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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추행뒤 두달 휴가, 집에 온건 10여일…부대서 회유당해"

중앙일보 2021.06.09 09:31
경기도의회 여성의원협의회 의원들이 7일 오후 경기도 성남시 국군수도병원에 마련된 공군 성추행 피해 부사관 이모 중사의 분향소를 찾아 조문을 하고 있다. 뉴스1

경기도의회 여성의원협의회 의원들이 7일 오후 경기도 성남시 국군수도병원에 마련된 공군 성추행 피해 부사관 이모 중사의 분향소를 찾아 조문을 하고 있다. 뉴스1

성추행 피해를 당한 뒤 극단적 선택을 한 여군 부사관 이모 중사에 대해 공군이 사건 발생 직후 청원휴가로 피해자와 가해자를 분리조치 했다고 밝혔으나 사실이 아니라는 유족의 증언이 공개됐다. 특히 이 과정에서 대대장 및 노모 준위의 조직적인 사건 은폐‧무마 시도도 이뤄졌던 것으로 밝혀졌다.
 
9일 국회 국방위원회 소속 이채익 국민의힘 의원실에 따르면 공군은 이 중사의 성추행 신고 다음 날인 3월 4일부터 5월 2일까지 두 달간의 청원휴가로 피해자와 가해자 간 즉각 분리를 조치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유족 측은 이 이원에게 “3월 4일 서산에 내려가 부대 인근에서 대대장과 노 준위를 만났다”며 “당시 대대장이 부대에서 머무르는 것이 좋을 것 같다고 권유해 고인을 놔두고 왔다”고 말했다. 대대장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때문에 수도권은 위험한 데다 앞으로 조사 및 피해상담, 국선변호인의 조력도 받아야 한다며 설득했고, 철저한 수사와 피해자 보호를 약속하던 대대장을 믿었다는 게 유족 측의 설명이다.
 
특히 유족 측은 “청원 휴가받은 두 달 중 고인이 집에 온 건 10여일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며 “군이 분리 조치를 제대로 했다고 밝혔지만,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고인은 사실상 부대 내에 머무르면서 은폐 및 무마, 회유 등 2차 피해에 방치된 상황이었다”고 말했다.  
 
더구나 대대장과 노 준위는 당초 민간 변호사 선임을 계획하던 유족 측에 “가해자가 혐의를 시인했고 증거도 있어 처벌이 확실하니 지금부터 쓸 필요 없다”며 “국선변호인을 선임했다가 향후 검찰 송치 또는 재판 단계에서 민간으로 쓰는 것이 좋을 것 같다”고 조언했다. 앞서 유족 측은 초기 국선변호사로 선임된 뒤 면담을 한차례도 하지 않는 등 국선변호사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하지 않았다며 국방부 검찰단에 고소장을 제출한 바 있다.
 
대대장과 노 준위 측은 이 중사 부모를 만난 자리에서 “이런 일은 사단장까지 알 필요 없는 사항”이라며 부대 측의 은폐 사실을 직접 밝히기도 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의원실은 또 사건 무마 및 은폐 의혹을 받는 노 준위가 군사경찰 수사 단계에서 아예 제외됐던 사실을 확인했다.  
 
이 중사는 성추행 사건 다음 날 오전 회식 자리를 주최한 노 모 상사에게 최초 신고했고, 이후 노 상사가 레이더 반장인 노 준위에게 이 사실을 보고했다. 그러나 노 준위는 곧바로 신고 사실을 대대장에게 알리지 않았다. 그는 숙소에 대기 중이던 이 중사를 불러내 저녁 식사를 함께하면서 “살다 보면 많이 겪는 일”이라며 무마를 시도하다가 이 중사의 강한 항의에 이날 오후 9시 50분쯤이 돼서야 대대장에게 보고했다. 이후 대대장은 10시 13분쯤 군사경찰 대대장에게 신고했다.  
 
이후 군사경찰은 피해자와 가해자, 노 상사 등 성추행 사건 당일 저녁 식사를 함께했던 4명을 조사하면서 노 준위의 늑장 보고 사실도 확인했지만 노 준위를 상대로 별도의 조사는 하지 않았던 것으로 밝혀졌다.  
 
이 의원은 “사건 초기 단계부터 부대 측은 이 중사의 성추행 피해 사건을 제대로 수사하고 피해자를 보고하기보다는 사건을 축소하는 데 집중했다”고 지적했다.  
 
군은 이 중사의 부대출입 기록 등 사실관계 파악을 위한 국회의 요구자료에 대해 수사 중인 사안이라거나 개인정보에 해당한다는 이유로 제출을 거부하고 있다. 이 의원은 “부대 측이 사건 초기부터 고인을 관심병사 다루듯 영내에 근신 상태로 가둬둔 것”이라며 “국방부가 국회를 비롯한 유가족 측에 자료 제출을 거부하는 것 또한 또 다른 은폐 행위와 다름없다”고 비판했다.  
 
한편 국방부 검찰단과 조사본부는 지난 1일 공군으로부터 사건을 이관받은 뒤 공군본부 검찰부를 비롯해 공군 제20전투비행단 군검찰 등을 압수수색하고 있다.  
 
검찰단 관계자는 “그간 고인의 억울함을 해소하기 위해 강제추행 및 2차 피해에 대한 수사를 최우선으로 진행했으며 8일에는 사건 은폐‧회유 의혹을 받는 피해자의 상관인 준위, 상사 등 관련자를 소환 조사했다”고 밝혔다. 
 
이가영 기자 lee.gayoung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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