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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말 신경 안 쓰는 ‘돌직구’, 한 분야 파고드는 ‘덕후 기질’

중앙선데이 2021.06.12 00:28 740호 4면 지면보기

[36세 제1야당 대표 시대] 동갑 기자가 본 이준석

2013년 3월 14일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열린 새누리당 긴급 비상대책위원 모임에서 이준석 대표가 김종인 당시 비대위원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중앙포토]

2013년 3월 14일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열린 새누리당 긴급 비상대책위원 모임에서 이준석 대표가 김종인 당시 비대위원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중앙포토]

이준석 국민의힘 신임 대표를 처음 만난 건 그가 정계에 발을 들인 지 며칠 안 된 2012년 초였다. 그는 유력 대선주자였던 한나라당(현 국민의힘) 박근혜 비대위에 ‘하버드 출신 26살 청년’이란 타이틀로 합류했고, 1985년생 동갑내기이자 정치부 막내였던 기자가 자연스레 그를 마크하게 됐다.
 

박근혜 비판…“이런 말도 못 하냐”
안철수·윤석열 앞서도 눈치 안 봐

두 달간 하루 12시간씩 택시 운전
젠더 논쟁서 20대 남성 팬덤 얻어

반지하 빌라에서 유년 시절 보내
하버드 다닐 땐 컴퓨터 수리 알바

당시 그는 “얼떨떨하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비대위원 영입 제의를 받고 당 관계자에게 “그런데 비대위가 뭔가요”라고 되묻고는 인터넷 검색창에 ‘비대위’를 검색했다고 했다. 방송 출연 제의가 오자 당 관계자를 찾아가 “TV에 나가도 됩니까”라고 물었다가 “알아서 해”라고 핀잔을 듣는 일도 있었다.
 
냉정하게 말해 당시 여론의 관심은 ‘이준석이 뭘 할지’보다는 그를 발탁한 ‘박근혜의 파격’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박근혜 키즈’라는 별명도 그래서 붙었다. 당시 전여옥 의원은 “이준석은 들러리”라고 평가절하했고 친박계 중진 의원도 “대선에는 도움이 되겠지만 여의도에서 오래 갈 스타일은 아니다”고 평했다.
 
2011년 12월 27일 한나라당 당사에서 열린 비대위 회의에 참석한 이준석 대표. [중앙포토]

2011년 12월 27일 한나라당 당사에서 열린 비대위 회의에 참석한 이준석 대표. [중앙포토]

그로부터 10년이 조금 안 된 11일 그는 국민의힘 대표가 됐다. ‘0선 중진’이란 썩 유쾌하지만은 않은 꼬리표를 달고 정치판에 머물던 그가 대선을 목전에 두고 제1야당을 이끌게 된 건 보수 진영의 변화를 바라는 유권자의 열망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동갑내기 시선으로 본 ‘이준석 현상’에는 다른 정치인에게서는 찾기 힘든 그만의 두 가지 스타일도 한몫했다고 본다.
 
하나는 뒷말을 신경 안 쓰는 태도다. 돌아서면 ‘찌라시’가 난무하는 정치판에서 이런 태도를 유지하기란 쉽지 않다. 그는 2011년 비대위원으로 영입된 지 일주일 만에 한 방송에서 “박근혜 위원장이 정수장학회 의혹을 정리하지 않으면 그에게 투표하지 않겠다”고 돌출 발언을 했다. 당에선 즉각 “쟤 뭐냐”는 반응이 나왔다. 당시 그에게 발언 의도를 묻자 “이런 말도 못할 거면 알지도 못하는 당에 온 의미가 없지 않느냐”고 답했다. 이런 태도는 이준석을 대변하는 ‘돌직구 정치’ 스타일로 굳어졌다.
 
당대표 경선 며칠 전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와의 악연에 대해 물었을 때도 그는 1초도 안 돼 “악연이 맞다. 2018년 공천 때 태클을 걸었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특정 정치인과의 사이가 나쁘다는 걸 공언하고, 그 이유로 ‘공천 태클’을 들 수 있는 정치인은 흔치 않다.
 
최근 윤석열 전 검찰총장을 대하는 이 대표의 묘하게 뻣뻣한 기류도 마찬가지다. 유승민 전 의원과의 친분 때문이란 해석도 있지만 중진 의원도 한 수 접는 야권 1위 대선주자라 할지라도 눈치를 보지 않는 이 대표의 스타일도 한몫했을 것이다. 과거 그가 ‘지니어스’ 등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하거나 남성 잡지 ‘맥심’의 표지 모델로 나서는 등 ‘외도’를 한 것도 이런 성정과 무관치 않다.
 
2012년 한나라당 신년 회에서 박근혜 비대위원장의 발언을 듣고 있는 이준석 대표. [중앙포토]

2012년 한나라당 신년 회에서 박근혜 비대위원장의 발언을 듣고 있는 이준석 대표. [중앙포토]

이 대표의 다른 특징은 ‘덕후 기질’이다. 한 분야에 꽂히면 주야장천 파고드는 스타일이다. 그는 지금도 사석에서 철도와 밀리터리(군사) 분야에 각별한 관심을 표한다. 택시기사 면허증도 있다. 정치인이 택시를 모는 건 종종 있는 일이지만 그는 두 달간 일주일에 6일 매일 12시간씩 택시를 몰았다. 이때도 그를 보면서 ‘꽂혔구나’ 싶었다.
 
이런 이 대표의 ‘덕후 본능’은 정치판에서도 그대로 발휘됐다. 대표적인 사례가 지난해 ‘사전투표 부정 의혹’ 논쟁이었다. 매일 수십 건씩 SNS에 글을 올리며 강성 보수층과 설전을 벌였다. 정치권 일각에선 “서울 노원병 선거 패배의 허탈감을 이상한 곳에 푼다”는 조소도 있었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1년 가까이 선거 부정 의혹 반박에 빠져 살았다.
 
최근엔 젠더 이슈를 집요하게 물고 늘어졌다. 여성 할당제 폐지나 안티페미니즘을 내세운 그의 논쟁적 발언을 둘러싸고 호평과 악평이 엇갈렸지만 적어도 20대 남성의 팬덤을 얻는 데는 성공했다는 평가다. 국민의힘 초선 의원은 “옳고 그름을 떠나 부정선거와 젠더 논쟁을 통해 본인의 이미지를 각인시키며 당대표 선거에서 바람을 일으킨 건 사실 아니냐”고 말했다.
 
이 대표는 서울 노원구 상계동의 반지하 빌라에서 유년 시절을 보냈다. 그때만 해도 그의 진로는 이공계였다. 2003년 2월 서울과학고를 조기 졸업한 뒤 그해 9월 하버드대에 입학해 컴퓨터과학과 경제학을 전공했다. 이 대표는 “집안 사정이 유복했던 한국인 친구들은 방학마다 여행을 떠났는데 나는 생활비를 벌기 위해 교내 컴퓨터 수리소에서 시간당 8달러를 받고 아르바이트를 했다”고 회고했다. 대학 졸업 후엔 취업 대신 교육 봉사단체에서 저소득층 학생을 무료로 가르쳤다. 이런 활동이 박근혜 비대위원장의 눈에 들면서 비대위원으로 깜짝 발탁됐다.
 
18대 대선 직후인 2013년 1월 서울 양천구의 한 허름한 부대찌개 집에서 이 대표를 인터뷰한 적이 있다. 그는 그 자리에서 “내가 박근혜라는 꼬리표를 뗄 수 있을지 매일 걱정한다. 정치를 해서 얻을 게 무엇인지, 사회에 기여할 게 무엇인지 불명확한 것도 고민”이라며 두 가지 근심을 꺼냈다. 첫 번째 고민은 해결됐지만 두 번째는 현재진행형이다. ‘이준석 대표’에 대한 평가는 9개월 앞으로 다가온 대선에서 판가름날 공산이 크다.
 
손국희 기자 9ke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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