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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도 머리 숙이는 곳, 제가 53년 이발사 이종수입니다[인생 사진 찍어드립니다]

중앙일보 2021.06.08 06:00
거울마다 이종수 이발사가 맺히게끔 사진 찍었습니다. 어느 공간, 어느 물건 하나하나가 다 그의 분신이라 여겨졌기 때문입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거울마다 이종수 이발사가 맺히게끔 사진 찍었습니다. 어느 공간, 어느 물건 하나하나가 다 그의 분신이라 여겨졌기 때문입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아버지께 의미 있는 사진 한장 남겨드리고 싶어,

‘인생 사진 찍어드립니다’에 응모합니다.
 
저희 아버지는 여든을 바라보는 이발사입니다.
경상북도 영주시의 오래된 이발관,  
‘영광이발관’이 아버지께서 운영하는 이발관입니다.  
 
듣기로는 1930년대부터 이발소가 있던 자리라고 합니다.  
아버지는 1970년대에 이 이발관을 인수해서,
50년이 넘도록 한 자리에서 일했습니다.
 
아버지는 전쟁 중에 태어나 
부모님의 도움도 받지 못하고  
혼자 힘으로 자라셨습니다.  
 
어린아이였을 때부터 두부 장사, 신문 배달을 하며  
먹고살기 위해 일하셨고요.
 
더구나 남들은 중학교에 다닐 10대 시절에  
이발기술을 배우셨다고 합니다.  
이런 인생을 사신 터라 아버지에게
이 이발관은 삶 그 자체입니다.
 
한때는 명절이면 밥 먹을 시간도 없이 
바쁘셨다고 하는데,  
이제는 수십 년 단골손님들만 간간이 찾아옵니다.  
 
아버지께서 손을 놓으시면  
아버지의 분신 같은 이 이발관도 사라지려나 하던 때,  
이발관이 국가 등록문화재로 지정되었습니다.  
 
1970년대부터 2020년대 물건까지 뒤섞여 있으니
최근에는 가끔 오래된 풍경을 찾는  
젊은 손님들이 찾아오기도 한답니다.  
 
저희 아버지의 인생을 조금이나마  
세상이 알아주는 것처럼 느껴져서 기쁘기도 합니다.  
고단했던 인생에 자부심도 느끼시는 것 같고요.  
 
아들인 저에게도 이 이발관은 특별한 곳입니다.
80년대에 이곳은 저에게 초등학교 통학 길이었고,  
만화방이었고, 피서지였습니다.  
 
매일 바로 옆 중학교에서 온  
학생 손님들로 가득했던 기억이 납니다.  
 
이발소 바닥에 흩어진 머리카락을  
빗자루로 쓸어 담는 꼬마를 신통방통하다는 듯 쳐다보던,  
이제는 60을 바라볼 그때의 중학생 ‘형아’들.  
아마 머리가 길다고 선생님에게 잡혀 온 게 아닐까요?
 
저는 대학 잘 나와서 큰 직장에 다니다가
별안간 적성에 안 맞는다며 사표 쓰고,  
자그마한 출판사에 취직한,  
게다가 장가도 안 간 걱정거리 아들입니다.
 
대기업 다니다가 별안간 사표 쓰고,  자그마한 출판사에 취직한 아들에게 아버지는 ″네가 행복하다면 잘했다″고 했답니다. 둘은 그렇게 늘 서로를 바라보고 있는 겁니다. 김경록 기자

대기업 다니다가 별안간 사표 쓰고, 자그마한 출판사에 취직한 아들에게 아버지는 ″네가 행복하다면 잘했다″고 했답니다. 둘은 그렇게 늘 서로를 바라보고 있는 겁니다. 김경록 기자

 
그 걱정거리 아들에게도 세상 그 누구보다 특별한 아버지,
이종수 이발사의 삶을  
인생 사진으로 남겨 주실 수 있을까요?
아들 이동현 올림
 

 
1930년대 국제이발관으로 시작, 시온이발관을 거쳐 현재 이종수 이발사가 1970년부터 영광이발관으로 간판을 내걸었습니다. 한 장소에서 80년 동안 같은 업종으로 영업한 생활사적 가치를 인정받아 영광이발관은 2018년 국가 등록문화재 제720-4호로 지정되었습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1930년대 국제이발관으로 시작, 시온이발관을 거쳐 현재 이종수 이발사가 1970년부터 영광이발관으로 간판을 내걸었습니다. 한 장소에서 80년 동안 같은 업종으로 영업한 생활사적 가치를 인정받아 영광이발관은 2018년 국가 등록문화재 제720-4호로 지정되었습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이발관으로 들어서니 아들의 표현대로  

1970년대부터 2020년대 물건까지 뒤섞여 있습니다.
다섯 번은 족히 변한 
강산의 시간을 품은 이발관인 겁니다.
 
이종수 이발사가 100년은 족히 넘었다는 
바리깡을 꺼내 보이며 말했습니다.
“이발 기술을 처음 배울 때 
그대로의 이발관을 재현하고 싶은 게 꿈입니다.”
 
사실 이발소는 사양산업입니다.
그가 말한 요즘 이발소의 현실은 이러합니다.
 
“들어오는 손님은 없고, 나가는 손님만 있어요.”
 
이발소를 찾는 새로운 손님은 없고,  
기존 단골은 연로하여 
세상을 떠나는 현실을 이리 말한 겁니다.
 
그런데 이러한 현실에 
새로운 꿈을 말하니 의아했습니다.
그가 새로운 꿈을 꾸는 이유는 대체 뭘까요?
 
“이 동네서 태어나서 53년 영업했으니  
어떤 사람이 나더러 ‘사람이 문화재’라고 하더이다.  
하하 농담입니다.
처음 문화재로 지정되었을 때,
내 손때 묻은 가게가 오래 남을 테니 좋아했습니다.
하지만 내가 없으면 박제된 문화재가 되지 않겠소.
사실 볼거리, 이야깃거리가 있어야 
살아있는 문화재가 되죠.
 
관광객이 가끔 찾아옵니다.
그 사람들에게 커피라도 한잔내어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려주면 좋아합디다.
이를테면 이런 이야기죠.
‘대통령도 머리를 숙여야 하는 곳,  
나폴레옹도 목을 내놓아야 하는 곳이 이발소다’는 이야기죠.
이런 이야기와 볼거리가 있는,  
살아있는 옛날 이발관을 재현하고 싶은 겁니다.”
 
이종수 이발사가 옛 이발관 재현을 위해 간직하고 있는 제품들.

이종수 이발사가 옛 이발관 재현을 위해 간직하고 있는 제품들.

 
그러면서 그가 주섬주섬 뭔가를 자꾸 꺼내 놓았습니다.
양귀비표 염색약, 가루 염색약, 뚜껑에 학이 그려진 포마드,
50년 된 나무 빗, 면도용 거품통, ABC 포마드 등을 꺼내
저더러 사진을 찍어 달라고 했습니다.
 
사진 액자로 만들어 구경 온 관광객에게 
보여 주려는 용도였습니다.
 
커피라도 한잔내어 주고,
옛이야기라도 들려주며,
옛 물건이라도 보여 주는 
오래전 이발관 재현을 꿈꾸는 이종수 이발사,
‘사람이 문화재’라는 말 그대로였습니다.
 
권혁재·김경록 기자
중앙일보 새 디지털 서비스 ‘인생 사진 찍어드립니다’
 중앙일보 새 디지털 서비스 ‘인생 사진 찍어드립니다’      
사연을 5월에 이어서  
6월에도 받습니다.    
 
어떠한 사연도 좋습니다.      
 
가족사진 한장 없는 가족,    
오랜 우정을 쌓은 친구,      
늘 동고동락하는 동료,      
오래 간직하고픈 연인 등      
기억하고 싶은 사연을      
꼭 연락처와 함께 보내주세요.      
 
채택된 사연은 중앙일보 스튜디오로 모시겠습니다.    
기억해야 할 곳이 특별한 곳이면      
중앙일보 권혁재 사진전문기자와  
포토팀 사진기자들이 어디든 갑니다.      
 
기록한 인생 사진은 액자로 만들어 선물해드립니다.      
아울러 사연과 사진을 중앙일보 사이트로 소개해 드립니다.    
▶사연 보낼 곳: photostory@joongang.co.kr    
▶4차 마감: 6월 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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