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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유럽 가구, 빈티지와 앤티크의 차이를 아시나요?

중앙선데이 2021.06.19 00:20 741호 19면 지면보기

『마이 디어 빈티지』 낸 권용식 대표

빈티지 숍·갤러리·카페로 구성된 복합문화공간 ‘비투프로젝트’의 권용식 대표. 김현동 기자

빈티지 숍·갤러리·카페로 구성된 복합문화공간 ‘비투프로젝트’의 권용식 대표. 김현동 기자

“어떤 사실을 아는 사람은 그것을 좋아하는 사람만 못하고, 좋아하는 사람은 즐기는 사람만 못하다.” 공자의 명언이다. 지난 10여 년간 노르웨이부터 북아프리카까지 차로 10만㎞를 달려 400여 개의 빈티지 숍을 방문하고 7만여 장의 사진을 찍은 뒤 최근 이를 560쪽 분량의 책 『마이 디어 빈티지(My Dear Vintage)』(몽스북)로 출간한 ‘비투프로젝트(B2PROJECT)’ 권용식(55) 대표를 설명하는 말이기도 하다.
 

10여 년간 유럽·아프리카 등 누벼
400개 빈티지 숍 사진 7만 장 찍어

50년대 ‘에그 체어’ 등 진귀한 가구
“자신의 취향·안목 기르는 게 중요”

미술을 전공하고 대학에서 조형예술을 강의했던 권 대표는 2008년 대학로에 복합문화공간 비투프로젝트를 준비하면서 1층에는 카페를 내기로 했다. 인테리어 디자이너인 아내 변재희씨와 함께 카페에 놓을 가구를 찾았지만, 맘에 드는 게 없었다. 결국 아내가 독일에 잠시 살 때 샀던 집안 가구들을 임시로 썼는데, “예쁜데 팔면 안 돼요?” 요청하는 손님들이 줄을 이었다. 가구는 더 필요했고, 옛 친구도 볼 겸 독일로 여행을 떠난 게 10년 넘게 지속된 빈티지 숍 순례기의 시작이다.
 
“처음엔 빈티지 가구 구매를 핑계로 여행할 수 있어서 더 좋았죠. 1970년대 중동 건설 현장을 오갔던 아버지가 카시오 시계, 파카 만년필, 펜탁스 카메라, 마란츠 오디오, 소니 워크맨 같은 신제품에 다양한 외국 잡지까지 사다 주셨어요. 집이 김포공항 근처라 매일 아침 공항 화장실까지 뛰어가 세수하고 돌아왔을 정도로 외국 여행을 동경했죠.”
 
2차 대전 기점, 앤티크·빈티지 등 구분
 
덴마크 건축가 아르네 야곱센이 1950~60년대 만든 ‘세븐 체어’. [사진 비투프로젝트]

덴마크 건축가 아르네 야곱센이 1950~60년대 만든 ‘세븐 체어’. [사진 비투프로젝트]

빈티지 컬렉터나 전문가들은  2차 세계대전을 기점으로 ‘앤티크’ ‘빈티지’ ‘리프로덕션’ ‘중고’ 가구를 구분한다. 귀족 중심의 농경 사회였던 2차 세계대전 이전에는 맞춤옷처럼 개인·가문의 취향에 맞는 가구를 주문·생산했다. 그래서 이때 나온 ‘앤티크’ 가구들은 덩치도 크고 개성이 뚜렷하다.
 
“전쟁 후 사회·경제 패러다임이 바뀌면서 모던 디자인이 등장했어요. 변화된 생활환경과 대중성을 위해 디자이너가 디자인을 하면 제작자가 만드는 시스템으로 변화됐죠. 기술이 발전하고 수요가 증가하면서 대량생산 체제가 도입됐고, 결과적으로 생산 단가를 낮추기 위해 소재와 디테일의 질이 떨어졌죠. 그래서 전문가들은 사람이 손으로 기계를 돌려 깎아 만든 70년대까지의 제품을 ‘빈티지’, 같은 디자인이지만 80~90년대 기계로 대량생산된 제품을 ‘리프로덕션’으로 구분합니다. 리프로덕션 제품을 사용하다 시장에 내놓은 것을 ‘중고’라 하고요.”
 
우리가 을지로에서 빈번하게 만나는 ‘레플리카’는 모방품으로, 질이 낮고 가격은 저렴한 제품을 말한다.
 
“빈티지 가구의 매력은 좋은 소재와 손맛 나는 디테일, 당시의 기술을 한껏 응용한 기능성까지 겸비했다는 거죠. 요즘 생산되는 새 제품이나 리프로덕션 제품들은 흉내 낼 수 없는, 그 시대만의 소재와 디테일을 만나면 가슴이 뜁니다.”
 
예를 들어 덴마크 건축가 아르네 야곱센이 만든 ‘에그 체어’의 1950년대 제품은 소 두 마리 분량의 통가죽으로 만들었다. 1200번의 손바느질이 당대의 손맛을 대표한다. 머리-어깨-옆구리로 이어지는 날렵한 선도 요즘 생산되는 제품과는 확연히 다르다. 한국에 들여오기까지 8개월이나 걸렸다는 벨기에 건축가 윌리 반 데 미에렌의 50~60년대 캐비넷의 오묘한 푸른빛과 비대칭 철제 다리 디자인은 전 세계 어디서도 쉽게 구할 수 없는 보석과 같다.
 
30년대 체코에서 생산된 ‘할라발라 체어’. 최근에 옛날 방식으로 쿠션을 원형 복원시켰는데 그 과정이 엄청 정교하고, 흥미롭게도 충전재로 말털이 쓰인다는 사실을 알았다고 한다. [사진 비투프로젝트]

30년대 체코에서 생산된 ‘할라발라 체어’. 최근에 옛날 방식으로 쿠션을 원형 복원시켰는데 그 과정이 엄청 정교하고, 흥미롭게도 충전재로 말털이 쓰인다는 사실을 알았다고 한다. [사진 비투프로젝트]

인터넷이 발달하지 않아 정보가 부족했던 시절이나 전화 한 통으로 북유럽 가구를 주문할 수 있는 지금이나 권 대표는 유럽의 빈티지 숍을 직접 훑고 다니는 수고를 마다치 않는다.
 
“경험과 정성만큼 안목과 취향을 높이는 데 좋은 스승은 없죠. 컬렉팅은 단지 물건을 구입하는 게 아니라, 과정 자체의 소중한 경험과 그 물건에 얽힌 스토리를 공유하는 일이죠. 전 세계 빈티지 숍 오너들을 만나며 쌓은 인연이 제 인생에서 소중한 것도 같은 이유에요.”
 
유럽의 특정 지역에서 한두 달씩 살며 주변 빈티지 숍을 돌아봤다. 그때 알게 된 좋은 친구가 다른 지역의 친구를 소개하는 식으로 인연이 쌓였다. 현지에서 직접 살아보기, 현지 친구 사귀기는 그 나라의 문화를 이해하기에 더없이 좋은 방법이다. 동시에 그들의 삶의 공간을 채웠던 빈티지 가구를 공부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기도 하다.
 
기억에 남는 인연으로 한국인 입양아와의 사연을 꼽았다. 미국 LA로 빈티지 제품을 구하러 갔다가 짬을 내서 하와이에 들렀다. 색다른 도전을 좋아하는 부부는 마우이 섬의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정글 에어비앤비에 묵게 됐는데, 그때 만난 주인장이 제니다. 10살 전후의 한국인 남자아이를 입양한 그는 아들의 나라에서 온 손님을 환대했고, 권 대표는 고마움의 표시로 아들에게 한글을 가르쳤다. “한글이 과학적이라는 걸 실감했어요. 자음과 모음을 알려주고 조합 방법을 알려줬더니 한두 시간 만에 한글을 깨우치더라고요.”
 
컬렉팅 과정의 경험·스토리 공유 소중
 
벨기에 건축가 윌리 반 데 미에렌이 디자인한 50~60년대 캐비넷. 오묘한 푸른 빛깔과 비대칭 철제 다리가 오리지널 빈티지의 특징이다. [사진 비투프로젝트]

벨기에 건축가 윌리 반 데 미에렌이 디자인한 50~60년대 캐비넷. 오묘한 푸른 빛깔과 비대칭 철제 다리가 오리지널 빈티지의 특징이다. [사진 비투프로젝트]

제니는 권 대표 부부에게 자신의 고향이 스웨덴이라며 친오빠 로베르트의 연락처를 알려줬다. 2개월 뒤 스웨덴에서 로베르트를 만났고, 그는 스웨덴은 물론 덴마크의 빈티지 숍 리스트까지 만들어주며 또 친구를 소개해줬다.
 
가장 인상 깊은 손님은 1000만원 짜리 소파를 사 간 젊은 신혼부부다. 가구를 옮겨주려 집에 가보니 집에는 식탁조차 없이 휑했다. “함께 늙어갈 ‘반려가구’를 들여놓는 데 정성을 다하고 싶다면서 자신들의 공간에 어울리는 제품을 천천히 고민하면서 하나씩 구할 거라고. 성공적인 컬렉션을 위해 디자이너 유명세를 쫓기보다 자신의 취향과 안목을 기르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또 얼마나 필요한 일인지 새삼 느꼈죠. 이번 책을 쓰게 된 이유이기도 하고요.”
권용식 대표가 발간한 '마이 디어 빈티지' 책 표지에는 조형미가 아름다운 팬톤 체어 사진이 있다. (몽스북)

권용식 대표가 발간한 '마이 디어 빈티지' 책 표지에는 조형미가 아름다운 팬톤 체어 사진이 있다. (몽스북)

 
빈티지 디자인의 역사와 제품을 설명한 책들은 많지만 『마이 디어 빈티지』는 좀 다르다. 총 89점의 빈티지 가구를 소개하면서 디자이너와 제품 설명을 상세히 적은 것은 물론이고, 그 가구를 만났을 때의 에피소드까지 적어놓았다. 개인의 메모를 넘어 빈티지 가구의 시대별·나라별 특징과 시장의 흐름, 그런 디자인의 가구가 나올 수밖에 없는 문화·사회적 풍경들까지 여느 디자인 책에선 볼 수 없는 정보들이 빼곡하다. 자신에게 잠시 머물렀다 가는 ‘아름다운 아이들’을 기념하기 위해 직접 일일이 각도를 달리해 찍은 가구 사진들에는 저자의 행복이 고스란히 묻어있다.
 
서정민 기자/중앙 컬처&라이프스타일랩 meantr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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