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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안부 강제집행 적법, 日 재산목록 내라"…法 또 반대 결정

중앙일보 2021.06.15 16:53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 앞. 뉴스1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 앞. 뉴스1

지난 1월 일본 정부 상대 손해배상소송에서 승소한 위안부 피해자 배춘희 할머니 등 12명이 “국내에서 강제집행할 수 있는 일본 재산을 명시해달라”고 낸 신청을 법원이 받아들였다. 서울중앙지법 민사51단독 남성우 판사는 지난 9일 “일본 정부는 재산 상태를 명시한 재산 목록을 제출하라”고 결정했다.
 

3월 "강제집행 안 된다"→6월 "강제집행 적법" 반대 결정

지난 1월 서울중앙지법 민사34부(재판장 김정곤)는 배 할머니 등이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 “일본은 원고들에게 각 1억원씩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이 판결은 일본 정부가 항소를 안 해 그대로 확정됐고, 배 할머니 등은 강제집행을 위해 법원에 ‘재산명시신청’을 냈다. 재산명시신청은 확정판결에 근거해 강제집행을 개시할 때 채무자(일본 정부)의 재산 목록을 확인해줄 것을 법원에 요청하는 것이다.
 
남 판사는 결정문에서 일본에 대한 재산명시 결정을 하며 이번 강제집행신청이 적법한지 아닌지에 대해서도 직권으로 판단했다. 남 판사는 외교적 문제는 사법부가 판단에서 고려할 사항이 아니라고 전제했다.
 
결정문에는 확정판결에 따라 일본국에 대한 강제집행 실시 이후 발생할 대일관계 악화나 경제 보복 등 국가간 긴장 발생 문제는 외교권을 관할하는 행정부의 고유 영역이고, 사법부의 영역을 벗어나는 것이므로 강제집행신청의 적법 여부를 판단함에 있어 고려사항에서 제외하고 법리적 판단을 함이 마땅하다라고 썼다.
 
그러면서 ▶위안부 피해자들의 손해배상청구권이 소멸했는지 ▶이 사건에 국제법상 국가면제가 적용되는지를 따졌다. 이 두 가지 쟁점은 본안 소송에서도 핵심적으로 다뤄진 쟁점이다.
 
남 판사는 “강제동원 노동자의 일본 기업에 대한 위자료 청구권은 한일청구권협정에 포함되지 않아 소송을 낼 수 있다고 판단한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이 있고, 이를 위안부 피해자들의 청구권과 달리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위안부 피해자들의 일본 정부를 상대로 한 손해배상청구나 강제집행 신청이 외교관계에 대한 빈 협약을 위반한 것도 아니라고 했다.
 
또 본안 판결이 국가면제의 적용 대상도 아니라고 판단했다. 국가면제는 국가 평등 원칙에 따라 한 주권국가의 행위가 다른 국가의 법원 재판관할권에서 면제된다는 국제법 이론이다.
 
남 판사는 이 사건이 국가면제의 예외에 해당한다고 판단해 강제집행 신청이 적법하다는 결론을 냈다. 국가에 의해 자행된 중대한 인권침해 행위에 대해 국가면제를 인정하는 것이 오히려 국제사회 공동의 이익을 위협하고, 국가면제 이론은 항구적인 가치가 아니라는 판단에서다. 법원은 “어떤 국가가 국제적 강행 규범을 위반하는 경우 그 국가는 국제공동체가 스스로 정한 경계를 벗어난 것이므로 그 국가에 주어진 특권은 몰수되어야 하고, 일본국의 행위는 국가면제의 예외에 해당한다”고 결정문에 적시했다.
 

1월→3월→4월→6월, 세 번 뒤집힌 法 위안부 배상 판단

위안부 피해 할머니 소송대리인 김강원 변호사가 8일 서울 서초구 중앙지법에서 열린 고(故) 배춘희 할머니 등 위안부 피해자 12명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의 1심 선고 공판을 마친 뒤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뉴스1]

위안부 피해 할머니 소송대리인 김강원 변호사가 8일 서울 서초구 중앙지법에서 열린 고(故) 배춘희 할머니 등 위안부 피해자 12명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의 1심 선고 공판을 마친 뒤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뉴스1]

이번 결정문에서 명시한 한일청구권협정과 손해배상청구권 소멸 여부와 국가면제 예외 인정 여부에 대한 판단은 지난 6개월간 법원에서 여러 차례 뒤집혔다. 위안부 할머니들의 1·2차 소송은 올해 서울중앙지법에서만 ① 위안부 피해자는 손해배상을 받을 수 있다는 1차 소송 판결(1월) 이후 ② 강제집행은 부적절해 소송비용은 일본에 받을 수 없다는 결정(3월), ③ 국가면제에 따라 일본 정부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는 허용 안 된다는 2차 소송 판결(4월) ④ 강제집행은 적법하니, 일본은 재산을 명시하라는 결정(6월)까지 판결의 주요 취지가 세 차례 정반대로 뒤집혔다.
 
지난 1월 위안부 피해자 손을 들어준 민사34부(재판장 김정곤)는 ▶위안부 문제는 국가면제의 예외로 판단해야 하고 ▶한일청구권협정으로 위안부 피해자들의 손해배상 청구권이 소멸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당시 재판부는 피해자 개개인에게 1억원의 승소 판결을 하며 일본 정부에 소송 비용을 부담하라고 판결했다.

 
하지만 지난 3월 후임으로 부임한 민사34부(재판장 김양호)는 1억원 승소 판결에 대해 직권으로 “일본 정부가 부담할 소송비용은 없다”는 결정을 했다. 소송비용 추심은 강제집행에 준하는 절차인데, 이 강제집행이 부적절하다는 취지였다.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당시 결정문에서 김양호 부장판사는 “UN 국가면제협약에 비춰볼 때 이 강제집행은 그 요건을 충족하지 못했고, 빈 협약을 위반할 소지가 있다”며 타국 정부 상대의 강제집행을 인정하지 않았다. 본안 판결의 취지와 상반되는 결정이 2개월 만에 나온 것이다.

 
그런데 3개월 만에 김양호 부장판사의 결정과는 또 반대되는 취지의 결정이 9일 나왔다. 이번 결정문을 쓴 남 판사 역시 “이 사건은 본안 판단과 소송비용 추심결정이 국가면제의 적용 여부에 대해 상반된 시각을 보이고 있다”고 결정문에 썼고, 본안 판단 취지대로 강제집행은 적법하다고 판결했다.

 
이와 별개로 이용수 할머니 등이 제기한 2차 위안부 손해배상청구 소송은 서울중앙지법 민사15부(재판장 민성철)가 4월 21일 각하 판결을 내렸다. 당시 재판부의 각하 근거 역시 국제법 관습에 따라 일본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는 국가면제의 대상이 된다는 취지였다. 이 사건은 할머니들의 항소로 항소심이 진행 중이다. 
 
이수정 기자 lee.sujeong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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