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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환자 보호자한테 멱살 잡혀 공중에 들여올려진 교수님

중앙일보 2021.06.14 09:00

[더,오래] 조용수의 코드클리어(73)

 
특별한 의사가 되고 싶었다. 친절한 의사가 되고 싶었다. 의술이 아닌 인술을 펼치는. 학창 시절엔 그랬다. 낭만이 가득했다. 의학 드라마처럼 환자의 마음마저 치유하는 의사가 되리라 다짐했다. 의대생은 모두 그랬다. 나도 그랬다. 그 평범한 꿈이 이렇게 어려울 거라고 그때는 미처 몰랐다.

 
나는 작은 보건지소에서 처음 의사 생활을 시작했다. 꿈꾸었던 미래를 이제는 실현할 수 있게 되었다. 걱정 반 설렘 반 진료실 문을 열었다. 환자들 난이도도 그리 높지 않았다. 주로 고혈압, 관절염, 감기 환자였다. 여유가 있는 만큼 환자마다 정성을 쏟는 게 가능했다. 혈압도 직접 재고, 작은 질문에도 귀를 기울였다. 귀에 못이 박히게 들었던 충고를 떠올리며. “병이 아닌 사람을 치료하라.”

 
처음 의사 생활을 시작했던 작은 보건지소와 달리 지금 근무하고 있는 응급실은 환자의 중증도가 어마어마하다. 그런데도 1시간에 스무 명 넘는 환자가 쏟아져 내리기도 하고 심정지 환자에게 3분이 겨우 주어진다. [사진 unsplash]

처음 의사 생활을 시작했던 작은 보건지소와 달리 지금 근무하고 있는 응급실은 환자의 중증도가 어마어마하다. 그런데도 1시간에 스무 명 넘는 환자가 쏟아져 내리기도 하고 심정지 환자에게 3분이 겨우 주어진다. [사진 unsplash]

 
사소한 얘기까지 빼곡하게 차트에 썼다. 집에서 키우는 강아지가 아프다는 내용까지 기록했다. 덕분에 재진 시에 이전 차트를 보며 기억을 되살릴 수 있었다. 환자들은 자신을 기억해주는 것만으로도 고마워했다. 별다른 약을 주지 않아도 만족을 표했다. 팔다리에 상처 난 환자가 있으면 흉터 한 조각 남지 않게 한 땀 한 땀 정성 들여 꿰맸다. 하루하루를 값지게 보냈다. 당연히 나는 점점 더 큰 고양감에 취해갔다. 그 일이 있기 전까지는.

 
어느 날. 환자 하나가 진료실 문을 걷어차고 들어왔다. 분노로 일그러진 환자의 표정이 눈에 들어왔다. 나는 무언가 크게 잘못되었음을 깨달았다. 진료실 안에서 열정을 쏟느라 미처 몰랐다. 매일같이 진료실 밖에서는 난동이 일고 있었음을. 긴 대기시간에 얼마나 많은 환자가 아우성을 질러댔는지를. 나는 결코 사람들에게 좋은 의사가 아니었다. 진료실에 들어온 환자는 1분이라도 더 진료를 받고자 했지만, 반대로 밖에서 기다리는 시간은 1분도 더 참아내기 싫어했다. 내 진료는 그 시간의 균형점에서 한참이나 벗어나 있었다.

 
10분에 1명씩 환자를 보면 오전에 진료 가능한 숫자는 기껏해야 스무 명 남짓. 절반 이상의 환자가 기다림에 지쳐 발걸음을 돌렸다. 외국에선 환자 하나에 30분을 쓴다던데, 나는 겨우 10분조차 문제가 되었다. 눈물을 머금고 진료 시간을 줄였다. 10분에서 5분으로, 5분에서 3분으로. 흔히 말하는 3분 진료가 시작되자 그제야 비로소 평화가 찾아왔다. 당연히 공감하고 소통할 시간이 사라졌다. 대신 짧은 시간에 집중해서 정답을 찾을 수 있는 능력이 생겼다.

 
십수 년이 지난 지금 나는 응급실에서 근무한다. 이곳은 참 오묘한 곳이다. 그때와는 달리 환자의 중증도가 어마어마하다. 당장에라도 숨이 넘어갈 만한 환자가 부지기수로 많다. 그런데도 1시간에 스무 명 넘는 환자가 쏟아져 내리기도 한다.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감기도 아니고 무려 심정지 환자인데, 3분이 겨우 주어지는 셈이다. 물론 이런 상황에 단련된 우리는 3분이면 응급환자도 적당한 선에선 처리해 낸다. 대신 환자나 보호자와 차분히 대화하는 건 꿈도 꿀 수 없다.

 
그래도 환자 상태가 나쁠 때면 억지로라도 짬을 내서 설명한다. 아마도 이럴 때는 짧은 시간에 뭔가 커다란 희망과 용기를 주는 게 맞는 모양이다. “나를 믿어주면 당신을 반드시 고쳐 보이겠노라.” 끝까지 포기하지 말자며 새끼손가락이라도 걸어 보이는 게 정답인지도 모르겠다. 하긴 그것이 바로 내가 학창 시절에 꿈꾸었던 진정한 명의의 모습이다. 물론 나는 단 한 순간도 내가 바라던 의사인 적은 없지만. 슬프게도.

 
환자 보호자에게 멱살이 잡혀 허공에 끌어올려진 교수님의 모습은 지금도 여전히 내 뇌리에 남아있다. 대체 우리는 무엇을 잘못 했길래 저런 수모를 겪는 것일까. [사진 pixabay]

환자 보호자에게 멱살이 잡혀 허공에 끌어올려진 교수님의 모습은 지금도 여전히 내 뇌리에 남아있다. 대체 우리는 무엇을 잘못 했길래 저런 수모를 겪는 것일까. [사진 pixabay]

 
내 머릿속 깊이에 똬리 틀고 있는 하나의 기억. 전공의 시절, 심정지 환자가 있었는데 상태가 매우 안 좋았다. 사실 가망이 없었다. 보호자는 그래도 최선을 다해달라고 했다. 당연히 그렇게 하겠다고 대답했다. 며칠 후 환자는 유명을 달리했다. 하지만 보호자는 그 사실을 납득하지 못했다. 처음부터 어렵다고 하지 않았냐고 항변했지만, 가망이 없으면 치료를 왜 한 거냐고 되려 따졌다. 최선을 다했으면 살려야 하는 게 아니냐며, 왜 기대하게 했냐며 원망했다.

 
당시에 보호자에게 멱살이 잡혀 허공에 끌어올려진 교수님의 모습은 지금도 여전히 내 뇌리에 남아있다. 땅에서 발이 뜬 채로 허수아비처럼 좌우로 흔들리는 모습이다. 그때 전공의였던 내게 그 광경은 적잖은 충격이었다. 대체 우리는 무엇을 잘못 했길래 저런 수모를 겪는 것일까?

 
비슷한 일은 잊을 만하면 한 번씩 일어났다. 그런 사건을 겪을 때마다 내 설명은 점점 더 간결해졌다. 일말의 기대조차 남기지 않으려고 애를 썼다. 어지간해선 설명에 감정을 싣지 않았다. 살릴 수 있을 거 같다는 견적이라도 함부로 입 밖에 꺼내지 않았다. 죽을 거라고 설명한 사람이 살아나면 어떡하냐고? 상관없다. 죽는다는 사람이 왜 살아났느냐고 따지는 사람은 없으니까. 기적이 일어났다며 고마워할 뿐.

 
그렇게 나는 어릴 적 꿈과는 전혀 다른, 쌀쌀맞기 그지없는 의사가 되었다. 세상에 깎여가며 사람에 깎여가며. 나 또한 어느 노인이 만든 방망이처럼 이 사회가 오랜 시간 공들여 만든 의사인데. 그런 내 모습에 많은 사람이 실망을 표현하니 마음이 몹시 아플 따름이다. 나라고 꿈을 모두 잊어서 이렇게 사는 것은 아닌데….
 
전남대학교병원 응급의학과 조교수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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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수 조용수 전남대학교병원 응급의학과 조교수 필진

[조용수의 코드 클리어] 의사는 누구보다 많은 죽음을 지켜본다. 삶과 죽음이 소용돌이치는 응급실과 중환자실에서는 특히 그렇다. 10년 가까이, 셀 수 없이 많은 환자의 생과 사의 현장을 함께 했다. 각양각색 인생의 마지막 순간을 지켜보며, 이제는 죽음이 삶이 완성이란 말을 어렴풋이나마 알 것 같다. 환자를 통해 세상을 보고, 글을 통해 생의 의미를 함께 고민해 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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