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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영은의 야野·생生·화話] ‘투수 김강민’ 향한 특별했던 기립박수

중앙일보 2021.06.24 00:03 경제 7면 지면보기
김강민

김강민

프로야구 베테랑 외야수 김강민(39·SSG 랜더스)은 대구중 시절 투수였다. 에이스의 꿈을 안고 야구 명문 경북고에 진학했다. 그런데 1학년 때 크게 다쳤다. 손등뼈가 부러져 손에 힘을 줄 수 없었다. 경기에 나서려면 투수를 포기해야 했다. 내야 수비를 시작했다. 잠시 투수를 겸업했지만, 2001년 SK 와이번스(SSG의 전신) 입단 후 1년간 내야수로 뛰었다.
 

부상에 투수 꿈 접고 외야수 전향
남다른 노력 끝에 최고 중견수로
은퇴 고민 마흔에도 존재감 뚜렷
베테랑의 최선 보여준 22일 등판

투수에 미련이 남았다. 1년 뒤 재도전을 결심했다. 직구 구속이 시속 140㎞ 중반까지 나왔다. 이를 악물고 노력하면, 투수로 프로 마운드에 설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2002년 2군 경기에서 ‘그일’이 벌어졌다. 마운드에서 던진 공이 홈플레이트에 닿지 못하고 잔디에 떨어졌다. 힘을 줬더니 이번엔 포수 뒤 그물까지 날아갔다. 그게 ‘투수 김강민’의 마지막 경기였다.
 
이유 없이 ‘영점’이 잡히지 않아 내야 송구도 어려웠다. 프로 3년 차를 앞둔 2002년 말, 처음으로 ‘외야수가 되겠다’고 마음먹었다. 남보다 더 큰 노력이 필요했다. 외야는 생각보다 넓었다. 타구 판단도 쉽지 않았다. 치열한 경쟁과 기약 없는 2군 생활은 심신을 괴롭혔다. 그러다 조금씩 강한 어깨와 빠른 발이 빛을 발했다. 2005년 마침내 1군 주전 외야수가 됐다. 매 시즌 무서운 속도로 성장했다.
 
김강민은 그렇게 외야수로서 프로에서 살아남았다. 그냥 ‘생존’만 한 게 아니다. 수많은 타자가 중견수 김강민에게 홈런이나 안타를 도둑맞았다. 모두가 “중견수 수비는 김강민이 대한민국 1등”이라고 인정했다. 수비 잘하는 후배 외야수들이 앞다퉈 “김강민 선배가 롤 모델”이라고 말했다.
 
김강민은 올해 한국 나이로 마흔이 됐다. 몇 년 전부터 출장 기회도 조금씩 줄었다. 올 시즌이 끝나면 SSG와 2년 계약이 끝난다. 은퇴를 고민할 시점이다. 그런데도 여전히 SSG 벤치에서 존재감을 뽐낸다. 잊을 만하면 나타나 ‘김강민은 살아있다’는 걸 보여준다.
 
오래 버틴 덕분일까. 학창 시절의 꿈도 이뤘다. 김강민은 22일 LG 트윈스와 홈 경기에서 투수로 마운드에 섰다. 1-13으로 크게 뒤진 9회 초, 다른 투수의 수고를 덜어주기 위한 ‘땜질 등판’이었다. 그는 언제나 그랬듯 최선을 다했다. 정면승부를 하다 홈런을 맞았고, 곧바로 시속 145㎞ 직구를 던져 삼진을 잡았다. 한순간도 야구를 허투루 대한 적 없는, 베테랑의 ‘최선’이었다.
 
SSG 팬들은 마지막 아웃 카운트를 잡고 더그아웃으로 향하던 김강민을 기립박수로 맞이했다. 익숙한 장면이다. 종종 믿기지 않는 호수비로 기립박수를 받았던 그다. 이번엔 달랐다. ‘김강민’이라는 선수 자체를 향한 존경의 박수였다.  
 
누구든 그처럼 선수 생활을 하면 존경받을 수 있다. 그런데 ‘김강민처럼 하기’는 무척 어렵다. 누군가의 귀감은 아무나 될 수 있는 게 아니다.  
 
배영은 야구팀장 bae.younge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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