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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 출연연이 독일 프라운호퍼보다 낫다는데…“장롱 특허로 생색”

중앙일보 2021.06.17 17:04
25개 정부 출연연구기관을 관장하는 국가과학기술연구회(NST) 홈페이지. [사진 NST 홈페이지 캡쳐]

25개 정부 출연연구기관을 관장하는 국가과학기술연구회(NST) 홈페이지. [사진 NST 홈페이지 캡쳐]

정부가 출연연구기관(출연연)의 연구 성과를 자화자찬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현실을 정확히 진단해 개선 방향과 미래 전략을 수립하는 게 아니라 연구 성과를 포장하는 데 급급하다는 것이다.  
 
25개 과학기술계 출연연을 관장하는 국가과학기술연구회(NST)는 17일 최근 5년간(2016~2020년) 출연연의 기술이전·사업화 성과 분석 결과를 발표했다. 출연연의 기술료·특허 성과가 상대적으로 뛰어나다는 게 주요 내용이다. 이 같은 우수한 연구 성과를 바탕으로 NST는 출연연이 기술 이전과 창업 확산에 우수한 성과를 거뒀다고 주장했다.
 

출연연 성과, 질보다 양 앞세운 NST

국가과학기술연구회 (NST)는 25개 정부출연 연구기관을 통합 지원하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산하 공공기관이다. 2014년 6월에 기초기술연구회와 산업기술연구회를 통합해 출범했다. [중앙포토]

국가과학기술연구회 (NST)는 25개 정부출연 연구기관을 통합 지원하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산하 공공기관이다. 2014년 6월에 기초기술연구회와 산업기술연구회를 통합해 출범했다. [중앙포토]

NST의 발표 내용만 놓고 보면 한국 출연연은 세계적 연구기관보다 우수한 성과를 거뒀다. NST는 “산업화형 6개 출연연의 투입예산(4조6013억원) 대비 기술료 수입(1090억원)의 비율(5%)이 점차 올라 2019년부터는 독일 프라운호퍼연구회(3.9%)를 웃돌기 시작했다”고 발표했다. 여기서 산업화형 6개 출연연은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한국생산기술연구원·한국전기연구원·한국화학연구원·한국기계연구원·한국재료연구원을 가리킨다. 
 
유럽 최대 응용연구기관인 독일 프라운호퍼연구회는 75개 독일 연구소로 구성된다. 이곳에서 2019년 사용한 전체 예산 총액(3조6000억원) 대비 기술료 수입(1391억원)의 비중(3.9%)이 출연연(5%)보다 1.1%포인트 낮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프라운호퍼연구회는 비교 대상이 잘못됐다는 입장이다. 박병관 프라운호퍼연구회 한국사무소 대표는 “프라운호퍼연구회는 특허 등록을 통한 기술료 수입보다 위탁 연구를 통해 민간기업이 의뢰한 기술을 개발하는 업무에 주력한다”며 “주로 공공 과제를 수행하는 한국 출연연과 주로 민간 과제를 수행하는 프라운호퍼연구회는 기술료를 기준으로 비교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NST는 산업화형 6개 출연연을 포함한 25개 출연연의 예산 대비 기술료 수입이 2.4%라고 밝혔다. 주로 기초연구를 수행하는 독일 막스플랑크연구회(0.7%)나 일본 이화학연구소(1.2%)보다 월등히 높다.  
 
이 역시 비교 대상이 애매하다. 국내 출연연의 기술료 수입을 계산하면서는 산업화형 출연연의 기술료 성과를 포함했고, 독일(프라운호퍼연구회)·일본(산업기술총합연구소)은 산업화형 연구기관의 기술료 성과를 제외했다. 만약 비교가 필요했다면 산업화형 6개 출연연의 기술료 수입을 제외한 수치를 비교했어야 한다는 의미다.  
  

“혈세 투입한 R&D 성과, 제대로 평가해야”

국가과학기술연구회(NST)가 입주한 세종국책연구단지. [사진 NST]

국가과학기술연구회(NST)가 입주한 세종국책연구단지. [사진 NST]

특허 출원 성과도 마찬가지다. NST는 최근 5년간 출연연이 출원한 특허 건수가 3만9263건, 등록한 특허 건수가 2만6513건이라고 밝혔다. “국가 연구개발사업(정부 R&D) 전체 특허 등록 건수의 25%가 출연연에서 나오고, 특히 해외 등록 특허는 70% 정도가 출연연 특허”라는 주장이다.
 
문제는 특허의 질이다. 대한변리사협회가 특허등급 평가시스템을 통해 올해 19개 출연연이 특허청에 등록한 384건의 특허를 분석했더니 국내 특허는 대부분 ‘장롱 특허’였다.
 
446명의 변리사가 출연연이 출원한 특허의 유효성·범위·강도를 기준으로 특허를 10개 등급으로 구분했더니, 가장 우수한 1등급 특허는 단 1개도 없었다. 2등급 특허가 1개(0.3%), 3등급 특허가 25개(6.5%)였다. 절반 이상이 5등급(174개·45.3%)·6등급(48개·12.5%)이었다.
 
홍장원 대한변리사협회장은 “5~6등급 특허는 기업이 필요해서 사들일 만한 매력은 전혀 없는 수준으로, 통상 ‘장식적인 특허’ 내지는 ‘장롱 특허’라고 부르는 수준”이라며 “국민의 혈세가 들어가는 국가 연구개발 사업이 효율적으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특허의 양에 치중하는 현재의 방식으로 벗어나, 특허의 질을 평가하는 방식으로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김진현 세계평화포럼 이사장(전 과기처 장관)은 “시간이 갈수록 기초과학과 응용과학의 경계가 모호해지는 상황에서 양측을 명확히 구분하기 어렵다”며 “만약 기초과학을 평가하더라도 당장 기술료 수입보다 기술의 질을 기준으로 평가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문희철 기자 reporte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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