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박치문의 검은 돌 흰 돌] 부득탐승·기자쟁선, AI는 만점

중앙일보 2021.07.07 00:03 경제 7면 지면보기
일러스트=김회룡

일러스트=김회룡

‘바둑10결’은 중국 당나라 현종 때의 바둑고수 왕적신이 만든 것으로 1300여 년 전의 작품이다. 오랜 세월 바둑을 대변해왔고 바둑 실력이 크게 진보한 현대에도 결코 밀리지 않는 힘을 지니고 있다. 그렇다면 AI가 바둑의 신으로 등극한 오늘날에도 10결은 유효할까. AI의 눈에 10결은 어떻게 비칠까.
 

1300년 된 ‘바둑10결’과 비교하니
무심하고 무자비, 아낌없이 돌 버려

 부득탐승(不得貪勝) 이기는 것을 탐하면 얻지 못한다.
 입계의완(入界宜緩) 상대의 경계는 서서히 들어가라.
 공피고아(攻彼顧我) 상대를 공격할 때는 나를 먼저 돌아보라.
 기자쟁선(棄子爭先) 돌을 버리고 선수를 쟁취하라.
 사소취대(捨小取大) 작은 것을 버리고 큰 것을 취하라.
 봉위수기(逢危須棄) 위기를 만나면 마땅히 버리라.
 동수상응(動須相應) 움직일 때는 반드시 서로 호응하라.
 신물경속(愼勿輕速) 가볍고 빠름을 경계하라.
 피강자보(彼强自保) 상대가 강할 때는 나를 지켜라.
 세고취화(勢孤取和) 세력이 약할 때는 타협하라.
 
부득탐승은 바둑의 정신적인 측면을 강조한 첫 번째 비결이다. 마음을 비우라는 말처럼 애매하다. 필승의 의지와 승리를 탐하는 것 사이의 구분도 어려워 인간이 실천하기는 꽤 어렵다.  AI는 ‘정신’ 자체가 없어 결코 흔들리는 일이 없으므로 이 점에서는 100점이다. AI와 바둑을 둔 인간 고수들이 가장 힘들었던 부분도 바로 AI의 무심함, 무자비함에 있었다.
 
입계의완을 대하면 가장 먼저 AI의 저 유명한 ‘어깨짚기’가 떠오른다. 4선, 5선에서도 가볍게 어깨를 짚으니 참 평화롭고 고수스럽다. 남의 진영만 보면 바로 뛰어들지 않고 못 배기는 동네 기객들에겐 마치 선문답처럼 비쳤을 것이다. 그러나 실상은 조금 다르다. AI는 어깨짚기보다 침입에 더 능하다. 상대 돌이 와글거리는 적진 속을 필마단기로 뛰어드는 것은 AI의 장기다.
 
공피고아는 좀 더 현실적이고 좀 더 실전적인 가르침이다. 공격에 취하면 나의 약점을 잊어버리는 것이 인간의 속성. 그러나 AI는 꼭 나를 돌아본다. 공격하다가도 체면 생각하지 않고 갑자기 멈춘다.
 
기자쟁선은 AI의 전문이자 특기다. 인간은 입으로는 기자쟁선을 되뇌면서도 막상 돌을 버리지 못한다. 하지만 AI는 참으로 아낌없이 돌을 버린다. 인간 고수들은 요즘 돌을 버리는 것이 얼마나 중한지 AI로부터 배우고 또 배우고 있다.
 
사소취대는 좋은 말이다. 그러나 작고 큰 구분을 할 줄 알면 누가 큰 것을 마다하겠는가. 바둑 자체가 모두 사소취대이므로 사소취대란 말은 바둑을 잘 두라는 말과 비슷하지 않을까.
 
봉위수기는 인간이 비교적 잘하는 항목이다. 위험하면 꼬리를 자르거나 덩치가 커지기 전에 버린다. AI는 위기 아니더라도 필요하면 버린다.
 
동수상응은 어려운 과제다. 바둑 전체는 살아있는 생물. 바둑돌 하나하나의 가치는 시시각각 변한다. 이들을 연결시키는 원대한 구상은 인간의 소망이자 난제다. 열심히 AI로부터 배우고 있지만 가장 어려운 부분이다.
 
신물경속은 바둑 두는 자세를 말하는지 혹은 행마의 문제를 말하는지 조금 애매하다. 바둑은 신중하게 둬야 한다. 하나 AI는 수읽기가 빛의 속도니까 이런 얘기는 의미가 없다. 인간 바둑도 요즘은 속기가 대세라 거리감이 있다.
 
피강자보와세고취화는 비슷한 이치를 말하고 있는데 그 요체는 현실과의 타협이라 할 것이다. 나를 알고 분수를 지키라는 얘기인데 싸움 좋아하는 동네 기객들에겐 그야말로 금과옥조가 아닐 수 없다. AI의 실력은 까마득히 먼 구름 위에 존재하므로 타협이나 분수 얘기엔 그냥 웃겠지만 인간에겐 지극히 실전적이고 유익한 가르침이 아닐 수 없다.
 
장마가 시작된다고 한다. 거리두기가 지속되면 집에 앉아 바둑 둘 기회도 많아진다. 대국할 때 창문을 두드리는 빗소리를 들으며 가만가만 바둑10결을 되새겨보는 것은 어떨까.  


공유하기

중앙일보 뉴스레터를 신청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