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文 "바람직 않다"는 현금화 시계 재가동...차기 정부 '폭탄' 안을 수도

중앙일보 2021.06.16 17:10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배상을 위해 한국 내 일본 정부 자산을 공개하라는 법원 판결에 일본이 강하게 반발했다. 강제징용 판결에 이어 위안부 판결과 관련해서도 강제 집행 수순에 돌입하며 한·일 관계 개선의 길은 한층 험난해졌다.
지난 21일 서울 서초구 중앙지방법원에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국내 법원에 제기한 두 번째 손해배상 청구 소송 선고 공판이 끝난 뒤 이용수 할머니가 판결에 대한 입장을 밝힌 뒤 눈을 감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21일 서울 서초구 중앙지방법원에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국내 법원에 제기한 두 번째 손해배상 청구 소송 선고 공판이 끝난 뒤 이용수 할머니가 판결에 대한 입장을 밝힌 뒤 눈을 감고 있다. 연합뉴스

가토 가쓰노부(加藤勝信) 관방장관은 16일 기자회견에서 "올해 1월 서울중앙지법 판결은 국제법 및 한·일 양국 간 합의에 명백히 반하는 것으로, 받아들일 수 없다"며 "일본으로서는 한국에 국가적인 책임을 지고 국제법 위반 상태를 시정하기 위한 적절한 조치를 강구할 것을 계속 강하게 요구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현금화 등 강제집행, 한ㆍ일 관계 '레드라인'
관련 절차 최소 2~3년...차기 정부 부담

 
이는 전날 서울중앙지법이 일본 정부가 한국 내에 소유하고 있는 재산을 공개하라고 명령한 데 대한 반발이다. 중앙지법은 지난 1월 일본 정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승소한 위안부 피해자 12명에 배상금을 지급하기 위한 첫 절차로 이런 명령을 내렸다. 
 
가토 장관의 발언은 사실상 법원의 명령에 불응하겠다는 입장으로 일본 정부는 해당 소송 내내 무대응으로 일관했다. 이번에도 법원의 명령을 담은 관련 서류를 일본이 수령하지 않으면, 원고인 위안부 피해자들은 다음 절차에 착수할 수 있다. 은행을 비롯한 금융기관이 일본 정부의 국내 자산을 조회할 수 있도록 법원에 요청하는 것이다. 
 
앞서 2018년 10월 대법원이 일본 전범 기업을 상대로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제기한 손해 배상 청구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한 뒤 이를 근거로 한 현금화 관련 절차도 진행되고 있다. 지난 1월 대구지법 포항지원은 피고인 일본제철(옛 신일철주금)의 한국 내 주식을 현금화하기 위해 해당 주식에 대한 감정서를 제출받았다. 자산 감정이 마무리되면 다음 절차는 매각 명령이다.
 
일본은 일찌감치 한국이 일본 기업 자산을 현금화할 경우 양국 관계는 되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는 것이라며 이를 '레드 라인'으로 설정했다. 특히 이번 위안부 피해 배상 관련 법원 결정은 현금화 대상은 일본 정부이기 때문에 일본은 이를 더 중대하게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실제 일본 정부의 한국 내 자산을 살펴보는 것 자체가 파장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현금화가 현실화할 경우에는 '외교 관계에 대한 비엔나 협약' 위반 소지가 있으며, 일본 측의 경제 보복 등 우려도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월 신년 기자회견에서 "(일본 기업의 국내 자산에 대한) 강제 집행이나 현금화로 판결이 실행되는 방식은 한ㆍ일 관계에 있어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문 대통령은 "그런 단계가 되기 전에 외교적 해법을 찾는 것이 우선"이라고 강조했다. 
어버이날을 앞둔 지난달 2일 경기도 광주 퇴촌면의 나눔의집 추모공원에서 위안부 피해자인 고 김순덕, 고 이용녀 할머니의 유족들이 고인의 묘비에 카네이션을 헌화하고 있다. 우상조 기자

어버이날을 앞둔 지난달 2일 경기도 광주 퇴촌면의 나눔의집 추모공원에서 위안부 피해자인 고 김순덕, 고 이용녀 할머니의 유족들이 고인의 묘비에 카네이션을 헌화하고 있다. 우상조 기자

하지만 중앙지법은 15일 재산 공개 명령을 내리며 "강제집행 뒤 발생할 수 있는 대일관계 악화 등의 문제는 행정부의 고유 영역으로, 사법부의 영역을 벗어난다"고 했다. 한·일 관계에 미칠 파장은 정부가 알아서 할 일이고, 법원은 이와 무관하게 법적 절차를 이행하겠다는 뜻이다. 
 
2018년 10월 대법원 판결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현금화 등 강제집행 위한 법적 절차에는 수년이 걸릴 수도 있다. 문재인 정부가 사법부의 판단을 존중한다며 손을 놓고 있을 경우 현금화라는 대형 폭탄을 떠안는 건 차기 정부가 될 가능성이 크다. 
 

결국 양국 정부가 외교적 협상을 통해 원고인 위안부 피해자들도 받아들일 수 있는 정의 실현 방안을 마련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전문가들은 조언한다. 
이원덕 국민대 일본학과 교수는 "정부의 대위 변제나 일본 정부 예산을 바탕으로 조성된 화해·치유 재단의 잔금 활용 등 다양한 가능성을 열어 놓고, 국내적으로는 피해자들의 의사를 수렴하면서 대외적으로는 일본과 협의하는 방안을 고민해볼 수 있다"며 "법원 판결 때문에 외교가 꼼짝하지 못 한다는 식이어선 안 된다"고 말했다.
 
박현주 기자 park.hyunj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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