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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 최초 '교황청 장관' 유흥식 대주교는 복수국적자?

중앙일보 2021.06.13 20:00
천주교 대전교구장 유흥식(70·세례명 라자로) 대주교가 지난 12일 오후 세종시 반곡동 천주교대전교구청에서 교황청 성직자성 장관 임명과 관련한 소감을 밝히고 있다. 연합뉴스

천주교 대전교구장 유흥식(70·세례명 라자로) 대주교가 지난 12일 오후 세종시 반곡동 천주교대전교구청에서 교황청 성직자성 장관 임명과 관련한 소감을 밝히고 있다. 연합뉴스

교황청이 있는 바티칸 시국은 국제법상 엄연한 독립국의 지위를 갖고 있다. 통상 외국인이 다른 국가의 장관을 한다는 것은 생소한 일이다. 그렇다면 지난 11일 한국인 최초로 교황청 성직자성 장관에 임명된 유흥식(70) 대주교(천주교 대전교구장)의 국적은 바티칸시국으로 바뀌는 것일까.
 
결론부터 얘기하면, 유 대주교는 일단 한국 국적만 가진다. 유 대주교는 지난 12일 세종시 반곡동 대전교구청에서 연 기자회견에서 “장관직을 수행하는 동안에도 대전교구 소속 주교이고, 바티칸에서 더는 수행할 직책이 없게 될 경우 다시 대전교구로 돌아와 은퇴하겠다”는 취지로 말했다. 천주교 대전교구 관계자는 “교회법상 대전교구에 적(籍)을 둔 채 잠시 바티칸으로 파견을 갔다 오는 형태라 복수국적 취득과 같은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2006년 2월 22일 교황청으로부터 추기경으로 서임된 정진석(왼쪽) 추기경이 서울 명동성당에서 진행된 기자회견에서 김수환 추기경과 손을 맞잡고 기쁨을 나누고 있다. 연합뉴스

2006년 2월 22일 교황청으로부터 추기경으로 서임된 정진석(왼쪽) 추기경이 서울 명동성당에서 진행된 기자회견에서 김수환 추기경과 손을 맞잡고 기쁨을 나누고 있다. 연합뉴스

그런데 유 대주교가 향후 추기경에 서임될 땐 얘기가 달라진다. 교황청 심의회(9개 행정기관) 장관직은 대개 추기경이 맡아오던 관례에 비춰 교계에선 유 대주교가 앞으로 추기경에 서임될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이 경우, 유 대주교는 복수국적자가 될 공산이 크다. 전 세계 모든 천주교 추기경에겐 거주지와 무관하게 바티칸 시국 시민권이 자동으로 주어지기 때문이다. 추기경들은 바티칸 시국 바깥에서도 시민권을 행사할 수 있다. 만 80세 미만이라면 교황 선출권도 가진다. 교황은 바티칸 시국의 군주이기도 하다.
 
국적법상 한국은 원칙적으로 복수국적을 인정하지 않는다. 출생지에 따라 복수국적자가 된 사람은 만 22세가 되기 전까지, 만 20세 이후 복수국적자가 된 사람은 2년 이내에 하나의 국적을 선택해야 한다. 병역의무자의 경우 만 18세가 되는 해의 3월까지 하나의 국적을 선택하지 않으면 병역의무를 이행해야 하고, 병역의무를 마친 경우 그때부터 2년 이내에 국적을 선택해야 한다. 만약 복수국적자로 남고 싶다면 법무부 장관에게 ‘한국에서 외국 국적을 행사하지 않겠다’고 서약(외국 국적 불행사 서약)해야 한다.
 
염수정 추기경이 13일 오전 서울 중구 명동성당 내 옛 계성여고 운동장에서 열린 '라파엘나눔 홈리스 클리닉 개소 및 축복식'에 참석해 인사말을 하고 있다. 뉴스1

염수정 추기경이 13일 오전 서울 중구 명동성당 내 옛 계성여고 운동장에서 열린 '라파엘나눔 홈리스 클리닉 개소 및 축복식'에 참석해 인사말을 하고 있다. 뉴스1

하지만 한국 정부는 추기경에 대해서는 예외적으로 별도의 제한 없이 복수국적을 인정해 왔다. 선종한 김수환(스테파노)·정진석(니콜라오) 추기경이 그랬듯, 현 서울대교구장인 염수정(78·안드레아) 추기경도 복수국적자다. 한국천주교주교회의 관계자는 “추기경이 되면 로마의 여러 성당 중 한 곳을 명의본당으로 삼아 명예주임신부로 지정되면서 바티칸 시민의 자격도 받는다”고 설명했다.
 
국적법 15조는 한국 국민이 자진해서 외국 국적을 취득하면 한국 국적을 상실한다고 규정하지만, 법무부 관계자는 “추기경의 경우 자진해서 국적을 취득하는 게 아니기 때문에 이 규정을 적용할 수 없다”며 “국적법에는 추기경 서임과 같이 자동으로 외국 국적이 부여되는 것에 대해선 마땅히 규정된 게 없다”고 말했다.
 
2014년 9월 1일 아르헨티나 출신의 프란치스코 교황이 바티칸을 방문한 아르헨티나 축구 영웅 마라도나(지난해 11월 별세)로부터 유니폼을 선물받고 있다. AFP=연합뉴스

2014년 9월 1일 아르헨티나 출신의 프란치스코 교황이 바티칸을 방문한 아르헨티나 축구 영웅 마라도나(지난해 11월 별세)로부터 유니폼을 선물받고 있다. AFP=연합뉴스

아르헨티나 출신의 프란치스코 교황은 어떨까. 바티칸 시국의 군주인 교황이 되면 이전 국적과 시민권을 모두 버려야 한다. 그러나 아르헨티나 국적법은 자국 국적을 가진 이들의 국적 포기·상실을 인정하지 않는다. 이에 따라 프란치스코 교황도 다수의 추기경과 같이 바티칸 시국과 본국의 국적을 모두 보유하고 있는 복수국적자다.
 
한편, 한국도 현행법상 대통령이 내각 장관에 외국 국적자를 임명하는 게 가능하다. 장·차관과 같은 정무직 공무원을 포함한 특수경력직공무원에 관해 규정하고 있는 국가공무원법에 따르면 외국인 신분은 결격사유가 아니고(33조), 국가안보나 보안·기밀에 관계되는 분야를 제외하고 외국인이나 복수국적자를 공무원에 임용할 수 있다(26조의3).
 
하준호 기자 ha.junho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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