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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아파트 살이 편하지만 그래도 그리운 어릴 적 옛집

중앙일보 2021.06.14 11:00

[더,오래] 전명원의 일상의 발견(7)

 
카페는 좁은 골목 안쪽에 있었다. 오래되고 낡은 집들 사이에 눈에 잘 띄지 않게, 튀지 않게 그렇게 가만히 말이다. 점점 더 브런치카페가 크고 화려해지고, 독특해지는 요즘이지만 나는 여전히 이렇게 남루한 골목 속 주택가에 숨은 듯 자리 잡은 곳을 좋아한다.
 
아파트살이는 편하고, 신경 쓸 것이 없어 좋지만 그래도 늘 주택이 그립다. 아파트에서 태어나고 자란 요즘 아이도 어른이 되고 나이를 먹으면 주택이 그리울까, 아니면 아파트가 그리울까 생각한 적이 있다. 정원을 가꾸는 취미나 재능이 있는 것도 아니면서 주택이 그리운 이유는 어쩌면 어려서 살았던 곳이 주택이어서 아닐까 하고 말이다.
 
카페 위층으로 오르는 계단은 좁고 가팔랐다. 살림집 구조를 그대로 가진 몇 개의 작은 방이 있었다. 창밖을 보며 커피를 마셨다. 골목 안쪽 마주 보는 집들이 보였다. 잠시 바라보며 그렇게 망중한의 시간을 보내다 카페의 사진을 친구들에게 보내주었다.
 
주택가에 숨은 듯 자리 잡은 카페를 좋아한다. 아파트에 살면서도 늘 주택이 그리운 이유는 어려서 살았던 곳이어서 일 거다. 살림집 구조를 그대로 가진 카페 모습. [사진 전명원]

주택가에 숨은 듯 자리 잡은 카페를 좋아한다. 아파트에 살면서도 늘 주택이 그리운 이유는 어려서 살았던 곳이어서 일 거다. 살림집 구조를 그대로 가진 카페 모습. [사진 전명원]

 
친구들은 모두 “정겹다, 우리 옛집도 카페해도 되겠다, 진정한 레트로풍”이라는 반응이었다. 우리 나이의 친구들도 이젠 보기 힘든 좁은 골목길, 오래된 건물들이다. 예전의 일상이, 이제는 관광이 되어버린 세월이니까 말이다. 모든 것은 넓어지고, 깨끗해지고, 새것으로 바뀌었다. 좋기도 하지만 때로는 서글프고 그립기도 하다.
 
한 친구가 사진을 보내왔다. 친구가 태어나 자란 집이라고 했다. 가족들의 방도 그대로 있고, 쓰던 가구도 거의 그대로 있는 채로 임대를 주어 카페가 되었다고 했다. 심지어 어려서 쓰던 책상도 그대로라고 했다. 친구는 말했다. “언제 한번 놀러 와, 우리 집에!”
 
태어나고 자란 옛집이 그 모습 그대로 아직 있다는 것은 어떤 기분일까. 물론 친구는 이제 거기 살지는 않으며, 임대를 주었으니 카페를 운영하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가끔 힘이 빠지거나, 우울해지는 어느 시간에 가서 커피를 한잔 놓고 앉아 있을 수 있는 옛집이 그대로 있다는 것은 ‘부럽다’는 한마디로 모자란 부러움이었다.
 
한 친구가 보내온 옛집 사진. 친구가 태어나 자란 집인데 쓰던 가구들도 그대로 임대를 주어 지금은 카페가 되었다.

한 친구가 보내온 옛집 사진. 친구가 태어나 자란 집인데 쓰던 가구들도 그대로 임대를 주어 지금은 카페가 되었다.

 
나는 부모님이 모두 돌아가시며 친정이 없어졌다. 다른 이에게 여행지일 미국이, 이제 나는 하나뿐인 피붙이인 언니가 산다는 이유로 친정처럼 느껴진다. 언니가 비행기를 타고 한국에 다니러 온다고 하면, 음식도 제대로 할 줄 모르는 나는 친정엄마라도 된 듯 언니가 우리 집에 들어선 순간부터 쌍화탕을 챙겨 먹인다고 수선을 떨기도 한다. 엄마는 나를 시집보내고는 늘 말씀하셨다. “여자는 시집가면 친정이 그늘이야.” 막상 그렇게 이야기하는 엄마는 친정이 없었다. 그래서 더욱 여자에게 친정이 그늘이라고 신경을 쓰셨는지도 모를 일이다.
 
친정이 없어진 나는 요즘도, 길 건너 아파트에 사시던 부모님 댁 근처를 지날 때면 가끔 그 앞에 가서 앉아 있곤 한다. 13층을 세어 창문을 멀리 바라보기도 한다. 병이 깊어져 마르고 작아진 엄마가 하루 종일 누워있던 방의 창문을 본다. 치매인 아빠의 이불을 매일 빨아 널더니 어느 날 울 듯한 얼굴로 속상해하셨다. “앞동에서 맨날 저 집은 이불 널려있다고 흉보면 어떻게 해.” 나는 지금도 가끔 그날을 생각한다. 앞동이 저렇게 멀어서 보이지 않아요, 그렇게 좋은 말로 달랠걸. 나는 하던 대로 툭, 내뱉었다. “누가 엄마네 베란다만 보고 있다고!”
 
그 친구처럼, 변하지 않고 옛 모습 그대로인 옛집이 있어 찾아갈 수 있다면, 어쩌면 친정을 찾아가는 것 같은 기분이 들지도 모르겠다. 덥고 바람 한 점 불지 않는 여름 어느 한낮 잠시 땀 좀 식히고 돌아올 수 있는 그늘처럼 말이다.
 
그런 그늘 같은 옛집이 아직도 있다면 어느 한가한 오후에 나도 친구에게 다정하게 한마디 건네볼 수도 있을 것이다. “언제 한번 놀러 와, 우리 집에!”
 
작가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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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명원 전명원 작가 필진

[전명원의 일상의 발견]이것은 눈이 마음에게 전해주는 이야기입니다. 낯선 여행지, 오래되거나 새로운 것들, 인상 깊었던 작품...살아가면서 보는 많은 것들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찾아가는 길이나 전문적인 정보를 제공해드리지는 않아요. 그런 정보는 이미 인터넷에 차고 넘치거든요. 친절한 안내는 없지만, 낯설거나 익숙한 혹은 특별한 것들을 볼 때 우리에게 찾아오는 소소하고 다양한 감정들을 나누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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