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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남 신부의 속풀이처방] 한국 사회의 암, 적개심

중앙일보 2021.06.10 00:30 종합 23면 지면보기
홍성남 가톨릭 영성심리상담소장

홍성남 가톨릭 영성심리상담소장

오래전 소위 운동권 교육자료라고 불리는 그림들을 본 적이 있다. 여러 그림 중 한 그림이 눈에 확 들어왔다. 적들이라고 지칭된 사람들이 그려진 그림. 그중에 배가 불룩한 종교인의 모습도 있었다. 그림은 의도가 분명해 보였다. 적개심을 자극하려는 의도. 물론 적개심을 유발하는 의도적인 작업은 좌파뿐 아니라 우파에서도 벌어진다. 걸핏하면 빨갱이란 낙인을 찍어댄다. 이 좁고 작은 땅에 사는 사람들 사이에서 적개심은 가장 무서운 적이다. 우리는 아주 오랫동안 남과 북 양쪽에서 적개심을 가진 사람들에 의해 수많은 목숨을 잃어야 했다.
 

지나친 분노와 선민의식
남 단죄할 자격있다 느껴
적개심 부추겨 사익 추구
이런 병적 현상 없어지길

적개심은 분노와는 전혀 다른 것이다. 사회를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분노가 필요하다. 일부 종교인들이 마음의 평화를 강조하면서 분노의 무용성을 주장하기도 하지만, 건강한 분노는 정의 실현에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문제는 지나친 분노, 즉 적개심이다.
 
적개심은 어떤 사람들에게 생기는가? 자신만이 문제가 없고 정의롭고 도덕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자신이 다른 사람들보다 편견이 적고 공정하며 도덕적이라고 생각한다. 그래도 가끔은 자신의 허물로 인한 부끄러움이나 죄의식을 느끼면서 살아간다. 이것이 건강한 사람의 심리이다. 그런데 적개심을 갖는 사람들은 자신이 특별한 사람이란 선민의식을 가지고 있어서 자신에게 다른 사람들을 단죄할 자격이 있다고 여긴다.
 
그렇다면 적개심이 일으키는 문제는 무엇인가? 적개심은 사람을 괴물로 만든다.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는 이렇게 경고했었다. “괴물과 싸우는 자는 자신이 괴물이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아무리 정의를 이야기한다고 해도 그 마음속에 적개심이 가득하면 사람들이 그를 피한다. 그 사람의 마음에서 피비린내를 풍기는 괴물이 보이기 때문이다.
 
속풀이처방 6/10

속풀이처방 6/10

두 번째 문제는 적개심을 품은 사람들이 적개심을 부추기는 사람들에게 이용당하기 쉽다는 것이다. 정치인·종교인 중에 사욕이 가득한 자들이 대중의 적개심을 부추겨서 자신의 입지를 구축하거나 사익을 추구한다는 사실은 주기적으로 여러 사례를 통해 알려지고는 한다. 나치 이론가 칼 슈미트는 적과 동지를 가른 후 상대방에 대한 적개심을 불어넣는 것의 효용성을 강조하였다. 우리나라 역대 권력자들은 히틀러와 유사한 정략으로 국민 분열을 일으키고 자신의 입지를 구축해왔다. 적개심을 정치적 도구로 사용하는 악습이 우리나라에서 적개심을 뿌리 뽑지 못하게 만드는 것이다. 좁은 땅덩어리 위에서 서로 삿대질하고 반목하고 산다면 집단 정신병에 걸릴 위험성이 크다.
 
그렇다면 이런 병적인 상태에서 벗어날 길은 무엇인가? 사람의 마음 상태는 무엇을 보느냐에 따라서 달라진다. 그러므로 잠깐이라도 존경받을 만한 삶을 산 사람들의 이야기에 눈과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그런 사람 중 한 분으로 이태석 신부를 꼽을 수 있다. 수도회 신부이자 의사였던 이태석 신부는 서로 간의 적개감으로 갈등이 심한 아프리카 수단에서 어느 편도 들지 않고 총을 겨눈 양쪽 군인들을 모두 치료해주었고, 그 결과 양쪽의 호감과 신뢰를 얻었다. 그리고 전쟁터에서 감정을 상실한 아이들에게 음악을 가르쳐 심리적인 건강을 찾아주려 애썼다. 사람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몸으로 보여준 뒤 자신의 건강은 챙기지 못하고 짧은 생애를 마감하였다.
 
그런데 그가 죽은 후 남수단 사람들은 그에 대한 그리움이 더욱더 깊어진다고 고백했다. 남수단 대통령 살바키르는 이태석 신부가 남수단에서 보여준 사랑과 헌신은 절대 잊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였다. 또한 그가 애지중지 가르친 아이들은 그와 같은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하고 있고, 실제로 그 아이들이 남수단의 기둥이 되어 여러 분야에서 이태석 신부와 같은 헌신적인 모습으로 일하고 있다. 단 한 사람이 한 나라를 달라지게 한 것이다.
 
우리나라는 어떠한가? 내로라하는 사람들이 방송에 나와 눈에 핏발을 세우고 입에 칼을 문 채로 상대방을 죽일 듯 떠들어댄다. 그렇게 정의를 주장하는 사람 중에 이태석 신부처럼 사람들의 마음을 뭉클하게 하고 본받고 싶은 마음이 들게 하는 사람이 누가 있을까? 아무리 입으로 정의를 외쳐도 마음속에 적개심이 가득하다면 정의로운 사회는 오지 않는다. 더욱이 그런 사람에게 힘이 주어진다면 그 사회의 앞날이나 희망은 없을 것이다. 그들이 그 사회를 황무지로 만들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간절히 기도한다. 앞으로 사람들을 부끄럽게 할 존경의 대상들이 많이 나오기를, 그래서 우리 사회에서 적대감 때문에 사람을 사람으로 보지 못하는 병적 현상이 없어지기를.
 
홍성남 가톨릭 영성심리상담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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