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역사 속에 만일이란 있을 수 없다"…이한열 열사 고교 시절 일기 등 공개

중앙일보 2021.06.08 16:53
이한열 열사의 고교시절 일기 'My life'(1982.12.20-1983.02.07)(왼쪽). 1984년 새마을 수련회 참가 당시 부모님께 쓴 편지. [국가기록원 제공]

이한열 열사의 고교시절 일기 'My life'(1982.12.20-1983.02.07)(왼쪽). 1984년 새마을 수련회 참가 당시 부모님께 쓴 편지. [국가기록원 제공]

"나는 우리 선조들이 당한 수모를 이를 갈며 보았다. 더욱더 힘을 길러 강국이 되어야겠다는 굳은 결의가 나의 가슴을 스쳐 갔다. 역사 속에 만일이란 있을 수 없다." (이한열 열사의 1982년 12월 26일 일기)

 
1987년 민주화 시위과정에서 경찰이 쏜 최루탄에 맞아 숨진 이한열 열사의 생애 기록이 공개됐다. 이 열사의 죽음은 6·10 민주항쟁의 도화선이 됐다.
 
행정안전부 국가기록원은 8일 이한열 열사의 생애 기록 38건을 복원해 공개했다. 복원된 기록은 이한열기념사업회가 소장한 이한열 열사의 유품으로, 고교생 시절의 기록과 압수수색 영장과 부검 결과 등 1987년 6월 당시 항쟁과 관련된 기록들이다.
 
지난해 5월 이한열기념사업회에서 국가기록원에 복원 지원을 요청했고, 국가기록원은 올해 2월 중순부터 약 3개월에 걸쳐 복원 작업을 해왔다.  
 
복원 요청 당시 기록들은 재질 변색, 오염, 찢김 등 물리적 손상이 있었다. 또 기록물 보존을 위한 탈산처리 후 백화현상으로 가독성이 떨어진 상태였다. 국가기록원은 기록물의 훼손 상태를 정밀진단해서 클리닝과 오염제거, 결실부 보강, 중성화 처리를 통해 원형 그대로 복원했다.
 
특히 이한열 열사의 일기 '마이 라이프(My Life)', 고교생특별수련기, 어머니 배은심 여사의 글 등이 복원을 거쳐 온라인을 통해 처음 공개됐다. 국가기록원은 이들 개인 기록물이 기념사업회의 전시를 통해 공개된 적은 있으나, 온라인을 통해 공개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설명했다.
 

"나는 우리 선조들이 당한 수모를 이를 갈며 보았다. 더욱더 힘을 길러 강국이 되어야 겠다는 굳은 결의가 나의 가슴을 스쳐갔다…역사속에 만일이란 있을 수 없다." (이한열 열사의 1982.12.26 일기)

 

"17세의 이 나이에 나는 과연 무엇을 남겼는가? 오늘은 한 해를 보내는 기분이 다른 때와는 전혀 다른 생각이 든다. 올해는 무엇보다도 정신적 바램이 컸던 해라고 본다. 나의 생각 나의 사상은 점점 어떤 확고한 가치관을 통해서 한발 한발 나아가는 듯한 기분이 든다." (이한열 열사의 1982.12.31 일기)

 

"오후에는 ‘도산사상’이란 책을 읽었다. 우리 민족의 선각자인 안창호 선생의 사상을 잠시나마 엿볼 수 있었다. “성실”이란 두 글자가 내 마음을 몹시 흥분하게 했다. ‘성은 하늘의 도리요, 성(誠)하려고 노력하는 것은 인간의 도리라’그렇다. 인간은 모든 일에 완전할 수 없다. 인간의 참 모습은 최선을 다하는 것 그리고 또 한층 노력하는 것, 바로 그것이 우리들이다." (이한열 열사의 1983.01.03 일기)

 
이번 복원물 중에는 이한열 열사 어머니의 애끓는 심정을 알 수 있는 기록도 있다. '1987년 6월 9일 5시 5분경'으로 시작하는 어머니의 글에서는 이한열 열사가 위독하다는 사실을 전달받은 순간부터 중환자실에서 임종을 맞이하기까지 겪었던 사건과 감정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이한열 열사 어머니 배은심 여사의 글(1987. 6.9. 5시 5분경). [국가기록원 제공]

이한열 열사 어머니 배은심 여사의 글(1987. 6.9. 5시 5분경). [국가기록원 제공]

 

"서울에서 한열이가 위독하다고 전화를 받고, 엄마 큰일났어, 왜그래 하니까, 한열이가 위독하대, 무어가 위독해, 한열이 학교에서 전화가 왔어요, 나는 그때 하늘이 팽 돌면서 앞이 보이지를 않으면서 그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우리는 떨리는 걸음으로 중환자실 문으로 들어갔다. 이 사람이 한열이래, 우리 한열이래. 왜 이래요? 한열이가 왜 저래요?"

"에라 이놈의 자식아… 너가 이렇게 될지 누가 알아. 이렇게 될 줄 알았다면 서울로 대학을 보내지나 말 것을. 서울로만 가면 좋을 줄 알고 서울로 유학을 보내 놓니 살아서 천리길을 죽어서 천리길로 전라남도 광주 땅 망월동으로 오다니 에라 이놈의 자식아."

 
아울러 이한열 열사 사망 이후의 '압수·수색 검증영장'과 '부검 결과 이물질 규명 중간보고' 기록도 포함돼 있다.
 
'부검 결과 이물질 규명 중간보고'는 이한열 열사의 당시 주치의가 부검 과정을 수기로 남긴 1페이지 기록으로, 주치의는 이한열 열사의 머릿속에서 발견된 이물질을 분석한 결과, 직접적 사인이 '최루탄 피격'임을 밝히고 있다.
 
이밖에 6월 항쟁의 현장이 담겨있는 사진도 대거 복원됐다. 명동성당 시위 현장, 이한열 열사 영결식 때 이애주 선생의 살풀이 춤, 영결식에 참여한 연세대 백양로 인파 등의 사진이 복원됐다.  
 
당시 '민주국민장 실황'이 녹음된 오디오 테이프도 복원됐다. 이 오디오 파일에는 1987년 7월 9일 거행된 이한열 열사의 영결식에서의 문익환 목사의 추도사와 이한열 열사 어머니의 오열하는 음성 등이 담겼다.
 
이경란 이한열기념사업회 관장은 "이한열의 기록은 1980년대 사회 운동에 나섰던 학생들이 무엇을 고민하고 행동으로 나서게 되었는지 보여준다"며 "후대의 사람들이 이 기록을 통해 그 시대와 생생하게 만나게 됐다"고 말했다.
 
곽정 국가기록원 복원관리과장은 "이한열 열사의 생애 기록과 6월 항쟁 기록은 80년대 시대상과 민주주의 역사를 대변하는 중요한 현대사 기록이며 필사본이자 유일본으로 그 사료적 가치도 매우 높다"고 밝혔다.
 
이번에 복원된 기록물은 국가기록원 홈페이지(http://www.archives.go.kr)에서 원문을 볼 수 있다. 향후 이한열기념사업회(http://www.Ieememorial.or.kr), e-뮤지엄(http://www.emuseum.go.kr)에서도 공개될 예정이다.
 
정혜정 기자 jeong.hyejeong@joongang.co.kr
공유하기

중앙일보 뉴스레터를 신청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