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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의 기억 이용선,북한의 기억 지성호, 미얀마로 뭉쳤다

중앙일보 2021.06.09 18:08
지리한 대치가 일상화된 국회에서 모처럼 여야 의원들이 한목소리를 냈다. 9일 국회 로텐더홀에서 출범한 ‘미얀마의 평화와 민주주의 회복을 위한 국회의원 모임’엔 6개 정당 소속과 무소속 의원 등 63명이 이름을 올렸다.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51명으로 대다수이긴 하지만, 국민의힘(4명)ㆍ정의당(2명)ㆍ열린민주당(2명)ㆍ국민의당(1명)ㆍ기본소득당(1명)ㆍ무소속(2명) 의원 12명도 있다.  
 
9일 오전 국회 로텐더홀에서 열린 ‘미얀마의 평화와 민주주의 회복을 위한 국회의원 모임’ 출범식. 이용선 의원실 제공

9일 오전 국회 로텐더홀에서 열린 ‘미얀마의 평화와 민주주의 회복을 위한 국회의원 모임’ 출범식. 이용선 의원실 제공

모임의 대표 자리도 서로 다른 정당 의원들이 나눠 맡았다. 민주당의 설훈, 국민의힘의 하태경, 정의당의 심상정 의원이 공동대표다. 모임은 개별적이고 산발적으로 진행된 정치권의 미얀마 민주화 운동 지지 활동을 한 곳으로 모으자는 취지에서 결성됐다. 이날 출범식에 참석한 한 야당 의원은 “여야 의원이 이렇게 많이 모인 걸 보고 나도 깜짝 놀랐다”고 말했다.
 

1980년 광주의 기억

“미얀마는 1980년의 우리 상황과 너무 닮았다”는 이 날 설훈 공동대표의 인사말처럼, 모임에 참여한 다수의 의원은 광주 민주화 운동의 기억을 연대의 고리로 삼았다. 특히 민주당은 지난 2월 1일 미얀마의 군부 쿠데타가 발생한 초기부터 “대한민국은 4ㆍ19혁명과 부마항쟁, 5ㆍ18민주화운동 등 국민의 피와 눈물로 민주주의를 쟁취했다. 미얀마 시민들의 염원을 깊이 공감하고, 전폭적으로 지지한다”(2월 22일, 이낙연 당시 대표)고 밝혔다.  
 
이용선 더불어민주당 의원. 중앙포토

이용선 더불어민주당 의원. 중앙포토

모임의 실질적인 주도자 역할을 맡은 이도 광주고등학교 출신의 이용선 민주당 의원(초선ㆍ서울 양천을)이다. 전남 순천 태생인 그는 여수중-광주고-서울대를 졸업했다. 이 의원은 “미얀마와 우린 민주주의 회복을 위한 치열한 투쟁의 역사를 공유하고 있다”고 결성 계기를 말했다.  
 
여야를 가리지 않고 많은 의원이 동참했다
우리 모두에겐 광주 민주화 운동의 기억이 있다. 그래서 많은 의원이 미얀마 사태 초기부터 전폭적인 관심을 가져왔다. 조직을 꾸려 체계적으로 미얀마를 돕자는 뜻에 공감대가 모인 결과다.  
 
1980년 광주와 2021년 미얀마가 어떻게 연결되나.
둘 다 군부의 탄압에 맞서 싸우는 치열한 투쟁이다. 우리는 1980년, 민주주의 회복을 위한 투쟁의 역사를 보냈고 현재의 미얀마 역시 우리 못지않게 희생과 탄압 속에서 민주주의를 위해 싸우고 있다. 투쟁의 역사를 공유하기 때문에 그들과 깊게 공감하고 연대할 수 있는 거다.  
 
개인적으론 1980년 광주에 어떤 기억이 있나.
당시 서울에서 대학(서울대)을 다니던 중 계엄군에 의해 광주 시민이 탄압을 받고 있다는 소식을 듣게 됐다. 광주는 내가 대학 가기 직전까지 있었던 곳이다. 바로 광주로 달려갔고, 그곳에서 민주화 운동을 했다. 그러다 계엄 포고령 위반에 걸려서 군에 강제 징집되기도 했다. 광주에서의 민주화 운동은 이후 내가 30여년간 시민운동을 하게 된 계기가 됐다.
 
모임에 참여한 많은 의원은 “여야 의원 63명을 끌어모은 건, 이 의원의 열성 덕분”이라고 했다. 하지만 이 의원은 “저는 미얀마 사태에 공감하는 여러 의원 중 한명이다. 주도한 게 아니라, 민주화 운동이라는 역사적인 흐름에 동참했을 뿐”이라고 말했다.  
 

‘꽃제비’의 기억

다른 기억을 출발점에 놓고 모임에 들어온 의원도 있다. 북한 ‘꽃제비’ 출신인 지성호 국민의힘 의원(초선ㆍ비례대표)이다. 1982년 함경북도 회령에서 태어났다. 14살이던 1996년 ‘고난의 행군’ 생활고에 석탄을 훔치러 열차에 올라탔다가, 잘못 뛰어내리는 바람에 왼손과 왼 다리를 잃었다. 2006년 탈북 후 북한 인권 운동에 매진했고, 지난해 국회에 입성했다.  
 
지성호 국민의힘 의원. 뉴시스

지성호 국민의힘 의원. 뉴시스

미얀마 사태에 관심을 갖게 된 건, 북한 출신이란 점이 작용했나.
그렇다. 지난 2월부터 관심을 갖기 시작했는데, 미얀마 현지 구호를 보고 깊게 파고들기 시작했다. ‘투쟁에 성공하면 남한, 실패하면 북한이 된다’는 구호였다. 나는 남과 북 모두에서 살아봤기 때문에, 누구보다 더 공감할 수밖에 없었다.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해왔나.
3월엔 미얀마 현지 시민단체 관계자들과 화상 간담회를 하는 등 주로 경청했고, 4월부턴 우리 외교부 제2차관, 코이카 이사장 등과 잇달아 면담을 갖고 미얀마 국민의 보호 방안을 검토해달라고 요청했다. 지난달 미국 출장 중엔 미 국무부 전ㆍ현직 인사들과 만나 미얀마 사태의 심각성을 전달하기도 했다.  
 
민주당 주도 모임에 국민의힘 의원이 참여한 건 이례적이다.
민주주의와 인권의 발전이라는 보편적인 가치 실현을 위해 참석했다. 여야를 가릴 문제가 아니라고 봤다. 사실 민주당은 2019년 홍콩 민주화 운동 땐 아무 말도 없어서 개인적으로 깜짝 놀랐기도 했고, 진심으로 화가 났다. 평소엔 광주나 민주화, 인권을 그렇게 강조하더니 어떻게 저럴 수가 있나 싶었다. 이제라도 인권에 관심을 갖는 걸 보고 다행이라고 느꼈고, 같이 도우며 일하려고 참여했다.  
 
모임의 운영위원을 맡은 지 의원은 “앞으로 모임에서 더 많은 인권을 논하고 싶다”고 했다. 그는 “미얀마 인권에만 선택적으로 관심을 가질 게 아니라, 북한 인권도 잘 살펴봐달라고 목소리를 낼 계획이다. 나아가 중국에 억압받는 홍콩과 대만의 민주주의와 인권에 대해서도 함께 고민하고 토론해봤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준영ㆍ송승환 기자 kim.junyo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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