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이현상의 시시각각]이런다고 집값 내려갑니까

중앙일보 2021.06.18 00:40 종합 30면 지면보기
서울 서초구 반포동의 한 부동산중개업소 앞 시세표. 서울 아파트 전셋값은 최근 2년 동안 단 한 주도 내리지 않고 상승세를 이어왔다. 작년 7월 임대차 2법을 도입했지만, 전세 품귀에 전셋값 급등같은 부작용이 나타나면서 세입자들의 시름이 더 깊어졌다. [연합뉴스]

서울 서초구 반포동의 한 부동산중개업소 앞 시세표. 서울 아파트 전셋값은 최근 2년 동안 단 한 주도 내리지 않고 상승세를 이어왔다. 작년 7월 임대차 2법을 도입했지만, 전세 품귀에 전셋값 급등같은 부작용이 나타나면서 세입자들의 시름이 더 깊어졌다. [연합뉴스]

집 문제와 관련해 최근 읽은 글 중에 소설가 장강명의 중앙일보 칼럼 '지금 무엇이 끝나고 있는 걸까'(6월 9일자)가 인상 깊었다. 새 전세를 구하러 다니다 절망해 부인과 낮술을 먹었다는 이야기에 가슴이 아렸다. 문재인 정부의 약속을 믿고 전세를 고집하다 낭패를 봤던 개인적 경험이 겹쳤다. 꽤 인기 있는 소설가, 안정적 직장을 다니는 중산층이 이럴진대 서민들은 오죽할까. '부동산 문제로 죽비를 맞았다'는 대통령의 표현은 한가하다. 몽둥이를 들어도 시원찮을 판이 서민의 심정이다.

분노의 시선 돌리는 탈당 권유 쇼
현실성 의심쩍은 '누구나집'까지
문제 본질 회피하며 기교만 부려

 
여당이 투기 의혹 의원 12명에 대해 탈당·출당 권유를 내리며 '특단의 조치' '비장한 결단'이라고 생색을 냈다. 묻지도 따지지도 않은 결정이 뜬금없었지만, 그래도 일말의 절박함은 담았다고 봤다. 하지만 자성의 어기(語氣)가 빠지기도 전에 야당을 겨누는 모습을 보고 생각이 달라졌다. '읍참마속'인 줄 알았더니, 실은 '육참골단'(자신의 살을 내주고 상대의 뼈를 자름) 전략이었다. 자연스레 여론에 기댈 일을 직접 나서면서 진정성을 의심받았다. 게다가 12명의 의원은 열흘이 다 되도록 단 한 명도 당을 떠나지 않았다. 고뇌의 결정을 하며 보였다는 송영길 대표의 눈물이 민망할 지경이다.

 
쇼는 화려하지만, 문제는 그대로다. 상상도 못 할 공급대책을 내놓겠다며 큰소리친 여당이 내놓은 안이 '누구나집' 프로젝트다. 집값의 일부만 내고 10년 거주한 뒤 원하면 미리 정한 분양가에 소유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이다. 송 대표는 "재정이 들지 않는 주택혁명"이라고 자화자찬했지만, '뇌피셜'에 가깝다. 이 안을 간단하게 정리하면 입주자가 져야 할 리스크를 공급자가 떠안는 사업구조다. 과연 어떤 공급자가 선뜻 뛰어들지 의문이다. 결국 부동산이 계속 오르지 않는다면 정상 작동하기 힘든 계획이다. 혹시 '우리 능력으로는 도저히 집값을 잡을 수 없다'는 고백인가.

 
여권의 부동산 대책이 문제의 본질은 외면한 채 변죽만 울리고 있다. 뒤늦게 문제의 핵심은 공급이라는 사실은 깨달았지만, 해법은 지리멸렬하다. 2·4대책은 공공 주도라는 답답한 틀에 갇혀 표류하고 있다. 민간의 개발 욕구 유인책에 대한 고민은 선택지에 아예 없다. 시장을 무시한 탁상공론 대책으로는 답이 나올 리 없다. 정부과천청사 개발 계획 변경과 태릉골프장 개발 주민 반대 같은 차질은 예견된 일이었다.

 
비상한 문제에는 비상한 해법이 필요하고, 비상한 해법은 비상한 용기가 없으면 나오지 않는다. 말과는 달리 여권의 부동산 대책에서 위기감과 긴장감을 찾기 힘들다. 당의 핵심 기반과 이념의 덫에 걸려 엉거주춤하며 땜질로 일관한다. 대충 고민하는 척하면서, 세금이나 조금 완화해 중산층의 환심을 사서 내년 대선을 치르자는 속셈인가.

 
비상한 용기가 필요한 문제 중 하나가 그린벨트다. 문재인 정부는 공급 확대 필요성이 제기될 때마다 그린벨트 카드를 만지작거리다 접었다. 그린벨트는 녹색 허파라는 도식적 인식을 거스를 용기가 없었기 때문이다. 서울 외곽 그린벨트의 20% 이상이 보존 가치가 거의 없는 3, 4, 5등급이라는 사실은 외면했다. 초기에 허울뿐인 그린벨트에 과감하게 대규모 공급을 결정했다면 지금의 부동산 난맥은 많이 달라졌을 것이다. 여당은 이번에도 그린벨트 카드를 다시 꺼냈지만,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며 대선 공약 과제로 미뤄 놓고 말았다.

 
지친 국민은 묻는다. 이런다고 집값 내려갑니까? 임기응변 기교만 부려서는 답이 없다. 문제의 본류와 맞서야 한다. 파격적 공급이 있어야만 공공성 확대도, 적절한 규제도 더 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 노태우 대통령의 200만 호, 이명박 대통령의 보금자리주택은 과감한 공급책만이 해결책임을 보여줬다. 위기에 몰린 상황에서 정면 대결하지 않고 요리조리 공을 빼다 무너지는 투수를 많이 봤다. 정권의 운명이야 신경 쓸 바 아니지만, 집 때문에 홧술 들이켜는 이웃들을 더는 보기 힘들다.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이현상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이현상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공유하기

중앙일보 뉴스레터를 신청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