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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두개의 조국을 가진 일본의 ‘조선 사람’

중앙일보 2021.06.24 08:00

[더,오래] 양은심의 도쿄에서 맨당에 헤딩(58)

지난 6월 20일 일요일, 도쿄의 아라카와구에서 다큐멘터리 영화 '나는 조선사람입니다' 상영회가 있었다. 한국의 김철민 감독의 작품으로 '2020년 한국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심사위원 특별상 수상작'이다.
 
이 상영회를 알게 된 건 한 일본인의 페이스북 글에서였다. 고무라 가오리(香村かをり) 씨. 한국의 전통 타악기 장고 연주자다. 상영회 실무를 담당한 고무라 씨는 2020년에 만들어진 ‘포차발(ポチャバル, 포장마차에서 발신한다는 의미)’이라는 모임에서 활동하고 있다. 일본 사회에서 느끼는 문제점들을 이야기하고 발신하는 모임이라 한다. 이 모임의 다른 회원들과 의기투합해 상영회를 성사시켰다. 실무 담당자는 단 3명. 2~3명의 개인적인 모임으로도 상영회를 열 수 있다는 것이 신기했다. 그리고 그 추진력에 놀랐다. 덕분에 나는 이 영화를 만날 수 있었다.
 
영화 '나는 조선 사람입니다' 포스터. 출연자 사진이 한반도를 채우고 있다. 한국에서도 상영회가 열리고 있다고 한다.

영화 '나는 조선 사람입니다' 포스터. 출연자 사진이 한반도를 채우고 있다. 한국에서도 상영회가 열리고 있다고 한다.

 
한국에서 나고 자란 사람이 ‘조선사람’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첫 반응은 어떨까 라는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북한 편 사람’이라는 인상이 강하지 않을까 싶다. 대한민국이라는 국명이 생겨나기 전인 '조선'에서 이어지는 표현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조선사람’은 일제강점기에 일본으로 건너온 조선 백성의 자손이다. 나를 포함한 한국 사람은 이 사실을 오래전에 깨끗이 잊어버렸다.
 
이 영화는 오롯이 재일조선인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을 말한다. 개인적인 친분이 있어도 구구절절 다 말할 수 없는 삶의 역사를 조선사람 1세부터 5세의 이야기를 통해 보여준다. 식민지 시대와 다름없는 실상을 곳곳에서 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선사람’으로 살아간다. 한국에서 나고 자란 내가 일본에서 한국 사람으로 살아가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는 차원의 이야기이다. 나는 조선사람이 겪는 고난을 모른다. 영락없는 ‘뉴커머(신정주자. 1965년 한일수교 이후 일본에 정착하기 시작한 동포)’다. 한국 사람이다.
 
감독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조선사람'이라는 것은 자기가 어느 지역의 뿌리, 이런 걸 넘어서서 어떤 지향을 가지고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선언이고 굴복하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로 제목을 달았다."
 
1945년 일본 땅에서 해방을 맞았다. 서둘러 조선 땅으로 돌아갈 수도 있었지만, 이미 터전을 마련해 살아 좀 더 나은 상황이 되기를 기다리기로 했다. 조국으로 돌아갈 날을 위해 학교를 세우고 아이들에게 한글과 말을 가르쳤다. 기부금으로 세운 ‘조선학교’다.
 
돌아갈 날을 고대하던 중 조국에 전쟁이 터졌다. 조국은 둘로 나뉘었다. 남쪽이냐 북쪽이냐 선택하라고 했다. 어디로 가야 하나. 둘로 나뉜 조국. 어느 한쪽을 고를 수가 없었다. 일본에 남았다. 남한과 북한을 지지하는 단체가 생겼다. 조선사람은 통일된 조국을 기다리기로 했다. 조국의 어느 땅을 밟든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 때를. “한국에 가고 싶어서 가고 싶어서…”를 연발하는 분이 계셨다. 조국에 대한 그리움이 화면을 뛰어넘어 느껴진다.
 
영화를 보고 난 후의 느낌은 ‘그들의 삶은 독립운동을 닮았다’였다. 해방 후에도 이런저런 사정으로 일본에 남은 사람들. 한반도의 격동기에 살아남기 위해 일본 땅으로 건너온 사람들. 그 자손들이 한글과 말과 역사를 배우고 가르치며 살아간다. 영화에서 부모의 고향을 말하는 사람들 대부분이 북한이 아닌 남한 출신이라는 게 인상적이었다. 부모의 출신만으로 따지면 그들이 말하는 조국은 ‘대한민국’이어야 한다. 그러나 그들은 통일된 조국을 기다리고 있다.
 

‘두 개의 조국’의 의미

상영회 시작을 기다리는 사람들. 코로나로 앉을 수 없느 좌석이 있었으나 많은 사람이 참가했다.

상영회 시작을 기다리는 사람들. 코로나로 앉을 수 없느 좌석이 있었으나 많은 사람이 참가했다.

 
영화는 몇 개의 테마로 나뉘어 전개된다.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두 개의 조국’이었다. 내용을 보기 전 나는 ‘한국과 일본’을 떠올리고 있었다. 그리고 곧 그게 아님을 알게 된다. 재일조선인이 말하는 두 개의 조국이란 ‘한국과 북한’을 말하는 것이었다.
 
해방 당시의 상황이 뇌리를 스쳐 지나갔다. 맞다. 재일조선인, 조선사람은 해방된 조선의 사람과 그 자손들이다. 그러니 두 개의 조국이란 한반도에 있는 두 개의 나라다. 한국에서 나고 자란 나에게 북한은 내 나라가 아니다. 조국도 아니다. 뿌리를 같이 하는 다른 나라일 뿐이다. 그러나 적어도 이 영화에 등장하는 조선사람에게는 ‘한국도 북한도’ 조국이다.
 
일본 관객은 “일본 사람이 봐야 할 영화”라 하고, 재일조선인은 “재일조선인이 봐야 할 영화”라 한다. 서로 느끼는 점이 다르기 때문일 것이다. 한국 사람인 나는 말하고 싶다. “이 영화는 꼭 한국 사람이 봐야 할 영화”라고. 단순한 호기심이어도 좋고, 각오하고 대면하는 마음이어도 좋다. 정치적·사회적으로 얽히고설킨 생각과 이미지를 옆에 내려놓고, 일단 한 번 이 영화를 봤으면 한다.
 
‘나는 조선사람입니다’는 조국의 완전한 독립을 기다리며 일본에서 살아가는 조선사람들의 이야기이다.
 
한일자막번역가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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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은심 양은심 한일자막번역가·작가 필진

[양은심의 도쿄에서 맨땅에 헤딩] 일본인과 결혼해 도쿄에 살림을 꾸린지 약 25년. 일본으로의 이주는 성공적이라고 자부한다. 한일자막 번역가이자 작가이며, 한 가정의 엄마이자 아내다. ‘한일 양국의 풀뿌리 외교관’이라는 기분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다. 한국보다도 더 비빌 언덕이 없는 일본에서 그 사회에 젖어 들고, 내 터전으로 만들어가는 이야기를 연재한다. 그야말로 ‘맨땅에 헤딩’과 같은 이야기가 독자의 삶에 힌트가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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