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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혜수의 카운터어택] 지쳤을 때는 잠시 쉬어가자

중앙일보 2021.06.11 00:22 종합 26면 지면보기
장혜수 스포츠팀장

장혜수 스포츠팀장

쓰부라야 고키치는 1964년 도쿄 여름 올림픽 육상 남자 마라톤 동메달리스트다. 그는 마라톤 입문 7개월 만에 도쿄올림픽 대표선발전에서 2위로 국가대표가 됐다. 올림픽 남자 마라톤은 대회 폐막 사흘 전 열렸다. 그는 선두권에서 달렸고, 2위로 결승점인 도쿄 국립경기장 트랙에 들어섰다. 그 앞에는 한 선수뿐이었다. 1960년 로마올림픽에 이어 2연패를 달성한 아베베 비킬라(에티오피아)다. 그런데 마지막 한 바퀴를 남기고 쓰부라야는 뒤따라오던 베이질 히틀리(영국)에 추월당했다. 그의 동메달은 일본이 도쿄올림픽 육상에서 따낸 유일한 메달이었다. 값진 메달이지만, 그는 은메달을 놓친 자책감이 더 컸다.
 
쓰부라야는 실수를 만회하겠다며 1968년 멕시코시티올림픽 도전을 선언했다. 파혼까지 하며 운동에 전념했다. 지병인 허리 추간판 탈출증(디스크)이 그를 괴롭혔다. 도쿄올림픽 이후 마라톤 풀코스는 두 차례밖에 뛰지 못했다. 한 번은 중도 포기했고, 한 번은 9위에 그쳤다. 1968년 새해가 밝은지 얼마 안 된 1월 9일, 그는 숙소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나이 28살. 그는 유서에 “아버지 어머니, 고키치는 이미 완전히 지쳐버려서 달릴 수 없습니다”라고 썼다. 소설가 가와바타 야스나리는 그 유서를 두고 “천만 마디 말로도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애절하다”고 안타까워했다.
 
시상대에 선 히틀리, 아베베, 쓰부라야.(왼쪽부터) [사진 IOC]

시상대에 선 히틀리, 아베베, 쓰부라야.(왼쪽부터) [사진 IOC]

최근 열린 미국 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뱅크 오브 호프 매치플레이 우승자는 앨리 유잉(미국)이었다. 그런데 우승자보다 더 화제가 된 건 4위 펑샨샨(중국)이었다. 그는 3~4위전을 앞두고 기권했다. 그는 “나를 위해 옳은 결정을 했다. 정말 피곤하다”고 말했다. 나흘간 4라운드를 도는 일반 대회와 달리 매치플레이는 최대 7라운드를 돈다. 여러 번 연장 승부를 펼쳐 실제 홀 수는 더 많다. 그는 “결승에 올랐다면 쓰러질 때까지 쳤겠지만, 4강전에서 져 쉬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 더 돌면 아마 코스에서 쓰러질 거다. 자신을 그렇게 나쁜 상황으로 몰아가면 안 된다”고 말했다.
 
번아웃 증후군(Burnout syndrome). 이 용어는 1974년 미국 심리학자 허버트 프로이덴버거가 처음 사용했다. 어떤 일에 의욕적으로 몰두하던 사람이 신체적·정신적으로 극도의 피로감을 호소하고 무기력해지는 현상이다. 쓰부라야도, 펑샨샨도 번아웃 증후군이었다.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은 2015년 번아웃 증후군을 자가 진단할 수 있는 간이테스트(인터넷에서 쉽게 찾을 수 있다)를 내놓았다.
 
2021년의 반환점을 눈앞에 둔 지금, 아마도 많은 이의 피로도가 정점으로 치닫고 있을 거다. 부디 쓰부라야처럼 ‘완전히 지쳐서 달릴 수 없게 되기’ 전에, 펑샨샨 말마따나 ‘자신을 그렇게 나쁜 상황으로 몰고 가면 안 된다’. 지쳤을 때는 잠시 쉬어가자.
 
장혜수 스포츠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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