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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국정원 60주년, 정보기관 역할 재정립하자

중앙일보 2021.06.09 00:30 종합 29면 지면보기
라종일 가천대 석좌교수

라종일 가천대 석좌교수

올해 60주년을 맞는 국가정보원(국정원)에 역대 다섯 번째 원훈(院訓)이 생겼다. ‘국가와 국민을 위한 한없는 충성과 헌신’이란 새 원훈은 2018년 7월 국정원을 방문한 문재인 대통령의 발언에서 따왔다고 한다. 1961년 6월 10일 중앙정보부 간판을 달고 출범한 대한민국 정보기관은 그동안 국가안전기획부를 거쳐 지금의 국정원까지 두 차례 이름을 바꿨다. 새 원훈을 돌에 새겨 세우고 새로운 출발을 다짐하는 광경이 이젠 낯설지 않다.
 

정보와 정책을 엄격히 구별하고
북한 대남 의도 정확히 파악해야

국정원의 지난 60년 영욕과 공과를 여기서 새삼 논하지는 않겠다. 단지 임무 수행 중 순직한 정보 요원(IO)을 기리는, 국정원 청사에 설치한 ‘이름 없는 별’ 조형물에 최근 별이 또 하나 추가된 사실을 주목한다. 국정원의 정치적 일탈은 비판받아야겠지만, 가뜩이나 국정원 직원들의 사기가 떨어져 있다는 지금 국익을 위해 음지에서 묵묵히 일해온 정보 요원들의 희생도 60주년을 계기로 한번 기억해주면 어떨까 싶다.
 
60주년 생일을 계기로 국정원은 앞으로 끊임없이 오류를 고쳐가는 개혁을 해나가야 한다. 그 과정에서 한국적인 난제를 반드시 고려할 필요가 있다. 정보의 가장 기초적인 상식은 정책과 정보를 엄격히 구별하는 것이다. 정보와 정책이 혼재되면 정보의 왜곡이 따른다. 말하자면 어떤 정책에 유리한 쪽으로 정보의 수집과 가공이 이뤄지기 쉽다.
 
국정원의 지난 60년 역사에 어두운 면이 있었다면 그 책임의 상당한 부분은 국정원 자체보다 국정원을 정치적인 도구로 이용한 정치권에 있지 않았는지 생각해 봐야 한다. 정권이 바뀌면 으레 국정원장은 물론이고, 국정원 조직을 크게 바꾸고, 정보 판단 방향도 대폭 바꾸는 것이 상례가 아니었는가. 이것을 방지할 최소한의 대책인 원장 임기제는 수많은 개혁과 약속에도 아직 실현되지 않고 있다.
 
그런 시스템을 갖추지 않고 대신 국정원의 대공 수사권을 폐지해 경찰에 이관하는 식의 개혁을 추진했다. 축적된 경험과 전문 지식 외에도 국제적인 교류와 협력이 필요한 간첩 수사는 정보기관이 맡아야지, 버젓이 공개된 상태에서 직무를 수행하는 경찰에 이관하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국내외가 구분 없는 전방위 정보전쟁 시대에 간첩 수사는 단순히 남북 문제가 아니다. 미국 정보기관이 동맹국인 유럽의 주요 국가 정치인들과 고위 당국자를 비밀리에 감청했다는 외신을 보면 정상적인 국가들과의 관계에서도 간첩 수사는 중요한 문제다.
 
북한은 오랫동안 국정원과 국가보안법 폐지를 주장해 왔다. 김정은 위원장의 이복형인 김정남 암살 사건에서 볼 수 있듯이 북한은 대외 공작 능력이 뛰어난 만큼 이 분야의 활동에 주력해 왔다.  평양의 입장에서 국정원과 국가보안법이 자신들의 대남 공작에 장애가 되는 것으로 생각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지난 1월에 열린 노동당 8차 당 대회를 앞두고 지난해 12월 북한 문제 전문가들 사이에서 흥미로운 전망이 회자했다. 북한이 핵무장 자신감을 근거로 대남 적화전략 등 체제 목표를 ‘분식(粉飾)’하며 용어 사용에 탄력성을 보일 수 있다는 것이었다. 북한 문제 전문가들은 이것이 북한의 용어 혼란 전술이자 국내 친북 세력의 활동 공간을 확대해 주기 위한 의도라고 지적한다. 최근 북한 노동당 규약의 일부 문구 삭제와 수정을 놓고 과도한 희망을 피력하는 움직임이 실제 벌어지고 있다.
 
물론 남북 평화·화해·교류·협력에는 이견이 없다. 그러나 희망과 함께 엄중한 현실을 바로 인식해야 한다. 신건(1941~2015) 전 국정원장의 말씀으로 글을 끝내려 한다. “햇볕 정책의 성공을 위해서 간첩을 색출해야 한다. 북한이 대남 공작으로 목표를 달성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아야 화해와 교류 협력이 가능할 것이기 때문이다.”
 
라종일 가천대 석좌교수
 
※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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