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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준 렌딧 대표. [사진 렌딧]

김성준 렌딧 대표. [사진 렌딧]

스타트업에 규제는 두려운 존재다. 아무리 잘 나가는 서비스라도 기존 산업과 충돌하고 반대 여론이 높아지면 한 방에 훅 갈 수 있다. 없던 규제가 생길수도, 있던 규제가 더 굳건해질 수도 있기 때문. 지난해 타다가 택시업계 반발에 밀려 서비스를 접는 일까지 생기면서 스타트업계 두려움은 더 커졌다.

제도권 1호 P2P '렌딧' 김성준 대표 인터뷰

 
하지만 P2P(온라인투자연계금융업·개인 간 거래) 스타트업 렌딧은 2015년 창업 때부터 조금 다른 길을 택했다. “온라인 투자엔 규제가 필요하다”며 대놓고 법제화를 주장했다. 그후 수년간 업계·정부·국회를 설득한 끝에 2019년 말 P2P법이 국회를 통과했다. P2P금융업을 규율하는 세계 최초의 제정법. 지난 10일에는 새 법에 따라 금융위원회 등록을 완료, 국내 1호 P2P 등록업체가 됐다. 창업 후 6년만, 법 통과 후 1년 7개월 만에 제도권에 안착했다.
 
렌딧은 왜 이렇게까지 법제화에 사활을 걸었을까. 또 어떻게 설득할 수 있었을까. 지난 8일 서울 강남구 소재 한 공유오피스에서 만난 김성준(36) 렌딧 대표는 “모든 규제는 그 산업의 맥락 속에 다 존재의 이유가 있다”며 “무조건 피하고 볼 게 아니라 산업에 맞는 규제를 잘 찾아서 적용하도록 이해관계자를 설득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KAIST를 졸업한 김 대표는 2015년 렌딧을 창업했다.
 
왜 법제화가 필요했나.
P2P 플랫폼은 기술을 이용해 돈이 필요한 쪽(대출자)과 돈을 빌려줄 쪽(투자자)을 이어주는 곳이다. 우리는 금융 빅데이터를 머신러닝 기술로 분석하기 때문에 통계방식을 쓰는 기존 금융회사보다 더 정교하게 신용평가를 할 수 있다. 이를 통해 은행 대출 금리(평균 5% 안팎)와 제2금융권 대출 금리(20% 안팎) 사이 중금리(10% 안팎) 대출을 할 수 있다. 하지만 아무리 기술이 들어간다 해도, 우리는 본질적으로 고객이 맡긴 돈을 다루는 금융회사다. 소비자 보호 같은 특정 분야에선 강한 규제가 필요하다.
 
규제 없는 게 사업하기 더 수월하지 않나.
시장에 기회가 있다고 판단되면 온갖 종류의 참여자가 들어온다. 온라인투자업에도 건전하지 못한 참여자가 많아지면서 산업 자체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퍼졌었다. 물권이 없는데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을 한다며 자금을 모집하는 사기 대출을 하거나, 리스크가 큰 사업의 수익률을 과대 포장해 소비자에게 불완전 판매를 하는 식이었다. 몇몇 업체가 사고를 내니 'P2P는 위험하다'는 낙인이 찍혔다.
 
P2P 금융업자 등록 조건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P2P 금융업자 등록 조건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법 제정 후 어떻게 달라졌나.
제도권에 들어간다는 것은 정부가 정한 높은 기준을 충족한 업체만 사업을 할 수 있단 의미다. 회사가 망해도 회사자산과 대출채권의 투자자 자산을 명확히 분리하도록 하는 등 소비자 보호의 수준이 달라졌다. 회사가 잘못하면 처벌받는 규정도 생겼다. 중요한 건 이 조항들을 아무렇게나 막 갖다 붙인 게 아니라는 점이다. 수년간 정부와 업계가 논의한 끝에 산업 발전과 소비자 보호 사이에서 합의점을 찾았다. 적절한 규제가 산업의 질적 개선까지 이룰 것이라 생각한다.
 
많은 스타트업이 제도권 편입을 원하지만 실패한다. 
가장 중요한 건 명분과 기술이다. 렌딧이 혁신하려는 시장은 중금리 개인신용대출 시장이다. 은행 대출을 받기 어려운데 의지할 곳이라곤 제2금융권의 고금리 대출밖에 없는 건 오랫동안 문제로 지적됐다. 정부도 중금리 대출이 필요하다고 봤고. 그래서 우리 사업의 존재 이유를 설명하는 게 수월했다. 물론, 명분만 있다고 다 되진 않는다. 그걸 실행할 기술력도 입증해야 했다. 우리가 6년간 마냥 기다리고만 있지 않았다. 렌딧 플랫폼으로 현재까지 2만명가량이 2300억원의 개인신용대출을 받았다. 이중 절반이 제2금융권에서 20% 안팎 고금리를 내던 사람들인데, 우리는 이들에 대한 대출금리를 평균 11%로 낮췄다. 이런 데이터를 모아 허황한 얘기가 아니라는 점을 입증했다.  
 

기존 업계반발은.
모빌리티의 '타다' 사례처럼 우리 쪽은 생존을 걸고 해야하는 싸움까지는 아니었다. 기존 금융사들의 반대가 크진 않았다.
2019년 9월 온투법 법제화 토론회장에 참석한 박용만 전 대한상의 회장, 은성수 금융위원장, 민병두 전 국회 정무위원장, 김종석 의원, 유동수 의원, 김성준 렌딧 대표(왼쪽부터). [사진 금융위]

2019년 9월 온투법 법제화 토론회장에 참석한 박용만 전 대한상의 회장, 은성수 금융위원장, 민병두 전 국회 정무위원장, 김종석 의원, 유동수 의원, 김성준 렌딧 대표(왼쪽부터). [사진 금융위]

 
김 대표는 업계 도움도 제도권 편입에 큰 도움이 됐다고 했다. 2019년 P2P법이 국회에 통과할 때까지 대한상공회의소, 인터넷기업협회, 코리아스타트업포럼 등 여러 경제·스타트업 단체에서 힘을 모아줬기 때문이다. 그는 특히 박용만 전 대한상의 회장의 도움이 컸다고 했다.
 
어떤 도움을 받았나.
2019년 8월 쯤이었다. 파행하던 국회가 정상화된다는 뉴스가 나왔는데 밤 11시쯤 박용만 전 회장 전화가 왔다. 여름 휴가 중이셨는데 새벽 비행기 타고 올라오실거니까 다음날 6시에 국회에서 만나자는 얘기를 하시더라. 같이 국회의원 만나서 설득하고…. 정말 많은 도움을 받았다. 엘리베이터에서 둘이 있는데 어깨를 두드려주며 '이건 네 일일 뿐만 아니라 내 일이기도 하니 될 때까지 해보자'고 하실 땐 정말 큰 용기를 얻었다.
 
앞으로의 계획은
이제 다시 시작이다. 판이 만들어졌으니 본격적으로 국내 중금리 시장에서 혁신 경쟁을 할 것이다. 치열한 경쟁 속에 소비자 편익이 커지고 좀 더 많은 사람들이 중금리 혜택을 볼 수 있게 하겠다.
 
박민제 기자 letme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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