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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호의 퍼스펙티브] 사실상 손 놓은 부동산과 탈원전

중앙일보 2021.06.10 00:37 종합 26면 지면보기

표류하는 ‘청와대 정부’의 주요 국정

이철호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이철호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주요 국정들이 표류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가 추진한 부동산·탈원전 정책 등이 사실상 실패했지만, 수습과 해결에 총대를 메는 모습을 찾기 힘들다. 부산 변호사 시절부터 문 대통령을 잘 아는 인사는 “문 대통령은 마음에 안 드는 일이 생기면 말을 잘 안 하고 얼굴을 돌린다”고 했다. 쉽게 분노하거나 막말을 쏟아붓지 않는다는 점에선 좋은 성정이다. 하지만 어떤 사안이 잘못되거나 실패하면 사과하고 수습해야 한다. 그럴 때도 그냥 별다른 언급 없이 가만히 있는 건 문제다. 부동산·탈원전이 대표적이다.
 

청와대 안팎에서 기피 언어 돼
총대 안 메려 모두 외면·방관
어공 장악력 현저히 떨어져
“감성 이벤트 유혹에 빠지기 쉬워”

현 정부는 ‘청와대 정부’라고 했다. 요즘에는 청와대에서 정부 부처로 예전처럼 지시가 잘 내려가지 않는다. 지시의 빈도나 강도가 현저히 떨어졌다고 한다. 총대를 메야 할 책임자들은 이미 청와대를 떠났고, 뒤늦게 임명된 인사들은 전문가도 아니다. 공무원들은 복지부동 모드다. 정권 말까지 겹쳐 부작용 수습에 소극적일 수밖에 없다. 주요 정책들이 고구마를 먹은 듯 답답하게 제자리걸음만 하고 있다. 공식 언급만 않을 뿐, 사실상 포기하는 조짐이 뚜렷해지고 있다.
 
부동산 대책 스톱 … 집값만 계속 올라
 
문 대통령은 “부동산은 할 말 없다”고 했다. 일선 공무원들은 “부동산은 할 일 없다”는 분위기다. 아예 손을 놓고 있다. 한국부동산원 통계를 보면 서울 아파트값은 지난해 6월 첫째 주(6월 1일 기준) 이후 51주 연속 단 한 주도 내린 적이 없다. 특히 수도권 집값은 5개월 연속 1% 이상 오르는데도 정부는 팔짱을 끼고 있다. 올해 들어 의왕은 18.29%, 안산은 17.79%, 시흥은 15.05%나 급등했다. 전셋값도 임대차3법으로 100주 연속 올랐다.
 
문재인 정부 초기에는 아파트값 급등에 대해 “민간 은행 통계이며, 일부 고가에 거래된 매물이 과대 반영된 것”이라거나 “건설·부동산 업계와 보수 언론들의 일방적인 주장”이라 핑계를 댔다. 하지만 지금은 한국부동산원이 내는 정부의 공식 통계다. 더 이상 비빌 언덕이 없어진 것이다. 정부가 83만6000가구를 신규 주택으로 공급하겠다는 2·4 대책 이후에도 시장 불안은 가라앉지 않고 있다. 합리적 가격에 질 좋은 아파트가 넉넉하게 공급될 것이란 믿음을 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철호의 퍼스펙티브 그래픽=신용호

이철호의 퍼스펙티브 그래픽=신용호

지난 4월 1일 이호승 청와대 정책실장은 “(부동산 가격 상승은) 한국적 현상만은 아니다”며 물타기를 했다. 이후 핵심 대책인 공급 확대는 표류하고 있다. 3기 신도시는 LH 사태로 3개월간 진척이 거의 없는 스톱상태다. 대토 공고 등 보상작업이 진행되지 않고 있다. 정부 과천청사에 주택 4000호를 공급하려던 계획은 주민들의 거센 반발에 밀려 백지화돼 버렸다. 서울 노원구 태릉골프장(1만호), 마포구 서부면허시험장(3500호), 용산구 캠프킴(3100호), 서초구 서울지방조달청(1000호) 등의 도심 공급부지도 지자체와 주민들의 반발로 발이 묶인 상태다. 주민들과 협의 없이 정부가 일방적으로 밀어붙여 갈등을 자초했다가 결국 내년 대선·지방선거의 표심에 밀리고 있는 것이다.
 
담당 부서인 국토부는 정신이 없다. LH 사태의 수사 칼날을 피하기도 바쁘다. 오세훈 서울시장의 민간주도 재건축·재개발 규제완화에 제동을 걸면서 신경전만 벌이고 있다. 민주당도 부동산 특위를 띄웠지만, 진보 단체들의 반발로 해결 시늉만 내고 있다. 내년 대선 표 계산을 하면서 종부세를 상위 몇 %에게 매길지만 고민 중이다.
 
총대 멜 사람도, 믿을 사람도 안 보여
 
부동산 공급 대책은 고난도 작업이다. 현지 주민들의 반발을 설득하고 LH의 등을 떠밀어야 한다. 야당인 오세훈 서울 시장과 협의도 해야 한다. 여기에다 공무원들은 어느 때보다 몸을 사릴 수밖에 없다. 워낙 부동산 민심이 악화돼 내년 대선 이후 정치 환경이 바뀌면 언제 청문회·국정조사·특검의 3종 세트를 얻어맞을지 모르기 때문이다.
 
가장 큰 문제는 총대를 멜 사람이 안 보인다는 점이다. 문 대통령은 “부동산은 할 말 없다”는 발언 이후 침묵하고 있다. 민주당 초선 의원들이 청와대에 갔을 때도 부동산의 ‘ㅂ’자도 꺼내지 않았다. 대통령의 불편한 심기를 의식한 때문이다. 홍남기 경제부총리는 “2·4 부동산 대책은 공급 쇼크 수준” “아파트값 상승률이 역사적 고점”이라는 구두개입만 하는 수준이다. 그는 원래 김수현·김상조 정책실장 시절부터 부동산 대책과는 일정한 거리를 두었다. 지금도 부동산시장 점검 관계 장관회의를 주재하지만, 내년 지방 선거 출마를 의식해 부동산 악역을 담당할 분위기가 아니다. 지난달 14일 취임한 노형욱 국토부 장관은 예산통일뿐 부동산 정책은 처음이다. 안일환 경제수석도 마찬가지다. 이러니 다주택자들은 공급 절벽·거래절벽 속에 내년 대선 때까지 버텨보겠다는 쪽이다.
 
전직 청와대 비서실장은 청와대의 부동산 메시지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대통령이 앞장서서 “부동산 실패 책임은 내게 있다. 공급 확대를 확실히 챙기겠다”고 해도 모자랄 판이다. 그런데 “할 말 없다”고 했으니 비서실이나 공무원들이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더구나 부동산 실패에 대해 누구도 책임지지 않고 있다. 장하성·김수현·김상조 전 정책실장 등은 외국 대사로 나가거나 대학교수로 돌아가 조용히 숨죽이고 있다. 민주당이 부동산 민심을 수렴하는 현장마다 “집 사지 말고 기다리라던 김현미 전 국토부 장관을 믿었는데 벼락 거지가 돼 버렸다”는 성토가 쏟아진다. 그런 김 전 장관은 전북대 특임교수로 임명됐다. 현지 언론들은 내년 전북 도지사로 출마할 것이라고 보도한다.
 
탈원전, 포기 선언 안 할 뿐 사실상 포기
 
탈원전은 지난해 10월 월성1호기 경제성 평가 조작이 감사원 조사에 걸리면서 올 스톱된 상태다. 대전지검의 수사로 담당 국장과 서기관은 구속됐다. 이제 곧 백운규 전 산업통상자원부 장관과 채희봉 전 청와대 산업정책비서관 등의 기소 여부가 남았다. 하지만 이 사건을 수사한 대전지검이 검찰 인사로 해체 수순을 밟고 있다.
 
이제 탈원전은 청와대와 산자부에서 금기어로 여기는 분위기다. 에너지 전환정책이라고 간판을 바꿔 달았지만 누구도 움직이지 않는다. 당장은 검찰 인사로 사건이 뭉개질 지 모르지만 차기 정부에서 언제 재수사 대상에 걸릴지 모르기 때문이다.
 
여기에다 글로벌 환경이 완전히 변했다. 세계 각국이 ‘탄소 중립’ 슬로건 아래 원전의 개발과 활용 쪽으로 무게 중심을 옮겼기 때문이다. 에너지 흐름이 탈원전 기조와 정반대로 바뀌어 버린 것이다. 특히 지난달 한·미 정상회담에서 바이든 정부와 탄소 중립화를 위해 원전산업 전략적 협력을 논의하면서 탈원전은 설 자리가 없어졌다. 눈치 빠른 증시에선 두산중공업 등 원전 관련주가 폭등했다.
 
지난달 26일 문 대통령 초청 정당대표 간담회. 이 자리에서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는 “탈원전 정책 폐기를 검토해야 한다”고 건의했다. 예전 같으면 아예 못 들은 척했을 사안이다. 그런데 문 대통령이 뜻밖으로 “현황을 파악해보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탈원전을 계속 고집하기 어려운 입장을 시사한 것이다.
 
하지만 정부가 공식적으로 탈원전의 깃발을 내릴 가능성은 거의 없다. 민주당 초선 의원들도 문 대통령을 만나 기념사진 찍는 데 시간을 허비했을 뿐 한·미 정상회담에서 합의한 원전 협력 내용이 무엇인지 묻지 않았다. 여전히 환경 원리주의 진영을 의식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정부도 신한울 1·2호기 운영 허가나 신한울 3·4호기의 건설 재개에는 침묵을 지키고 있다. 탈원전 정책은 내년 대선 때까지 우왕좌왕 헷갈릴 수밖에 없는 운명이다.
 
“청와대에 예능 PD만 눈에 띄면 안 되는데 …”
 
지난 4년간 청와대는 민주당과 시민단체 출신의 비서관·행정관들, 이른바 ‘어공(어쩌다 공무원)’들이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늘공(정통 관료)’들에 비해 전문 능력은 떨어지지만 충성심으로 똘똘 뭉쳐 있었다. 하지만 이들의 장악력이 현저히 떨어졌다고 한다. 조국 사태,월성 원전 사건, LH 사태 등이 불거지면서 위축된 것이다. 예전 같은 ‘청와대 정부’의 집중력과 실행력도 유지하기 어려워졌다.
 
전직 청와대 A 비서실장은 “주요 국정을 진척시키기 힘들어지면 가벼운 이벤트의 유혹에 빠지기 쉽다”고 지적했다. 언론에 비유하면 청와대의 가장 중요한 기능은 시사프로다. 딱딱하고 무겁지만 사회의 가장 중요한 문제를 정면으로 건드려야 한다. 하지만 청와대의 힘이 빠질수록 감성을 자극해 시청률을 끌어올리는 예능 PD 같은 흥행 이벤트에 눈을 돌리게 된다는 것이다. A 실장은 “부동산이 최대 현안이라면 문 대통령이 3기 신도시 부지 등을 자주 현지 시찰하는 게 맞다”고 지적했다. 도심 부지 공급 협상이 공회전하면 현장에서 직접 주민들과 지자체를 설득하는 모습도 보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문 대통령이 작년 말 13평짜리 행복주택을 방문했다가 역풍을 맞은 이후 부동산 현장을 거의 찾지 않는 게 아쉽다고 지적했다.
 
“대통령의 발길은 우리 사회와 공무원들에게 중요한 메시지를 던진다.” A 실장은 “테이블에 앉아 회의하는 것보다 대통령의 관심이 어디 있는지 현장 방문을 통해 보여줘야 공무원들이 뒤따르고 정책 실행의 속도를 높일 수 있다”고 조언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경부 고속도로 건설 때 헬기를 타고 현장을 돌아다닌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최근 문 대통령은 감성적인 현장을 자주 방문한다. 국회 총리 인사청문회에선 “현 정부의 정의·평등·공정은, 매몰차게 말씀드리면 탁현민 비서관의 어떤 소품 정도로 전락해버리지 않았나 생각한다”는 증언까지 나왔다. A 전 실장도 “청와대에 예능 PD 같은 인사들만 눈에 띄면 안 되는데…”라며 걱정했다.
 
이철호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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