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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아 학폭’ 명예훼손 무고 안 따진 경찰…JYP는 수사 불복

중앙일보 2021.06.18 05:00
올해 초 유행처럼 번진 연예인 학교폭력 의혹 폭로 사건에 대한 경찰 수사 결과에 불복하는 사례가 나왔다. JYP엔터테인먼트는 소속 걸그룹 ‘있지(ITZY)’의 리아가 과거 학폭 가해자였다고 주장한 네티즌을 최근 경찰이 무혐의 처분하자 지난 15일 이의신청을 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검찰이 해당 사건을 송치받아 보완수사를 벌이게 됐다(형사소송법 245조의7).
 
앞서 리아는 지난해 12월 자신에 대해 학폭 의혹을 제기하는 댓글 작성자 등을 경찰에 고소했고, 지난 2월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 리아의 동창생이라고 주장하며 리아로부터 학폭 피해를 당했다는 취지의 글을 쓴 A씨도 수사선상에 올랐다. A씨는 리아가 돈을 빌리고 갚지 않거나 아무 이유 없이 친구를 왕따시키고 지속적인 욕설과 폭언을 했다는 취지로 주장했다.
 
이 사건을 수사한 인천연수경찰서는 지난 13일 A씨 등이 리아의 명예를 훼손한 것으로 보기 어렵다는 이유를 들어 ‘혐의없음’으로 불송치 결정을 했다. 검·경 수사권 조정에 따라 1차 수사종결권을 갖게 된 경찰은 기소 의견일 때만 사건을 검찰에 송치한다. 이에 따라 A씨 등이 혐의를 벗게 되자 리아가 다시 수사해달라며 이의신청을 한 것이다.
 

경찰 “명예훼손 아냐” JYP “이의신청” 

있지(ITZY) 리아가 지난 9일 제주 일정을 마치고 김포공항에 도착하고 있다. 뉴스1

있지(ITZY) 리아가 지난 9일 제주 일정을 마치고 김포공항에 도착하고 있다. 뉴스1

JYP는 이의신청 배경에 대해 “경찰은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불송치 결정이 글 게시자의 내용이 거짓으로 볼 수 있는 증거가 없다는 것이지, 게시물의 내용이 사실이라고 인정하는 것은 아니라고 밝혔다. 즉, 이번 불송치 결정이 리아가 학교 폭력을 했다는 것을 인정하는 의미는 아니라는 내용”이라며 “더 깊이 있는 수사를 통해 진실이 꼭 가려지길 원한다”고 설명했다.
 
이와 관련, 한 법조계 인사는 “A씨의 주장을 ‘거짓으로 볼 수 있는 증거가 없다’는 경찰의 수사 결과가 자칫 무고죄로 이어질 수 있단 점을 고려한 조치로 보인다”고 해석했다. 이번 사건은 리아가 과거 학폭 사실이 없다고 주장하며 고소한 것이라 경찰의 불송치결정서에는 리아의 고소 행위에 대한 무고 판단이 적시돼야 했다는 지적이 나와서다.
 
경찰수사규칙(행정안전부령) 111조에 따르면 사법경찰관은 고소·고발 사건에 관해 혐의없음 결정을 하는 경우 고소·고발인의 무고 혐의 유무를 판단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경찰청 관계자는 “무혐의 결정 땐 예외 없이 불송치결정서에 무고에 대한 수사 담당자의 판단을 적시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허위 고소·고발의 경우 무고죄를 인지, 수사토록해 무분별한 고소·고발을 막기 위한 장치다.
 

“학폭 인정되나, 무고 여부 수사 안 해”

올해부터 시행된 검경 수사권 조정에 따라 1차 수사종결권을 가진 경찰은 사건 불송치 결정 시 무고 혐의 유무를 판단해야 한다(경찰수사규칙 111조). 서울 미근동에 위치한 경찰청의 모습. 연합뉴스

올해부터 시행된 검경 수사권 조정에 따라 1차 수사종결권을 가진 경찰은 사건 불송치 결정 시 무고 혐의 유무를 판단해야 한다(경찰수사규칙 111조). 서울 미근동에 위치한 경찰청의 모습. 연합뉴스

그러나 연수경찰서 관계자는 “무고 판단까진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글을 게재해서 명예를 훼손했는지만 판단한 거지, 실제 학폭이 있었는지 없었는지는 경찰이 단정할 순 없다”며 “사실을 적시했든 허위를 적시했든 명예훼손죄를 구성하는 덴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했다. ‘폭로된 내용에 대한 사실관계 여부는 살피지 않은 채 명예훼손 혐의 유무를 판단했다는 뜻이냐’는 지적에는 “사건 관계인 진술 등을 통해 수사한 결과 학폭 관련 글 내용은 허위로 볼 근거가 없고 비방의 목적도 없다고 봤기 때문에 사실로 인정된다고 판단했다”고 답했다.
 
이에 대해 법조계에선 “의아하다”는 반응이 나왔다. 수도권 지검의 한 검사는 “사건의 쟁점은 학폭 의혹에 대한 사실 여부인데, 이를 사실로 인정해 놓고 무고 여부를 따지지 않았다는 건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고소인이 해당 게시글 등을 허위라고 전제하며 고소한 사건이기 때문에 수사 결과 허위가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면 고소인에 대한 무고죄 입건을 검토해 무고죄 송치 여부를 같이 결론냈어야 한다”고 말했다. 리아가 글쓴이가 특정될 수 있는 온라인상의 글을 고소한 데다, 무고죄 처벌은 국가적 기능에 대한 법익을 보호하기 위한 것으로 친고죄가 아니어서다.
 

“고소사건 무혐의 땐 무고죄 인지해야”

검찰의 무고죄 인지 현황.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검찰의 무고죄 인지 현황.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검·경 수사권 조정 전에는 혐의 유무와 관계 없이 형사 입건된 모든 사건이 검찰로 넘어갔기 때문에 무고 혐의 유무 판단의 주체는 검사였다. 고소·고발 사건을 수사한 결과 무혐의로 종결할 땐 종종 무고죄를 인지해 거꾸로 고소인을 기소하기도 했다. 정봉주 전 열린민주당 최고위원이 2018년 자신에 대해 성폭력 의혹을 제기한 언론 매체를 고소했다가 취하했을 때 검찰이 무고 혐의로 정 전 최고위원을 기소한 게 대표적인 사례다. 다만, 그는 재판에서 무고 혐의를 벗었다.
 
반면, 수사권 조정 이후엔 검찰은 6대(부패·경제·공직자·선거·방위사업·대형참사) 주요 범죄 등 직접 수사를 개시할 수 있는 범죄 관련 고소·고발 사건에 대해서만 무고 여부를 판단할 수 있다. 경찰에 대한 수사지휘권이 폐지된 데다, 불송치 사건의 경우 불송치 결정이 위법·부당한 경우에만 1회 재수사를 요구할 수 있을 뿐 무고죄를 인지하라고 요구할 순 없기 때문이다.
 
대검찰청 통계에 따르면, 검찰이 무고죄로 인지한 인원은 수사권 조정 이후 눈에 띄게 줄었다. 2018년 1119명, 2019년 864명, 지난해 705명 등 최근 3년간 해마다 줄긴 했지만 올해는 지난 1~5월 기준 108명으로 감소 폭이 컸다. 5개월 기준으로 단순 계산하면 2018년 약 466명, 2019년 약 360명, 지난해 약 294명이다. 대검은 월별 통계는 제공하지 않았다. 무고죄 수사 경험이 있는 한 법조인은 “무고죄는 징역 10년 이하 또는 1500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해질 수 있는 중대한 ‘거짓말 범죄’”라며 “현 제도에선 경찰이 적극적으로 인지하길 바라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하준호 기자 ha.junho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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