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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 1타강의 통째 사온다, 오세훈의 '무료 인강' 실험

중앙일보 2021.07.05 05:00
오세훈 서울시장. 강정현 기자

오세훈 서울시장. 강정현 기자

 
“강남에선 ‘1타 강사’ 강의 듣는데 저소득층은 언제까지 학교 수업만 잘 듣고 따라잡아야 합니까. 강남권ㆍ비강남권 학생들이 적어도 똑같은 콘텐트를 누리게 하자는 거에요.”
 
오세훈 서울시장의 한 측근은 후보 시절부터 내세운 공약인 ‘서울 런(Seoul Learn)’ 사업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서울시의회가 지난 2일 추경예산안을 처리하며 서울 런 예산 약 36억 원을 통과시키면서, 강남과 비강남권의 교육 격차를 줄이겠다는 오 시장의 실험은 첫 발을 뗐다. 서울 런 사업은 유명 강사의 강의를 저소득층 학생들에게 무료로 제공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1타강의' 전과목 통째로 사온다

앞서 오 시장은 ‘더이상 사교육을 억제할 수 없다면, 차라리 똑같이 누리게 하자’는 생각을 시의회 시정질문에서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공교육 강화와 반대로 간다는 지적에 오 시장은 “현실과 이상의 괴리를 생각해야 한다”며 “저소득층 아이들이 언제 1타강사 강의를 들은 적이 있냐”고 반문했다.  
 
하지만 사업은 우선 절반의 형태로만 착수하게 됐다. 당초 서울시가 시의회에 제출한 서울 런 예산은 총 58억 원이었다. 대형 학원 등으로부터 강의 콘텐트를 사오는 비용이 40억 원, 인공지능 AI 등을 적용해 교육 플랫폼을 구축하는 비용이 18억가량이다. 이 중 콘텐트 구입 비용 등 36억 원만 통과됐다.  
 
오세훈 서울시장이 서울시의회 시정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오세훈 서울시장이 서울시의회 시정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서울시는 사업 핵심인 ‘1타강사’ 강의 제공이 가능하다는 데에 의미를 둔다. 중앙일보 취재 결과 시는 유명 인강업체와 시장가격의 평균 15% 수준으로 콘텐트를 제공받는 내용의 협상을 벌이고 있다. 초등학생은 AI기반 학습콘텐트인 아이스크림 홈런과 엘리하이를, 중학생에게는 수박씨와 밀크티, 고등학생은 메가스터디와 대성 마이맥, 일반은 메가 아카데미 등 7개 업체가 협의 대상에 올랐다.
 

월 10만 대형학원 강의, 4분의 1가격에

교육청ㆍEBS 등이 이미 제공하는 콘텐트와 중복된다는 비판에도 서울시는 자신만만하다. 시 관계자는 “EBS 등에서 잘 가르쳐서 뜬 강사는 죄다 사교육 시장으로 빠지기 때문에 계속 양질의 콘텐트를 유지하기 어렵고 인기가 없다”며 “서울 런은 계약한 학원의 강의를 통째로, 강남권 학생들이 듣는 것과 똑같이 들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예컨대 유명 대형학원인 메가스터디의 경우 교재를 제외한 전 강의를 모두 들을 수 있는 수강권이 월 9만 8000원이지만, 서울시는 이를 4분의 1 가격인 인당 2만원을 지불하고 학생들에게 제공할 수 있게 된다. 초중고교 저소득층 학생들과 다문화가정 등 11만 명이 우선 시범사업 대상이 될 것으로 서울시는 보고 있다.
 
한 대형인강업체에서 판매하는 5개월 전과목 인강 수강권. 사이트 캡처.

한 대형인강업체에서 판매하는 5개월 전과목 인강 수강권. 사이트 캡처.

 
시는 AI 플랫폼 구축도 포기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서울시 관계자는 “내년 본 예산에는 플랫폼 구축 관련 예산을 편성할 것”이라고 말했다. AI 기술을 통해 학생들의 교육 수준을 객관적으로 파악하고, 맞춤형으로 학습을 관리해주겠다는 게 서울시의 생각이다. 강남의 대형 학원이 학생들을 집중 관리해주는 시스템을 AI 기술로 보완하겠다는 것이다. 대학생 멘토 1000명도 뽑아 온ㆍ오프라인에서 학생 관리에 나선다.
 

“인강 듣게 해주면 격차 해소되나” 교육단체 반발

다만 “사교육 시장만 배불린다”는 비판은 여전히 피할 수 없다. 통계청에 따르면 2019년 국내 사교육시장 규모는 20조원대를 돌파했다. 이런 상황에서 매년 대형 인강업체에 콘텐트 구입 비용으로 수십 억원 씩 서울시가 지급하게 된 것이다. 이를 두고 채유미 서울시의원은 “사교육을 더 강화하는 서울 런 사업은 공교육 정상화에 하나도 도움이 안 된다”며 “서울시민 세금이 그렇게 만만하냐”고 비판했다.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을 비롯한 33개 교육단체는 서울 런 사업 예산 통과를 비판하며 오는 5일 기자회견을 열기로 했다. 이들 단체는 “온라인 교육플랫폼에 인강을 탑재하고 수강권을 주는 것으로 (교육격차가)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며 “서울 런은 사업의 중복성 및 공적 플랫폼에서 사교육을 조장하는 등 공교육 내실화라는 정부 정책 방향과도 맞지 않는 치명적인 결함이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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