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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평] 이상한 나라는 있어도 특별한 경제는 없다

중앙일보 2021.06.23 00:52 종합 31면 지면보기
김병연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장 경제학부 교수

김병연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장 경제학부 교수

2010년대 중반에 김일성대 경제학부 출신의 북한 외무성 관료를 회의에서 만났다. 30대의 그는 영어 구사가 유창했고 담당 분야의 지식도 풍부했다. 회의 후 시내 관광을 위해 버스를 탔을 때 그의 옆자리에 동석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물었다. “경제학부에서 ‘수요와 공급’에 대해 배웠습니까.”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그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럼 주로 뭘 배웠습니까.” 그가 답했다. “주체사상에 근거한 우리 북조선 경제가 얼마나 특별하며, 얼마나 많은 발전을 이룩했는지 배웠습니다.” 필자에겐 이 말이 경제에 관해 정말 필요한 지식은 전혀 배우지 못했다는 고백처럼 들렸다.
 

사회주의 경제학은 이념의 도구
경제 이해와 정책에 도움 못 돼
김정은의 무지가 택한 자력갱생
경제난 키울 뿐, 협상 이외 길 없어

학문에서 남북 간 수준 차이가 가장 큰 분야는 경제학일 것이다. 사회주의 국가에서 경제학은 사회를 분석하는 도구라기보다 이념을 옹호하는 프로파간다에 가깝다. 경제학을 배워도 경제를 제대로 알기 어렵다는 의미다. 통일 이후 동독에선 서독 출신 경제학자 수요가 급증했다. 경제학이란 이름으로 사회주의 이념을 가르치던 동독 대학 교수들을 한꺼번에 내보내고 서독의 경제학자로 대체해야 했기 때문이다. 시장경제로 이행하던 러시아도 비슷한 상황이었다. 자본주의로 접어든 후에도 여전히 마르크스 경제학을 가르치던 모스크바국립대의 명성은 떨어졌다. 반면 고등경제대학이나 신경제대학처럼 젊은 러시아 학자나 외국 연구자를 교수로 채용한 신생 대학의 경쟁력은 치솟았다.
 
경제에 대한 무지가 북한을 더 큰 위기로 내몰고 있다. 제재 전 북한경제는 이름만 사회주의지 실상은 무역과 시장에 절대적으로 의존했다. 원부자재, 기계 장비, 부품을 수입해서 공장 가동률을 높였다. 무역으로 외화를 벌고 소비재도 수입하니 시장이 발전했다. 그러면서 무역과 시장이 선순환했다. 이 모든 것이 경제에 대한 정부의 통제가 줄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그런데 제재와 코로나 사태로 경제가 어려워지자 김정은은 과학기술로 자력갱생하겠다며 무역과 시장을 옥죄고 있다. 방역도 한 이유다. 그러나 과학기술이 어떻게 단시간에 발전할 수 있나. 수입 차단으로 망가진 공급망이 어떻게 갑자기 메워지나. 거꾸로 가는 정책 때문에 주민의 삶은 더욱 피폐해지고 있다.
 
김정은은 계획경제를 복원해 생산량을 끌어올리려 한다. 이를 위해 올 상반기 동안 세 번이나 전원회의를 했다. 그러나 계획경제는 성긴 그물과 같아서 인간의 재빠른 욕망을 가둘 수 없다. 2월 전원회의에서 김정은은 전력과 건설 부문 목표생산량은 터무니없이 낮고, 농업의 생산목표는 크게 부풀려져 있다고 비판했다. 그러나 이는 기업의 지극히 합리적인 행동이다. 발전량과 아파트 건설 물량은 속이기 어려워 목표를 너무 높게 잡으면 달성하기 힘들다. 반면 농업은 생산량을 고의로 부풀리더라도 적발될 가능성이 낮다. 특히 더 많이 생산하라고 다그치면 기업은 양만 채우려 하지 제품의 질에는 관심 쓰지 않는다. 결국 물건을 만들었지만 쓸 만한 제품은 없는 셈이다. 소련에서도 이런 ‘서류로만 존재하는 성장’이 많았다. 지난주 3차 전원회의에서 발표된 내용 중 상반기 공업총생산액이 전년 대비 125%로 증가했다는 수치도 기업과 관료의 살기 위한 몸부림으로 한참 부풀려졌을 것이다.
 
김정은은 제재를 뚫고 핵보유국이 되기 위한 핵심으로 자력갱생을 택했다. 특히 하노이 회담에서 미국의 목표가 완전한 비핵화임을 확인한 그는 어떻게든 경제를 회복시켜 미국이 북한 핵 보유를 현실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도록 만들려 한다. 자력갱생에 사활을 건 셈이다. 그러나 그는 틀렸다. 자력갱생은 경제학 족보에 한 줄도 나오지 않는다. 학문은 축적된 경험을 엄밀히 분석해 무엇은 되고 무엇은 되지 않는지 판별한다. 그 학문이 김정은에게 자해(自害)적인 자력갱생의 헛된 꿈을 버리라고 말한다. 이상한 나라는 있어도 특별한 경제는 없다.
 
북한이 전술적으로 자력갱생을 택했을 수도 있다. 장기간은 버틸 수 없음을 알지만 당분간 버티는 척해서 미국을 기만하려는 발상이다. 그러나 경제를 제대로 배운 한국과 미국의 전문가는 북한의 이 노력이 허풍임을 쉽게 간파한다. 북한의 전술이 통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결국 무지든, 전술이든 벼랑 끝에 서게 될 쪽은 북한이다. 그 지점에 이르면 김정은의 정권 유지도 장담할 수 없다. 더 현명한 길은 학문의 가르침을 따라 벼랑 끝을 딛기 전에 협상에 나오는 것이다.
 
위기의 경고등은 켜졌다. 지난주엔 2013년 이래 처음으로 일부 지역에서 쌀과 옥수수 가격이 두 배 올랐다. 일부 수입 소비재 가격이 10배나 치솟았다는 보도도 나왔다. 반면 달러나 위안화 대비 북한 원화는 오히려 크게 절상되는 혼란이 벌어졌다. 무역과 산업에다 시장마저 흔들리는 조짐이다.
 
자력갱생은 무역과 산업을 망가뜨린다. 주민의 생존 터전인 시장을 파괴한다. 독재정권이라 하더라도 시장을 없애고 사회주의 계획으로 돌아가려면 엄청난 강제력을 동원해야 한다. 김정은에게 과연 그런 힘이 있을까. 그의 무지가 만들어내는 혼란과 위기의 끝은 어디일까.
 
김병연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장·경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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