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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OOO 가격 인상됐나요" 수백명 줄 세우는 '명품 값질'

중앙일보 2021.06.11 05:00 경제 4면 지면보기

“오늘 OOO 제품 혹시 가격 인상됐나요?”

최근 명품 브랜드의 가격 인상이 이어지면서 관련 온라인 커뮤니티에 매일 아침이면 올라오는 글이다. 원하는 브랜드 제품의 가격이 인상되는지, 된다면 얼마나 되는지, 무엇보다 ‘언제’ 인상이 되는지를 묻는 글이 많다.

명품 ‘값’질, 인상 횟수는 늘고 폭은 줄고

당일 잡는 생선의 시가를 확인하듯 공산품 가격을 매일 확인하는 것이 우습지만, 명품 브랜드의 가격 인상 빈도를 보면 괜한 호들갑이 아니다. 루이비통은 지난해 1월부터 현재까지 7차례, 샤넬은 4차례, 에르메스는 2차례 가격을 올렸다. 올 상반기만해도 프라다는 5차례, 버버리와 셀린이 각각 2차례 가격 인상을 단행했다. 기존엔 주로 1년에 한두 번 5~20% 내외로 가격을 올리던 명품 업체들이 일 년에 4~5차례 기습적으로 가격을 올리는 것이다. 대부분 10% 내외, 적게는 2~3%씩 소폭 올리는 경우가 많다. 전반적으로 인상 폭은 줄고, 횟수는 늘었다. 품목별로 수시로 가격을 올리자 소비자들 사이에선 “명품은 오늘이 제일 싸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업체들 연 4~5회 가격 기습인상
올해 루이비통·프라다 5차례

비싸도 사는 아시아권 가격 올려
서구권서 줄어든 매출 만회설도

주요 명품 브랜드 2021년 가격 인상 현황.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주요 명품 브랜드 2021년 가격 인상 현황.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4월·6월 인상설…일단 줄 서고 보자

올해 1월과 2월 한두 품목의 가격을 소폭 올린 샤넬은 지난 4월 중순부터 가격 인상 ‘썰(소문)’이 돌았던 대표적인 브랜드다. 이 소문이 관련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돌자 4월 14일 새벽부터 백화점 앞에 수백 명이 줄을 서는 진풍경이 벌어지기도 했다. 지난해 5월과 11월, 많게는 30%까지 가격을 올렸던 샤넬 제품을 조금이라도 싸게 사고 싶은 수요가 몰린 탓이다. 현재까지 가격은 오르지 않았지만 다시 6월 초 인상 소문이 돌면서 줄서기 열기는 사그라지지 않고 있다.  
지난해 5월 샤넬이 가격 인상을 예고한 가운데 서울 중구 롯데백화점 본점 명품관 앞에 고객들이 줄을 서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지난해 5월 샤넬이 가격 인상을 예고한 가운데 서울 중구 롯데백화점 본점 명품관 앞에 고객들이 줄을 서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가격 인상 소문의 근원은 주로 해외 발이다. 미국이나 유럽에서 구매대행을 하는 판매자들이 친분이 있는 매장 직원에게 들은 소식을 전하는 경우다. 물론 이때도 정확히 인상에 대해 언급하기보다 약간의 ‘암시’를 주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국내 매장의 경우 원칙적으로 판매 직원은 인상에 대해 언급하지 않는다. 문제는 누구도 가격 인상에 대해 정확한 정보를 모른다는 점이다. 결국 아쉬운 소비자가 먼저 나서 줄을 서는 형국이다. 관련 커뮤니티엔 명품 브랜드의 가격 인상 자체에 대한 불만도 많지만, 정확한 정보를 알 수 없다는 점에 불만을 제기하는 목소리가 많다. “언제 올릴지 몰라 급하게 휴가 내고 ‘오픈런’하고 왔다” “오늘 매장 직원에게 인상에 관해 물었다가 되레 혼이 났다” 등이다. “오늘 오른다는 소식에 어젯밤 공식 홈페이지에서 결국 결제했다” “평소 살 생각도 없다가 가격 올린다니까 괜히 뭐라도 사야 할 것 같은 기분이다” 등 인상 소식만으로도 ‘패닉 바잉(공황 매수)’에 나섰다는 이들도 있다.  
한 명품 관련 온라인 커뮤니티에 '인상' 키워드로 검색한 결과. 사진 온라인 커뮤니티 캡처

한 명품 관련 온라인 커뮤니티에 '인상' 키워드로 검색한 결과. 사진 온라인 커뮤니티 캡처

가격 인상 ‘진짜’ 이유는

명품 브랜드는 가격 인상에 대해 ▶본사의 글로벌 가격 정책 변화▶환율 변동▶원자잿값 및 인건비 상승 등의 이유를 대고 있다. 하지만 환율과 원자잿값, 인건비 상승분이 일 년에 몇 번씩 가격을 조정할 만큼 변동 폭이 크지 않기에 결국 본사의 글로벌 가격 정책 변화가 사실상 가장 큰 이유로 거론된다. 
 
업계에선 코로나19로 명품 브랜드의 글로벌 실적이 악화하면서 가격 인상에 나선 것으로 파악한다. 패션 전문 매체 ‘비즈니스 오브 패션(Bof)’은 지난 4월 “전염병이 유행하는 동안 명품 판매가 감소했기 때문에 브랜드가 수익을 보호하기 위해 가격 인상에 나섰다”며 “명품 브랜드 대부분 고정 비용이 많이 드는 사업 구조이기 때문에 가격이나 판매량을 통해 수익을 유지하려 한다”고 보도했다. 실제로 컨설팅 업체 딜로이트의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프라다의 글로벌 가격은 평균 13%, 루이비통은 10%, 발렌시아가는 8% 상승했다.  
업계선 명품 브랜드의 가격 인상 이유로 코로나19로 인한 글로벌 실적 악화를 꼽는다. 사진 루이비통 홈페이지

업계선 명품 브랜드의 가격 인상 이유로 코로나19로 인한 글로벌 실적 악화를 꼽는다. 사진 루이비통 홈페이지

“물건이라도 많이 풀었으면”

명품 브랜드의 가격 인상 행렬은 전 세계적 현상이지만, 아시아 고객들은 상대적으로 높은 가격에 ‘덜’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코로나19로 명품 수요가 감소한 유럽과 미국 등 서구권과 달리 중국과 한국 등은 코로나 19나 가격 인상 이슈와 상관없이 명품을 더 많이 구매하고 있기 때문이다. 업계에서 명품 브랜드가 유럽과 미국 등 서구권에서 줄어든 매출을 늘 수요가 풍부한 아시아에서 만회하기 위해 가격 인상을 하고 있다는 얘기가 나오는 이유다. 결국 핵심은 명품에 대한 뜨거운 ‘초과 수요’다. 실제로 명품 관련 커뮤니티에선 “가격 인상되는 건 어쩔 수 없다 해도 물건이라도 많이 풀었으면 좋겠다”는 말이 나온다.  
명품은 접근성이 떨어질 수록 가치가 올라가는 독특한 소비 품목이다. 사진 샤넬 홈페이지

명품은 접근성이 떨어질 수록 가치가 올라가는 독특한 소비 품목이다. 사진 샤넬 홈페이지

이런 상황에서 정해진 시기나 횟수 없이 잦은 가격 변동은 의도했든 하지 않았든 마케팅 효과로 돌아오고 있다. 수요가 늘 높은 상태에서 물건이 부족한 데다 가격까지 불안정하니 일단 빨리 사고 보자는 심리가 나타난 것이다. 여기에 코로나19로 해외여행이 막혀 국내에서 물건을 살 수밖에 없는 현재 상황도 한몫했다. 
 
예물 수요 등 특정 브랜드 및 제품에 대한 쏠림 현상도 불을 붙였다. 트렌드 분석 전문가 이정민 트렌드랩506 대표는 “명품은 접근성이 떨어질 때 더 가치가 올라가는 독특한 소비 품목이라 가격 인상이 오히려 희소성과 소유 열망을 부추기는 역할을 하고 있다”며 “시시각각으로 명품 가격 정보가 공유되고 빠르게 전파되는 국내 시장 특성이 가격 인상으로 인한 마케팅 효과를 부풀리고 있다”고 분석했다.  
 
유지연 기자 yoo.jiyoe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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