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美, 이란 핵협상에 들이댄 이 원칙...北에도 그대로 간다

중앙일보 2021.06.09 17:08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이 8일(현지시간) "이란 핵합의(JCPOAㆍ포괄적 공동행동계획)를 복원하더라도 (대이란)제재는 유지한다"고 밝혔다. 정치적 선언만으로는 부족하고 행동을 보겠다는 뜻으로, 핵심은 비핵화 조치가 제대로 이뤄졌는지 확인하는 '검증'이다. 이런 원칙은 향후 북한과 비핵화 협상에서도 똑같이 적용될 가능성이 크다.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 AP=연합뉴스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 AP=연합뉴스

블링컨 국무장관은 이날 상원 세출위, 외교위 청문회에서 "이란 핵합의에 (당사국들이) 복귀하더라도, 트럼프 행정부 당시 부과된 제재 등 수백개의 제재는 그대로 유지될 것"이라며 "이란이 핵합의를 준수하지 않는다면, 이란의 행동이 바뀔 때까지 제재는 계속된다"고 못박았다. 

블링컨 "이란 핵합의 복원해도 제재 유지"
정치적 선언에 더해 '검증ㆍ사찰'이 핵심
北, 제재 해제 위해 검증 받을지가 관건

현재 이란을 상대로 한 제재가 워낙 중첩적, 다층적인 탓도 있지만, 사실상 사찰 등 철저한 검증을 통해 비핵화를 되돌릴 수 없는 수준까지 진행한 것이 확인돼야 제재를 완화할 수 있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이란 핵합의는 오바마 행정부가 타결하고 트럼프 행정부가 탈퇴한 합의로, 엄격한 검증과 사찰을 명시한 게 특징이다. 이란이 합의를 준수하지 않을 경우 제재를 '다시 부과'(re-imposition)한다는 '스냅백'(snap-back)' 조항도 들어갔다. 
인남식 국립외교원 교수는 "이란 핵합의는 정치적 합의나 타결 수준에 그치지 않고, 비핵화의 기술적인 조건들을 구체적으로 다루고 있다"며 "모든 규정은 이란이 합의를 어길 가능성이 있다는 걸 전제로 만들어졌다"고 설명했다.
2018년 5월 8일(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2015년 체결됐던 이란 핵 합의(JCPOA)를 탈퇴한다는 뜻을 밝히는 문서를 든 모습. 로이터=연합뉴스

2018년 5월 8일(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2015년 체결됐던 이란 핵 합의(JCPOA)를 탈퇴한다는 뜻을 밝히는 문서를 든 모습. 로이터=연합뉴스

현재 이란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인 P5 중 미국을 제외한 P4(영국ㆍ프랑스ㆍ중국ㆍ러시아)에 독일을 더한 형태인 P4+1과 핵합의 재협상을 진행하고 있는데, 미국과도 간접적으로 접촉 중이다. 오는 18일(현지시간) 이란 대선 전에 재협상이 타결될지가 관건이다. 
이란 핵합의는 이란의 우라늄 농축을 농도를 3.67%로 제한했지만, 합의가 파기된 뒤 이란은 다시 농축 수준을 올려 최근엔 무기화가 가능한 60%수준의 고농축 우라늄을 생산하기 시작했다고 주장했다. 다만 그 와중에도 국제원자력기구(IAEA) 차원의 핵사찰은 임시적인 형태로나마 이뤄지고 있다.
 
바이든 행정부가 최근 대북정책특별대표를 임명하고 북한과 비핵화 협상 준비에도 착수한 가운데, 이란에 적용한 비핵화 원칙은 그대로 북한에도 적용될 거란 관측에 무게가 실린다. 지난달 21일(현지시간) 한ㆍ미 정상회담에서 양국은 2018년 북ㆍ미 싱가포르 선언과 남북 간 판문점 선언 등 기존의 약속에 기초한 대화 필요성 등에 합의했다. 
다만 이런 정치적 선언만으로는 미국이 비핵화 과정에서 어떠한 형태의 양보도 시사한 게 아니라는 점이 이란 핵합의 재협상 과정에서 속속 확인되고 있다. 결국 미국과 유엔의 전통적인 비핵화 원칙인 'CVID'(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에서 'V(검증)'과 'I(불가역성)'이라는 요소는 놓치지 않겠다는 의지를 이란과 북한의 사례에 사실상 공통적으로 반영하고 있는 셈이다.
지난달 21일(현지시간) 한 ㆍ미 정상회담에서 성 김 주 인도네시아 대사가 신임 대북정책특별대표로 임명됐다고 발표됐다. 당시 김 대사가 서훈 국가안보실장과 대화하는 모습. 연합뉴스

지난달 21일(현지시간) 한 ㆍ미 정상회담에서 성 김 주 인도네시아 대사가 신임 대북정책특별대표로 임명됐다고 발표됐다. 당시 김 대사가 서훈 국가안보실장과 대화하는 모습. 연합뉴스

북한은 최근 '제재 해제'를 넘어 미국의 '대북 적대시 정책 철회'를 대화의 선결 조건으로 내세우고 있는데, 결국 전자가 후자에 포함되는 개념이다. 북한의 목표는 여전히 2019년 2월 하노이 북ㆍ미 정상회담에서 요구했던 5개 핵심 유엔 안보리 제재 해제에 더해 미국의 독자 제재까지 걷어내는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하지만 과거 북ㆍ미 협상이 매번 IAEA의 사찰 등 검증의 고비를 넘지 못했던 점을 고려할 때, '제재 해제'와 '검증'을 맞바꾸는 합의가 북ㆍ미 간에도 이뤄질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한편 이란 핵합의가 트럼프 행정부 당시 미국의 탈퇴로 파기됐다는 점에서 재협상 과정에서 합의의 연속성을 보장할만한 장치가 마련될지도 주목한만 한 부분이다. 2015년 이란 핵합의는 끝내 미 의회 비준을 받지 못했고, 정권이 바뀔 경우 비교적 쉽게 뒤집을 수 있다는 한계를 드러냈다. 바이든 행정부가 이를 보완할만한 장치를 이란과 협상 과정에서 고안할 경우 북한에게도 비슷한 카드를 유화책 중 하나로 꺼내들 수 있다는 지적이다.
 
박현주 기자 park.hyunju@joongang.co.kr 
공유하기

중앙일보 뉴스레터를 신청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