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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 이름 알고보니 '英여왕 아명'···해리, 할머니와 화해 메시지?

중앙일보 2021.06.07 16:05
남편을 보낸 아픔을 겪은 엘리자베스 2세. 증손녀 탄생 소식에 이렇게 웃고 있을까. AFP=연합뉴스

남편을 보낸 아픔을 겪은 엘리자베스 2세. 증손녀 탄생 소식에 이렇게 웃고 있을까. AFP=연합뉴스

“할머니, 선물로 주신 인형의 집이 참 예뻐요. 식당이랑 복도 부분의 포장만 풀어봤는데도 벌써 맘에 쏙 들어요. 감사합니다. 사랑을 담아, 릴리벳 드림.”  
 
영국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아직 열 살도 채 되지 않았던 어린 시절, 할머니에게 보낸 감사 카드다. 1926년생으로 올해 95세인 여왕의 어린 시절 애칭이었던 릴리벳이 지난 6일(현지시간) 되살아났다. 왕실의 반항아 이미지를 굳힌 친손자 해리 왕자 부부가 둘째 아이의 출산 소식을 전하면서다. 이들은 공식 성명에서 “지난 4일 오전 11시40분, 여자아이가 건강히 태어났고, 산모와 아이 모두 건강히 집에서 안정을 취하고 있다”며 “아이의 이름은 릴리벳 ‘릴리’ 다이애너 마운트배튼-윈저”라고 발표했다.  
 
1947년 당시, 엘리자베스 2세 여왕(맨 왼쪽)이 아직 '릴리벳'으로 통했던 시절. 부모 자매 및 남편과 함께 버킹검 궁에서 손을 흔들고 있다. 그의 결혼발표 자리였다. AP=연합뉴스

1947년 당시, 엘리자베스 2세 여왕(맨 왼쪽)이 아직 '릴리벳'으로 통했던 시절. 부모 자매 및 남편과 함께 버킹검 궁에서 손을 흔들고 있다. 그의 결혼발표 자리였다. AP=연합뉴스

 
이 작명엔 해리 왕자와 부인 메건 마클, 즉 서식스 공작부인의 메시지가 담겨있다. 이번엔 왕실을 향한 비판이 아니라, 화해의 제스처로 해석된다. 엘리자베스 2세의 어린 시절 애칭인 릴리벳을 자신들의 딸 이름으로 사용했기 때문이다. 릴리벳은 엘리자베스 2세에겐 각별한 애칭이다. 여왕이 막 말을 배우기 시작하던 시절, 자신의 이름을 발음하기 어려워하면서 스스로를 ‘릴리벳’이라고 불렀다. 이후 어린 시절뿐 아니라, 자신의 인척들에게 애정을 표현하기 위해선 때로 릴리벳이라는 이름으로 서명을 하곤 했다고 패션지 마리클레르가 7일 전했다. 뉴욕타임스(NYT) 역시 이날 “‘릴리벳’이라는 이름을 택한 것엔 큰 함의가 있어보인다”고 풀이했다.  
 
‘릴리벳’이라는 이름을 쓸 수 있는 사람은 몇 안 됐다.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아버지 조지 6세와, 성년이 되고 즉위한 뒤엔 남편 고(故) 필립 공 정도였다고 한다. 아버지 조지 6세는 엘리자베스 2세가 어린 시절 종종 “릴리벳은 나의 자랑이고, (둘째 딸) 마거릿은 나의 기쁨”이라고 말하곤 했다. 더 선 등 일부 영국 매체들은 “필립 공 장례식에서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릴리벳’이란 이름의 친필 서명 카드를 남겼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영국 공영방송 BBC는 그러나 이후 그런 사실이 없다고 보도했다. 적어도 필립공이 숨을 거두면서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을 ‘릴리벳’이라고 부를 수 있는 인물은 이제 없는 셈이다. 그런 상황에서 갓 세상에 나온 증손녀가 ‘릴리벳’이라는 이름을 갖게 된 건 여왕에게도 각별할 수밖에 없다.  
 
해리 왕자와 메건 마클 부부의 첫 아이인 아들 아치의 출생 직후. 2019년이었다. AFP=연합뉴스

해리 왕자와 메건 마클 부부의 첫 아이인 아들 아치의 출생 직후. 2019년이었다. AFP=연합뉴스

 
해리 왕자 부부는 지난해 왕실로부터의 독립 선언에 이어 미국으로 이주하고, 왕실을 비판하는 폭로를 해왔다. 지난 3월 마클이 오프라 윈프리와의 인터뷰에서 “왕실에서 인종차별을 당했다”는 취지의 폭로를 하며 “더는 살아있고 싶지 않았다”는 극단적 선택에 대한 충동 사실까지 밝혔다. 이후 해리 왕자 부부와 영국 왕실의 관계는 회복 불가능에 가까운 것으로 보였다. 해리 왕자 부부의 이번 작명은 따라서 의미심장한 화해 제스처로도 해석된다. 해리 왕자 부부는 ‘릴리벳’을 줄여 ‘릴리’라는 애칭으로 주로 부를 것으로 보인다. 첫 아이인 아들은 아치(Archie)라고 이름 지었다.  
 
해리 왕자 부부는 딸 아이 이름에 릴리벳과 함께 고(故) 다이애너 왕세자빈의 이름도 넣었다. 갓 태어난 이 공주님은 여왕과 다이애너의 이름을 함께 물려받은 셈이다.   
 
오프라 윈프리에게 왕실의 인종차별 주장 등을 하고 있는 해리 왕자 부부. AP=연합뉴스

오프라 윈프리에게 왕실의 인종차별 주장 등을 하고 있는 해리 왕자 부부. AP=연합뉴스

 
영국 왕실은 한국 시각 7일 오후 현재까지 공식 입장을 내지 않고 있다. 그러나 영미권 매체들은 “영국 왕실도 기뻐할 것”이라는 전망을 한목소리로 내고 있다.  
 
전수진 기자 chun.su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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