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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지사지(歷知思志)] 황산벌

중앙일보 2021.06.09 00:25 종합 31면 지면보기
유성운 문화팀 기자

유성운 문화팀 기자

영화 ‘황산벌’을 보러 갔을 때다. 백미는 사투리라고 해서 기대가 컸다. 그런데 웬걸. 김유신은 영남, 계백은 호남 사투리를 걸쭉하게 구사했다. 기대가 와르르 무너졌다. 문제는 계백. 왜? 백제는 서울-공주-부여로 천도했을 뿐 수도가 금강 이남에 있었던 적은 없다. 황산벌 전투 때도 수도는 부여였다. 그러니까 ‘황산벌’의 계백과 백제 사람들은 충청도 사투리로 말하든지, 백번 양보해도 서울말을 써야 했다. 영화를 본 뒤 친구에게 열변을 토했더니 첫 반응은 “아, 부여가 충청도야?”였고, “재밌으면 됐지, 충청도 출신이라고 오버한다”는 핀잔이 돌아왔다.
 
역지사지 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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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에서 서울 친구들을 만나보니 지방은 그저 ‘시골’일뿐이었고, 부정확한 인식을 접하면서 당혹감을 느낀 적도 적잖았다. ‘황산벌’을 만든 서울 출신 이준익 감독도 은연중 ‘백제 수도는 전라도’라고 생각했던 것은 아닐까.
 
대중문화에서 지방은 서울의 인식을 기준으로 다뤄지기 일쑤다. 정작 해당 지역에선 ‘낯선 곳’이 되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KBS 월화드라마 ‘오월의 청춘’의 시도는 반갑게 느껴진다. 1980년 5월 광주가 배경인 이 작품은 출연진 모두 호남 사투리로 말한다. 첫 화를 본 뒤 광주 지인에게 물어보니 “과장된 사투리가 안 들려서 좋다”고 했다. 덕분에 드라마 속 인물들이 주고받는 대화를 들으며 ‘당시 광주 분위기는 이렇지 않았을까’라고 상상하곤 한다. 주연 배우들이 서울말을 썼던 영화 ‘화려한 휴가’에서는 느낄 수 없었던 경험이다. 이런 작품을 더 많이 보고 싶다.
 
유성운 문화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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