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백신 부작용 적극 보상한다더니, 되레 인과성 기준 올린 정부

중앙일보 2021.06.16 05:00
지난달 17일 서울 동대문구체육관에 마련된 코로나 백신 접종센터에서 접종한 시민들이 이상반응 모니터링 구역으로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달 17일 서울 동대문구체육관에 마련된 코로나 백신 접종센터에서 접종한 시민들이 이상반응 모니터링 구역으로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백신과의 인과성이 확인되면 지원을 확대하겠다.”

 
지난달 18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 이상반응을 호소하는 게시글이 쏟아지자 정부가 밝힌 입장이다. 당시 게시글 중에선 국민청원 답변 요건인 20만명 동의를 충족한 청원이 없었으나 청와대는 이례적으로 “국민의 염려가 있어 답변을 드린다”며 입장을 밝혔다. 
 
한 달여가 지난 지금은 달라졌을까. 14일 예방접종 피해조사반 발표에 따르면 코로나19 백신 접종 후 신고된 사망 및 중증 사례 408건 중 인과성이 인정된 사례는 단 3건에 그쳤다. 한 달 전보다 1건 늘어났다. 판정 보류는 13건, 명확히 인과성이 없거나 인정되기 어려운 사례는 392건을 차지했다.  
 

전문가 “올해 초 인과성 판단 기준 엄격해져”

지난달 17일 서울 용산구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접종센터에서 어르신들이 백신 접종을 위해 대기하고 있다. 뉴스1

지난달 17일 서울 용산구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접종센터에서 어르신들이 백신 접종을 위해 대기하고 있다. 뉴스1

전문가들은 애초에 백신과 이상반응의 인과성을 입증하기가 어려운 데다 정부가 올해 초 인과성 판단 기준을 강화한 것도 영향이 미쳤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코로나19 백신은 개발 기간이 짧다. 장기적으로 어떤 부작용이 있는지 모른다. 그래서 정부는 접종 개시 전부터 이상반응 정보를 빠르고 투명하게 공개하고 부작용이 발생하면 적극 보상하겠다고 공언했다. 그런데 오히려 이상반응 인정 기준이 더 엄격해졌다는 지적이 나온다.
 
문제로 지적된 건 정부가 발표한 예방접종 피해보상 심의 기준이다. 정부는 피해보상 심의 기준을 총 5가지로 나누는데 ▶① 인과성이 명백한 경우 ▶② 인과성에 개연성이 있는 경우 ▶③ 인과성에 가능성이 있는 경우 ▶④ 인과성이 인정되기 어려운 경우 ▶⑤ 명확히 인과성이 없는 경우다. 정부가 피해보상을 하는 건 ①~③번에 해당하는 경우다.
 

올해부터 “백신 접종에 의한 가능성 더 커야 인정”

지난 4월 공개된 코로나19 예방접종 후 이상반응 관리 지침.

지난 4월 공개된 코로나19 예방접종 후 이상반응 관리 지침.

지난 4월 발표된 코로나19 예방접종 후 이상반응 관리 지침을 보면 ‘③ 인과성에 가능성이 있는 경우’에 해당하는 기준이 강화됐다. 지난해 발표된 예방접종 지침과 이번 지침을 비교하면 아래와 같다.
 

[2020년 지침] 백신을 접종한 확실한 증거를 확보하였고, 이상반응이 출현한 시간적 순서에 근접성이 있으나 다른 이유에 의한 결과의 발생 역시 백신 접종에 의한 개연성과 '동일한 수준'으로 인정되는 경우

[2021년 지침] 백신을 접종한 확실한 증거를 확보하였고, 예방접종 후 이상반응이 발생한 시기가 시간적 개연성이 있으며, 이상반응이 '다른 이유보다는 예방접종으로 인해 발생했을 가능성이 더 높은' 경우

 
지난해까지는 기저질환 등 다른 이유에 의해 이상반응이 발생할 가능성과 백신 접종에 의한 이상반응 발생 개연성이 동일한 수준일 때에도 이상반응으로 인정됐다면 이번 해부터는 예방접종으로 인해 발생했을 가능성이 더 높은 경우에만 인정하는 것으로 지침이 수정됐다. 
 

전문가 “시대착오적 발상”

15일 서울 성북구 코로나19예방접종센터에서 백신을 맞기 위해 예진표를 작성하고 있다. 뉴스1

15일 서울 성북구 코로나19예방접종센터에서 백신을 맞기 위해 예진표를 작성하고 있다. 뉴스1

이에 김윤 서울대 의대 예방의학교실 교수는 “정부가 말로는 보상 범위를 넓힌다고 해놓고 오히려 백신으로 인한 가능성이 명확해야 인정해주는 방향으로 기준을 강화했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기준을 바꾼 근거가 무엇인지, 바꿨으면 이후 심의 과정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정부가 투명하게 밝혀야 한다고 비판했다. 
 
최재욱 고대 의대 예방의학과 교수 역시 “정량적 평가를 해서 예방접종으로 인해 이상반응이 발생했을 가능성이 최소 51%가 돼야 보상 한다는 의미”라며 “개인 간 민사 손해배상을 할 때나 적용하는 기준을 국가 예방접종에서 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비판했다. 집단면역 달성이라는 공공성이 강한 예방접종 사업에서 민간 보험사가 하는 것처럼 50%냐, 51%냐라는 잣대를 적용하는 건 윤리적으로 맞지 않는다는 주장이다. 특히 최 교수는 “결국 피해 입증도 피해자 몫으로 돌아가고 있다"라며 "피해자들이 언제 진단서를 떼고 다니냐”고 지적했다. 그는 “질병관리청이 시대착오적인 발상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질병청 “해당 논의 2018년부터 진행”

일별 누적 백신 접종 인원.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일별 누적 백신 접종 인원.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이런 주장과 관련해 질병청은 변경된 지침에 대한 논의는 이미 2018년부터 진행됐고, 코로나19 접종에 맞춰 기준을 강화한건 아니라고 반박했다. 질병청 관계자는 “2018년 자문회의에서 논의가 시작됐고 2019년 변경안을 놓고 한 번 더 예방접종 전문위원회 심의가 이뤄졌다”며 “그러다가 올해 코로나19 심의 기준을 만들면서 반영이 됐다”고 설명했다. 해당 논의가 이루어진 배경에 대해서는 “당시 지침 내용이 너무 복잡해 국민이 알기 쉽게 명확히 해달라는 요청이 있었다. 또 내부적으로 '다른 이유에 의한 결과'와 '백신 접종'이 동일한 수준으로 인정된다는 걸 판단하기 어렵다는 의견이 있어 변경이 된 사안”이라고 답했다.  
 
질병청은 오히려 지난달 17일 피해보상 심의 기준을 세분화해 의료비 지원 대상을 확대했다는 입장이다. 당시 정부는 ‘④인과성이 인정되기 어려운 경우’를 ④-1과 ④-2로 나누었는데 ‘④-1 백신과 이상반응에 대한 자료가 충분치 않을 경우’에 해당하면 최대 1000만원까지 의료비 지원을 받을 수 있다. 정기석 한림대성심병원 호흡기내과 교수는 “정부가 강제로 하는 접종은 아니기 때문에 책임의 반은 개인에게 있다”며 “이 정도의 변경은 무리가 없는 수준”이라고 말했다. 
 
이우림 기자 yi.woolim@joongang.co.kr
공유하기

중앙일보 뉴스레터를 신청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