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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뒤집힌 위안부 판결, 법원 이번엔 “강제집행 적법”

중앙일보 2021.06.16 00:02 종합 14면 지면보기
지난 1월 일본 정부 상대 손해배상소송에서 승소한 위안부 피해자 배춘희 할머니 등 12명이 “국내에서 강제집행할 수 있는 일본 재산을 명시해달라”고 낸 신청을 법원이 받아들였다. 15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 민사51단독 남성우 판사는 지난 9일 “일본 정부는 재산 상태를 명시한 재산 목록을 제출하라”고 결정했다. 소송을 통한 위안부 및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대일 배상 청구권과 강제집행 권한을 사실상 부정한 같은 법원 민사34부(재판장 김양호) 등의 결정을 또 다시 뒤집는 내용이다.
 

위안부 피해자 재산명시 신청 인용
법원, 개인의 위자료 청구권 인정
“외교관계에 대한 빈협약 위반 아냐”
김양호 판사 판결과 정반대 결정

서울중앙지법 민사34부(재판장 김정곤)는 지난 1월 배 할머니 등이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 “일본은 원고들에게 각 1억원씩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이 판결은 일본 정부가 항소를 안 해 그대로 확정됐고, 배 할머니 등은 강제집행을 위해 법원에 ‘재산명시신청’을 냈다. 재산명시신청은 확정판결에 근거해 강제집행을 개시할 때 채무자(일본 정부)의 재산 목록을 확인해줄 것을 법원에 요청하는 것이다.
 
남 판사는 결정문에서 일본에 대한 재산명시 결정을 하며 이번 강제집행신청이 적법한지 아닌지에 대해서도 직권으로 판단했다. 남 판사는 외교적 문제는 사법부가 판단에서 고려할 사항이 아니라고 전제했다. 그는 “확정판결에 따라 일본국에 대한 강제집행 실시 이후 발생할 대일관계 악화나 경제 보복 등 국가 간 긴장 발생 문제는 외교권을 관할하는 행정부의 고유 영역이고, 사법부의 영역을 벗어나는 것이므로 강제집행신청의 적법 여부를 판단함에 있어 고려사항에서 제외하고 법리적 판단을 함이 마땅하다”고 결정문에 썼다.
 
그러면서 위안부 피해자들의 손해배상청구권이 소멸했는지, 이 사건에 국제법상 국가면제가 적용되는지를 따졌다. 이 두 가지 쟁점은 본안 소송에서도 핵심적으로 다뤄진 쟁점이다.
 
남 판사는 “강제동원 노동자의 일본 기업에 대한 위자료 청구권은 한일청구권협정에 포함되지 않아 소송을 낼 수 있다고 판단한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이 있고, 이를 위안부 피해자들의 청구권과 달리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위안부 피해자들의 일본 정부를 상대로 한 손해배상청구나 강제집행 신청이 외교관계에 대한 빈 협약을 위반한 것도 아니라고 했다.
 
남 판사는 이 사건이 국가면제의 예외에 해당한다고 판단해 강제집행 신청이 적법하다는 결론을 냈다. 국가에 의해 자행된 중대한 인권침해 행위에 대해 국가면제를 인정하는 것이 오히려 국제사회 공동의 이익을 위협하고, 국가면제 이론은 항구적인 가치가 아니라는 판단에서다.  
 
이번 결정문에서 명시한 한일청구권협정과 손해배상청구권 소멸 여부와 국가면제 예외 인정 여부에 대한 판단은 지난 6개월간 법원에서 여러 차례 뒤집혔다. 위안부 할머니들의 1·2차 소송은 서울중앙지법에서만 위안부 피해자는 손해배상을 받을 수 있다는 1차 판결(1월) 이후 강제집행은 부적절해 소송비용은 일본에 받을 수 없다는 결정(3월), 국가면제에 따라 일본 정부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는 허용 안 된다는 2차 판결(4월), 그리고 강제집행은 적법하니 일본은 재산을 명시하라는 이번 결정까지 판결의 주요 취지가 두 차례나 정반대로 뒤집혔다.  
 
이수정 기자 lee.sujeong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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