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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건물 해체계획서 쓴 건축사, 셀프검증 뒤 적합 판정

중앙일보 2021.06.15 00:02 종합 12면 지면보기
지난 9일 광주광역시에서 붕괴 사고가 난 건물의 해체계획이 부실했다는 정황이 속속 드러나는 가운데 계획서를 작성한 건축사와 이를 검증한 인물이 동일인인 것으로 파악됐다.
 

해체공법 등 7개 ‘적합’ 한달 뒤 붕괴
업계선 “셀프검증 막을 법률 필요”
경찰, 재개발 조폭 개입 의혹도 조사

관할 지자체인 광주 동구청은 문제의 해체계획서가 ‘셀프 검증’을 통해 지난달 10일 안전성이 적합하다는 결론이 나자 보름 뒤 이를 승인했다. 업계에선 “부실한 해체계획을 작성한 건축사가 자신의 계획서에 ‘문제가 없다’는 검토 결과까지 내놓아 붕괴사고를 초래했다”며 “셀프 검증을 막을 법률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14일 강은미 정의당 의원실이 확보한 ‘학동 4구역 철거 허가 건물 철거공사 계획’에 따르면 이번에 무너진 건물은 지난달 10일 A 건축사사무소로부터 안전성과 철거 계획이 모두 ‘적합’한 것으로 기재됐다. 이 문서에는 건축사 B씨의 직인이 찍혀있으며, 같은 날 건물 안정성 검토와 해체(철거)계획서를 검토해 적정하다는 결론이 나 있다. 검토서에는 해체공법, 사용장비, 비산먼지 대책, 안전관리, 폐기물 반출 계획 등 7가지 항목 모두 적합한 것으로 기재됐다. 해체계획서 작성자는 명시되지 않았다.
 
중앙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붕괴한 건물의 해체계획서는 A건축사사무소가 작성한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은 지난 11일 브리핑에서 “A건축사사무소가 철거업체로부터 용역을 받아 해체계획서에 관여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동구청 측은 “해체계획서 허가 이후엔 감리를 맡은 B건축사사무소가 안전성 검토를 다시 했기 때문에 문제가 없을 것으로 봤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철거 계획과 검토를 동일 인물(업체)이 할 경우 “부실 공사를 초래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건축물관리법 30조는 해체계획의 검토는 ‘건축사사무소’와 ‘기술사사무소’, 안전진단은 국토안전관리원에 의뢰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최명기 대한민국 산업현장 교수는 “붕괴 사고가 난 건물은 해체공사를 계획한 사람이 사전 안전진단을 함께 했다는 얘기인데, 이러면 객관적인 검토가 이뤄질 수 없다”고 지적했다.
 
한편 경찰은 이번 건물 붕괴 참사가 발생한 재개발사업에 조직폭력배 출신 인사가 관여했다는 의혹에 대해서도 조사 중이다. 조직폭력배 관리대상에 올라 있는 C씨는 학동을 주 무대로 활동하면서 재개발사업 등 각종 이권에 개입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C씨는 2007년 재개발·재건축 대행업을 하는 D사를 설립한 후 재개발이 이뤄진 학동3구역 등에서 조합이 시공사와 철거업체 등을 선정하는 과정의 배후에서 관여했을 것이라는 의혹을 받아왔다.
 
경찰 관계자는 “C씨가 개입했다는 의혹이 제기돼 정황을 확인하고 있다”며 “현재까지 특별한 단서가 확인된 것은 아니며, 지금은 사실관계를 확인하는 단계”라고 말했다.  
 
광주광역시=최종권·김준희·진창일 기자 choig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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