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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든 중·러 갈라치기 "中 뜨는데…러, 中때문에 찌그러진다"

중앙일보 2021.06.17 16:47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과거의 적'을 포섭해 '새로운 적'을 견제하는 바이든식 '이이제이'(以夷制夷) 전략을 선보였다. 과거의 적은 냉전시대 때 대결 상대였던 러시아, 새로운 적은 현재 미국의 패권을 위협하는 중국으로, 16일(현지시간)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미ㆍ러 정상회담을 계기로 바이든 대통령은 '중·러 갈라치기'를 시도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16일(현지시간) 스위스 제네바에서 만나 악수를 하려는 모습. AP=연합뉴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16일(현지시간) 스위스 제네바에서 만나 악수를 하려는 모습. AP=연합뉴스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정상회담 뒤 전용기 에어포스원에 탑승하기 전 기자들과 만나 "러시아는 굉장히 어려운 상황에 놓여있다"며 "러시아는 중국으로 인해 찌그러지고(squeezed) 있다"고 말했다. 

바이든, 중국 부상에 따른 러시아 부담감 자극
美 "러, 냉전 원하지 않아" vs 中 "미ㆍ중 갈등 완화 못 해"
'中 뒷배 끊기 전략' 北에도 적용 가능성

이보다 1시간 앞선 기자회견에선 "중국은 앞으로 나아가고 있고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경제 대국이 되고자 한다"며 "경제적으로 어려운 러시아는 더욱 공격적으로 나설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중국의 부상으로 인해 러시아가 맞닥뜨린 경제·외교적 위협을 부각한 것이다. 
 
그는 또 "러시아는 핵무기를 가진 '어퍼 볼타'가 되고 싶어하지 않는다"며 "미국과 냉전을 벌이는 걸 원하지도 않는다"고 말했다. '핵무기를 가진 어퍼 볼타'는 냉전 시대 때인 1980년대에 소련의 핵무장과 관련해 자주 등장한 표현이다. '어퍼 볼타'는 현재의 서아프리카 부르키나파소를 뜻하는데 '경제적으로 뒤쳐진 국가가 핵무기만 갖는다고 해서 강대국으로 부상할 수는 없다'는 취지의 비유로 자주 쓰였다.
 
이를 두고 미국이 중국의 부상을 마냥 환영할 수 없는 러시아의 심리를 자극해 미국과 관계 회복을 유도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핵무기와 경제 성장을 함께 언급한 것도 '군사력 강화에만 집중하다 중국의 위협에 밀려 경제 성장은 엉망이 되길 원하느냐'는 경고의 메시지를 우회적으로 던진 것으로 볼 여지가 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16일(현지시간) 스위스 제네바에서 만나 회담하는 모습. AP=연합뉴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16일(현지시간) 스위스 제네바에서 만나 회담하는 모습. AP=연합뉴스.

중국 측은 이날 회담의 의미를 축소하면서도 경계심을 드러냈다. 중국 관영 글로벌타임스는 전문가들을 인용해 "미ㆍ러 간 교착 상태가 잠시 누그러질 순 있어도 구조적 갈등을 바꿀 순 없다"고 평가했다. 또 오바마 행정부 당시 미국이 러시아를 '지역 강대국'으로 지칭했던 것과 달리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러시아를 미국과 함께 '양대 강대국'으로 표현했다고 지적하며, "중ㆍ러 관계를 분열하려는 전략"이라고 비판했다.
 
향후 바이든 행정부가 실제로 중국을 견제하는 데 중점을 두고 대러 정책을 운용할 것인지에 대해선 관측이 엇갈린다. 
앞서 미국은 닉슨 행정부 시절 헨리 키신저 전 국무장관의 주도로 중국과 연대해 소련을 고립시키는 정책을 펼쳤다. 이에 트럼프 행정부 때 이를 반대로 응용한 '역 닉슨 전략' 내지는 '역 키신저 전략'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당시엔 러시아의 미 대선 개입 의혹 등으로 사실상 좌초했는데, 바이든 행정부가 비슷한 전략을 다시 시도할 수도 있다는 전망이 제기된다.
 
반면 바이든 행정부가 근본적인 대러 정책을 수정하진 않을 거란 분석도 적지 않다. 장세호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연구위원은 "바이든 행정부는 기본적으로 러시아가 권위주의적 체제라는 점 등에서 부정적 인식을 갖고 있으며, 중ㆍ러를 동시에 제압하겠다는 의지가 강하다"며 "다만 양국 관계의 지나친 악화는 막겠다는 의지가 있으며 이번 정상회담에서도 소기의 성과를 거뒀다"고 평가했다.
16일(현지시간)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미ㆍ러 정상회담. 연합뉴스

16일(현지시간)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미ㆍ러 정상회담. 연합뉴스

이날 양국은 인권, 해킹 문제 등에선 평행선을 달렸다. 당초 4~5시간 정도의 마라톤 회담이 될 것으로 예상됐지만, 실제로는 약 3시간 30분만에 끝났다. 기자회견도 공동기자회견이 아니라 양 정상이 별도로 진행하는 식이었다. 
바이든 대통령은 푸틴 대통령에게 사이버 공격이 이뤄져서는 안 될 16개 인프라 시설 목록을 전달하기도 했는데, 러시아가 해당 시설들에 대해 사이버 공격을 감행할 경우 강력하게 대응하겠다는 경고성 메시지로 보인다.
 
공감대를 형성한 부분도 있다. 양국은 미ㆍ러 간 핵 통제 조약인 '신전략무기감축 협정'(뉴스타트ㆍNew Start)이 2026년 만료되는 만큼 이를 대체하기 위한 핵 협상을 시작하기로 했다. 또 양국 대사를 복귀시키기로 합의했다. 앞서 러시아는 지난 3월 미국의 대러 제재에 반발해 워싱턴에 있는 자국 대사를 본국으로 불려들였고, 이에 맞서 주러 미국 대사도 모스크바에서 철수했다.
 
일각에선 미국의 소위 '중국 뒷배 끊기' 전략이 북한에도 그대로 적용될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북한과의 비핵화 협상을 유리하게 끌고 가려면 북·중·러 연합 구도를 느슨하게 만드는 것이 미국에 유리하기 때문이다. 
또 바이든 행정부가 '핵을 제거한 북한'의 청사진으로 트럼프 행정부도 강조했던 경제적 번영을 중심에 둔 보상을 제시할 수도 있다. 북한이 비핵화 뒤 중국의 영향력에 들어가는 것 역시 미국이 경계하는 시나리오이기 때문이다.  
 
박현주 기자 park.hyunj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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