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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마을서만 8000명 죽였다···16년 도피 '발칸 도살자'의 최후

중앙일보 2021.06.09 16:45
보스니아 내전 과정에서 무차별한 학살을 저질러 '발칸반도의 도살자'로 불리던 라트코 믈라디치가 종신형을 확정 받았다. 로이터=연합뉴스

보스니아 내전 과정에서 무차별한 학살을 저질러 '발칸반도의 도살자'로 불리던 라트코 믈라디치가 종신형을 확정 받았다. 로이터=연합뉴스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보스니아)는 1990년대 내전 당시 유럽의 ’킬링필드’였다. 당시 대규모 학살을 저지른 라트코 믈라디치(78) 전 세르비아계 군 사령관에게 종신형이 확정됐다. 믈라디치는 인종 청소에 가까운 잔인한 학살로 ‘발칸반도의 도살자’로 불렸던 인물이다. 
 
8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 등 외신은 유엔(UN) 산하 구유고슬라비아·르완다 국제형사재판소 잔여업무처리기구(IRMCT)가 믈라디치의 항소심에서 종신형을 선고한 하급심을 그대로 확정했다고 보도했다. 2017년 믈라디치는 하급심 판결 뒤 “군인으로서 주어진 의무를 다했을 뿐”이라며 항소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8일(현지시간) 라트코 믈라디치 전 세르비아계군 사령관이 자신에게 종신형을 확정하는 판결 내용을 듣고 있는 모습. AP=연합뉴스

8일(현지시간) 라트코 믈라디치 전 세르비아계군 사령관이 자신에게 종신형을 확정하는 판결 내용을 듣고 있는 모습. AP=연합뉴스

 
영국 가디언에 따르면 검은 양복을 입고 법정에 나타난 믈라디치는 턱을 괸 채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고 한다. 앞서 하급심 땐 재판부에 “이건 모두 거짓말”이라고 소리 지르던 모습과는 대조적이었다. 보스니아에선 시민들이 그의 판결을 실시간 중계로 지켜봤다.
 
믈라디치가 저지른 범행의 역사적 배경은 90년대 옛 유고슬라비아연방 공화국들 해체 과정에 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수립된 사회주의 유고연방은 보스니아와 세르비아, 크로아티아, 슬로베니아 등으로 분리되면서 거친 분쟁을 겪었다. 구성 민족과 종교가 복잡해 ‘문화 모자이크’ 지역으로 불렸던 만큼, 이곳에서의 반목은 해묵은 문제였다.

 
믈라디치의 재판 내용을 시민들이 TV로 지켜보고 있는 모습. EPA=연합뉴스

믈라디치의 재판 내용을 시민들이 TV로 지켜보고 있는 모습. EPA=연합뉴스

 
특히 92~95년 보스니아에서 벌어진 내전은 대규모 유혈사태를 불러왔다. 91년 슬로베니아와 크로아티아가 유고연방에서 탈퇴해 독립하겠다고 선언했고, 이어 보스니아도 독립을 선포했다. 하지만 보스니아 내에서도 세르비아계인들은 계속 연방에 속하기를 원했다. 이듬해 미국 등 국제사회가 보스니아 공화국의 독립을 인정하자 세르비아계군은 내전을 일으켰는데, 당시 육군 출신인 믈라디치가 사령관으로 참전했다.

 
믈라디치가 자행한 가장 잔인한 사건 중 하나는 ‘스레브레니차 대학살’이다. 95년 보스니아 동북부의 이슬람 마을인 스레브레니차에서 어린아이부터 노인까지 8000여 명이 살해됐다. 이는 2차 세계대전 이후 가장 끔찍한 집단 학살로 기록됐다. 가디언은 검찰이 원심 재판 과정에서 공개한 당시 촬영 영상을 묘사하며 “피해자 대부분이 줄지어 총을 맞았고, 시체가 무더기로 버려졌다”고 전했다. 
 
보스니아의 이슬람 여성이 믈라디치의 최종 판결 소식을 듣고 눈물을 흘리는 모습. 로이터=연합뉴스

보스니아의 이슬람 여성이 믈라디치의 최종 판결 소식을 듣고 눈물을 흘리는 모습. 로이터=연합뉴스

 
이외에도 보스니아의 수도 사라예보를 포위하고 전기·수도를 차단한 채 폭격을 가해 수천 명이 사망하는 일도 벌어졌다. 수많은 인명피해를 낸 보스니아 내전은 95년 말 미국과 유럽연합(EU), 러시아 등이 참여한 ‘데이튼 평화협상’이 체결되고서야 끝났다.

 
믈라디치는 내전이 끝난 뒤 곧바로 재판에 넘겨졌지만 16년 동안 도피생활을 했다. 지난 2011년 세르비아 북부의 한 사촌의 집에서 체포됐고, 이후 UN 산하 국제 유고전범재판소(ICTY) 등에서 재판을 받아왔다. 워싱턴포스트(WP)에 따르면, 믈라디치의 상관이자 내전 당시 대통령직을 맡았던 라도반 카라지치(76)도 종신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이다.

 
보스니아 내전 당시 믈라디치의 상관이자 전직 대통령직을 지낸 라도반 카라지치도 종신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이다. AFP=연합뉴스

보스니아 내전 당시 믈라디치의 상관이자 전직 대통령직을 지낸 라도반 카라지치도 종신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이다. AFP=연합뉴스

 
WP는 믈라디치를 생포해 기소한 세르게 브라마르츠 검사를 인용해 “그의 이름은 역사상 가장 야만적인 인물 목록에 등재돼야 한다”고 전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도 “전쟁 범죄를 저지른 자들에게 책임을 물게 하는 역사적 판단”이라는 성명을 냈다.

 
김선미 기자 calli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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