐팥쥐’에서는 콩쥐가 원님과 결혼한 뒤, 이를 질투한 팥쥐가 원님이 집을 비운 사이 함께 목욕하자며 콩쥐를 불러내 연못에서 밀어버리고는 자신이 콩쥐인 척하고 있었다. 원님은 뭔가 이상하다 싶었지만 팥쥐가 둘러대는 말을 믿고 그냥 있었고, 연못에서 꽃으로 환생한 콩쥐는 진실을 밝히고 원님으로 하여금 팥쥐를 처단하게 했다. 그 방법으로는 팥쥐를 죽여 젓갈로 담근 뒤 팥쥐 엄마에게 보내 그걸 먹게 하였다는 내용이 등장한다. 이 젓갈 모티프는 같은 서사를 가진 베트남의 ‘떰깜’에서도 동일하게 발견된다. 주인공의 행운을 질투한 의붓형제가 거짓을 말하며 그 자리를 차지하려고 했으나 결국 들통나고 벌을 받는 것이다.
 
행복하게 오래오래 잘살기 위해서는 거쳐야 할 과정이 있고, 실제의 삶은 또한 그렇게 악한 이들이 반드시 징벌을 받고야 마는 이야기의 논리가 정연하게 적용되는 것 같지도 않다. 하지만 오랜 세월 여러 지역에서 전승되어 온 이야기에 서늘하게 담겨 있는 진실은 함부로 외면하기도 쉽지 않다. 우리는 옛이야기의 주제를 보통 ‘권선징악(勸善懲惡)’이라는 말로 배웠고, 그런 줄로만 알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그것은 이야기를 너무 납작하게 보는 시선을 만들어낸다. 옛이야기 속 여주인공이 수동적인 것만도 아니고, 그저 착하고 예뻤기에 복을 받은 것도 아니다. 신데렐라와 콩쥐의 성취는 내면의 성장을 상징한다. 이들의 이야기는 형제간의 경쟁 관계 속에서 이상적인 부모와의 갈등까지 겪은 후에 자기 삶의 주인공이 되어가는 과정을 보여주는 이야기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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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도영 권도영 건국대학교 상허교양대학 초빙교수 필진

[권도영의 구비구비 옛이야기] 우리 옛이야기에는 치유의 힘이 있다. 신화, 전설, 민담에는 현대에도 적용 가능한 인간관계의 진실이 숨어 있기 때문이다. 관계에서 생기는 갈등은 어느 무엇보다도 우리를 지치게 한다. 나 하나를 둘러싼 인간관계는 단순하지 않고 복잡하게 얽혀 있기 때문이다. 이런 관계의 갈등을 심도 있게 들여다볼 수 있는 자료가 옛이야기이다. 우리 옛이야기를 통해 내 안에 숨어 있는 치유의 힘을 일깨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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