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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폭행 당한 후 3층서 추락했지만…법원 "성폭행만 유죄"

중앙일보 2021.06.21 13:40
성폭력 이미지. 사진 픽사베이

성폭력 이미지. 사진 픽사베이

술자리 합석 후 화장실서 성폭행 

20대 여성이 술집에서 합석한 또래 남성에게 성폭행을 당한 후 건물 3층에서 떨어져 크게 다쳤다. 1심 재판부와 항소심 재판부 모두 이 남성의 성폭행 혐의는 유죄로 봤지만, 준강간치상 혐의를 두고서는 판단이 엇갈렸다.
 

[사건추적] 1심 준강간치상 유죄→항소심 무죄 왜

광주고법 전주재판부 제1-1형사부(부장 김성주)는 21일 "준강간치상 혐의로 기소된 A씨의 항소심에서 징역 6년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징역 3년을 선고했다"고 밝혔다. 1심 재판부는 "성폭행과 피해자의 상해라는 결과 사이에 상당·인과관계가 인정된다"고 봤지만, 항소심 재판부는 "검찰이 제출한 증거만으로는 준강간으로 인해 상해가 발생했다는 인과관계가 입증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왜 1심 선고를 뒤집었을까. 사건은 지난 2019년 2월 27일 오전 0시50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A씨는 전북 전주의 한 대학로 술집에서 B씨(여)를 만났다. 두 사람은 각자 일행과 따로 술집을 찾았다가 오전 1시10분부터 합석해 함께 술을 마셨다.
 
A씨는 오전 4시30분쯤 술에 취한 B씨가 홀로 건물 계단으로 올라가는 것을 보고 뒤따라갔다. B씨가 건물 1층에 있던 술집에서 3층 로비에 도착하자 A씨는 강제로 입을 맞추는 등 성추행했다. 
 
판사봉 이미지. 사진 픽사베이

판사봉 이미지. 사진 픽사베이

7.5m 아래 추락…머리·팔 부러져 전치 8주 부상 

A씨의 범행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오전 5시7분쯤 술에 취해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B씨를 껴안아 복도에 있는 여자 화장실 안으로 데리고 가 성폭행했다. 이에 겁에 질린 B씨는 A씨를 피해 화장실 창문을 빠져나가 약 7.5m 높이의 베란다에서 1층 바닥으로 추락했다. 이 사고로 B씨는 머리뼈와 팔뼈 등이 부러져 8주간의 치료와 3개월 이상 재활운동이 필요한 상해를 입었다.
 
A씨는 경찰에서 "피해자와 성관계를 끝낸 뒤 화장실에서 나왔다"며 "이후 큰 소리가 나 화장실에 다시 들어갔더니 피해자가 창문에서 떨어진 상태였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검찰은 "A씨가 B씨의 심신 상실 또는 항거 불능 상태를 이용해 강간했고, B씨가 A씨의 성폭행을 피하려다 3층에서 떨어져 상해를 입었다"고 판단했다.
 

1심 "성폭행-추락 간 인과관계 인정" 

1심 재판부는 "피고인은 피해자가 해당 위험(성폭행)을 피하는 과정에서 상해를 입을 수도 있음을 충분히 예견한 것으로 보인다"며 징역 6년을 선고했다. A씨의 성폭행과 B씨의 추락 간 인과관계를 인정한 것이다.
 
1심 재판부는 ▶피해자가 과도한 음주로 인해 심신 상실 상태에 있었다는 점 ▶폐쇄회로TV(CCTV) 영상에서 피해자가 피고인의 스킨십을 거부하는 장면이 확인된 점 ▶피해자가 사건 당시 추행을 거부하는 의사를 밝혔다고 진술한 점 ▶당시 화장실 내부가 어두워 위험(성폭행)을 피해 탈출할 곳이 빛이 보이는 창문밖에 없다고 피해자가 생각할 수 있는 점 등을 근거로 삼았다.
 
전북 전주시 덕진구 만성동 광주고등법원 전주부 청사 전경. 연합뉴스

전북 전주시 덕진구 만성동 광주고등법원 전주부 청사 전경. 연합뉴스

항소심 "'추락 예상 못했다' 피고인 진술 일관" 

항소심 재판부의 판단은 달랐다. "성폭행은 인정하지만, 피해자가 3층에서 떨어져 다칠 것이라는 것은 예상할 수 없었다"는 A씨의 주장을 받아들인 것이다.
 
항소심 재판부는 ▶피고인이 수사 초기부터 '피해자의 추락을 예상하지 못했다'고 일관되게 진술한 점 ▶피해자가 당시 술에 취해 핵심 상황을 전혀 기억하지 못하는 점 ▶피해자가 최면 수사에서 준강간 범행과 관계없이 창문을 출입문으로 착각해 나갔다는 취지로 진술한 점 ▶피고인이 피해자를 폭행하거나 협박한 정황이 없는 점 ▶피해자 추락 직후 피고인이 친구나 119·112에 신고한 점 등을 근거로 '치상'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당시 CCTV에 찍힌 상황을 토대로 "피고인이 피해자를 준강간하고 피해자가 화장실에 설치된 창문을 통해 베란다 밖으로 나온 뒤 바닥으로 추락하는 데 걸린 시간은 약 1분34초에 불과해 만취한 피해자의 의식이 일시적이든 본능적이든 회복됐다고 보기는 짧고, 제3자인 피고인이 이를 예견하기에도 너무 짧다"고 판시했다. 조사 결과 당시 B씨의 혈중알코올농도는 0.148%였다.
 
검찰은 "항소심 선고에 사실 오인과 법리 오해가 있다"며 대법원에 상고했다.
 
전주=김준희 기자 kim.junh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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