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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문 고쳐준 게 도시재생? 낙후된 동네 좋아진 게 없다

중앙선데이 2021.06.12 00:20 740호 22면 지면보기

불만 거센 도시재생

지난 3일 서울 은평구 불광2동 향림마을 담벼락 벽화 앞에 쓰레기가 쌓여있다. 이 마을은 2018년부터 도시재생사업의 하나로 골목길 정비와 벽화 작업 등이 진행됐다. 정준희 인턴기자

지난 3일 서울 은평구 불광2동 향림마을 담벼락 벽화 앞에 쓰레기가 쌓여있다. 이 마을은 2018년부터 도시재생사업의 하나로 골목길 정비와 벽화 작업 등이 진행됐다. 정준희 인턴기자

“동네가 좋아지긴 뭐가 좋아져요. 주차장 하나 아직 만들지도 못하고 있는데.” 지난 2일 서울시 제기동 감초마을에서 만난 지역 주민은 단호하게 말했다. 골목 어귀에서 42년째 방앗간을 운영하는 그는 “도시재생한다고 동네를 들쑤시고 다니더니 몇 년이 지났는데도 변한 게 어디 있나”며 “기껏해야 대문이랑 부서진 외벽 정도 고쳐주더라”고 털어놨다. 제기동 약령시장과 가까워 이름 붙여진 감초마을은 왕복 6차선을 사이에 두고 고려대 캠퍼스가 위치한 대학가다.
 

5년 간 50조 투입, 400여곳 진행
도로 등 기반 시설 큰 변화 없어
지붕 등 주택 개량도 ‘그림의 떡’

거북이 행정 탓 예산 집행률 20%
“재개발이 낫다” 이웃 간 갈등 심화
지역 활성화, 주민 보호 함께 해야

그러나 정작 동네에서 젊은 사람 모습은 드물다. 정릉천을 따라 내부순환도로가 지나가는 탓에 지역 개발이 진척되지 못했다. 동네에 들어서면 기와집과 ‘빨간 벽돌’ 주택이 미로처럼 얼기설기 붙어 있어 지도 앱을 봐도 번지수 찾기가 여간 쉽지 않다. 이날 마을에서 마주한 택배기사는 골목마다 차량 진입이 막혀 애당초 마을 초입에 차를 세워두고 택배물을 실은 손수레를 끌며 지대가 높은 마을 곳곳을 누비고 있었다.
 
국토교통부는 낙후된 동네를 살리겠다는 취지로 감초마을을 2018년 도시재생 뉴딜 사업 대상지로 선정했다. 3년간 투입 예산이 125억원이다. 하지만 사업소식이 알려지면서 지역 주민 간 갈등도 생겨났다. 2013년 재개발 정비구역에서 해제된 후 5년 만에 도시재생 사업으로 마을 개선이라는 훈풍이 불었지만 대상지가 기존 재개발 구역의 반 토막(4만9800㎡)만 선정됐기 때문이다.
 
배달 오토바이조차 접근 힘들어
 
감초마을에서 18년째 미용실을 운영하고 있다는 50대 주민은 “마주 보고 있는 앞 집은 지난해 누수 공사 650만원 지원을 받았는데 우리 집은 구역 바깥이라며 수리가 안 된다고 했다”라며 “굳이 따지자면 이 동네에서 더 오래 산 사람은 나인데 동네를 지켜온 토박이를 이렇게 외면할 거면 차라리 재개발이 낫다”고 말했다. 시기상 사업 마무리 단계인 지금 주민 대부분은 뚜렷한 마을 변화를 느끼지 못하면서 도시재생에 대해 회의적인 분위기다. 사업 예산은 마을 경로당 개선, 지역주민 분과 활동 모임, 화단 정비 등 문화생활 개선 중심으로 쓰였다. 공사비 36억원으로 단일 사업 항목 중 가장 규모가 큰 주민공동이용시설(앵커시설)은 지난달 들어서야 공사 준비에 들어섰다.
 
정부가 5년째 추진하고 있는 도시재생 사업을 두고 현장 실무자와 지역 주민들 중심으로 불만의 목소리가 거세다. 직접적인 사업 효과를 체감하기 힘들고 복잡한 행정 절차로 예산 집행이 늦춰지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4월에는 송파구 풍납동, 용산구 서계동, 은평구 불광동 등 지역 주민 중심으로 도시재생지역 폐지 및 재개발 연대까지 생기면서 도시재생 폐기를 촉구하는 움직임도 커지고 있다.
 
도시재생 뉴딜은 문재인 정부가 주거문제 해소를 위해 추진하고 있는 핵심 사업 중 하나다. 도시의 노후 환경 개선을 통해 지역 활성화를 이끌어 내겠다는 취지로 ‘전면 철거’라는 기존 도시 개발 방식과 배치된다. 정권 출범 직후인 2017년 68곳을 시작으로 2018년 99곳, 2019년 116곳, 2020년 117곳 등 현재 전국 400여 곳에서 도시재생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재정, 기금, 공기업 투자 등 5년간 쓰이는 예산만 50조원에 이른다.
 
하지만 도시재생사업이 주거환경 개선이라는 본질에 다가서지 못하면서 사업 한계가 드러나고 있다. 지금까지 중앙부처와 지자체의 대규모 재건축·재개발 사업은 원주민을 대거 이주시키고 부지 정비를 통해 아파트 등 대규모로 주택을 공급하는 방식이었다. 막대한 비용과 시간이 투입될 뿐만 아니라 일부 주민들이 강제 퇴거당하는 일이 반복되면서 주요 사회적 갈등으로 지적됐다.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도시재생은 불도저식 개발을 지양하면서 등장한 도시정책이다. 기존 마을 형태를 보존하며 지역의 변화를 이끄는 게 핵심이다. 하지만 ‘원형 보존’에 방점이 찍혀있다 보니 좁은 골목과 구불구불한 계단 길은 그대로 남겨 둔 채 주택 수리와 환경 미화 개선 수준에서 사업이 그치고 있다. 또 사업 과정에 주민 참여를 독려한다는 이유로 손글씨 쓰기 등 주민 프로그램이 대다수 마련돼있다.
 
2018년 감촌마을과 함께 국토부의 도시재생 사업지로 선정된 서울시 불광동 향림마을 역시 사정은 비슷하다. 북한산 자락에 자리를 잡아 마을은 지대가 높고 낡고 오래된 계단이 즐비해 고령층 거동이 쉽지 않다. 하지만 파손된 계단을 수리하고 타일 벽화로 동네 분위기를 고조시킬 뿐 배달 오토바이조차 접근하기 힘든 구조는 여전하다.
 
나권희 엠플래닝건축사사무소 대표는 “앵커시설 건립은 주민 수요도 분명 있겠지만 가장 눈에 띄는 성과다 보니 도시재생을 진행하는 지역마다 빠지지 않고 진행하는 사업 항목”라며 “또 시설을 만들면 주민들을 시설로 모이게 해야 하니 결국 재생사업이 각종 소모임, 커뮤니티 조성에 치중할 수밖에 없다”라고 했다.
 
그나마 이뤄지고 있는 주택 개량 역시 주민들의 낙후된 주거 수준을 개선하기엔 역부족이다. 가구당 평균 1000만원에서 최대 2000만원 안팎으로 보조금이 한정돼 지붕 개량 등 외관에 한해서만 개선 공사가 이뤄지고 있다. 이마저도 전체 공사비의 10~50%는 본인이 부담해야 하므로 경제적 여력이 없는 노년층 주민에게는 주택 보수 공사가 ‘그림의 떡’으로 여겨진다. 지역 도시재생 사업 관계자는 “정책 특성상 최대한 많은 지역주민이 사업 혜택을 받아야 하는 탓에 가구당 지원금 한도가 낮게 설정됐다”라며 “금액 자체가 낮다 보니 보수 공사가 다소 저렴한 대문이나 배관 개선 정도에 치중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성패 판단하기 이르다” 지적도
 
더 큰 문제는 이마저도 사업 속도가 느려 배정된 예산조차 제대로 집행하지 못하는 현실이다. 국회예산정책처에 따르면 국토교통부가 교부한 올해 도시재생 준공예정 사업의 예산 실집행률은 20%를 밑도는 경우가 다수였다. 사업 항목들을 살펴보면 사업 확정 고시조차 되지 않은 지역부터 주차장 설치나 부지 매입, 지하차도 설치 등 기반 시설 관련 공사들이었다. 지역 주민들 사이에서 “기다리는 게 문제가 아니라 기다리면 휠체어라도 끌고 다닐 수 있게끔 동네가 변하냐”며 냉소적인 반응이 나오는 이유다.
 
김성훈 수유 도시재생지원센터장은 “사업선정이 되면 행정에서만 2~3년을 소비하게 되니 현장은 현장대로 답답함을 느낀다”라며 “막힌 사업들이 동네를 대대적으로 고치는 수준도 아니다 보니 주민들도 여러모로 지치거나 실망하는 것도 사실”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선 도시재생을 성과를 판단하기엔 이르다는 지적도 있다. 이명훈 한국도시재생학회장(한양대 도시공학과)은 “도시재생은 단계별 변화를 이끌겠다는 정책이기 때문에 최소 10년은 시간이 필요하다”라며 “다만 누구나 살고 싶은 매력적인 동네로 만들고 일자리도 생겨나는 등 실질적인 변화를 끌어낼 수 있도록 사업을 구상해야 하는 건 사실”이라고 말했다. 김성훈 센터장은 “우리 지역의 경우 사업이 이제 진행하고 있기에 성과를 논하기엔 이르다”라며 “정부 차원에서 향후 4~5년을 더 이끌고 간다면 지금의 사업 행정 차원에서 마련한 도시 사업 수준보다는 한 단계 발전된 플랜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일부 전문가는 예상치 못한 도시개발 부작용에 대한 선제적 대응도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쇠퇴한 지역이 다시 활성화될 경우 이태원·망원동이 겪은 이른바 젠트리피케이션을 고스란히 답습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이영범 경기대 건축학과 교수는 “도시재생이든 재개발이든 어쨌든 동네가 되살아났다는 것은 결국 사람이 유입된다는 의미”라며 “당장의 성과를 위해 주거지역을 상업지역으로 용도 변경하는 방법을 쓰게 되면 결국 망원동·상수동이 겪은 몸살을 다른 지역도 똑같이 겪을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나권희 대표는 “지자체는 무조건 동네 살리기에만 급급할 뿐 살아난 동네를 관리하는 데에는 소홀한 게 현실”이라며 “지역 활성화 대책과 원주민 보호라는 두 방향으로 도시발전을 이끌어야만 진정 좋은 도시정책”이라고 말했다.
 
김나윤 기자 kim.nayo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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