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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폭에 숨진 8살···끝까지 모르척한 美 학교, 33억 물어낸다

중앙일보 2021.06.07 05:00
미국 오하이오주 신시내티의 코넬리아 레이놀즈(32)는 4년 전 8살짜리 아들 카브리엘 타예를 잃었다. 타예는 2017년 1월 26일 자신의 방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경찰 조사 결과 타예의 학교 폭력 피해 정황이 곳곳에서 드러났다. 모두 학교 측이 모르쇠로 일관하던 일들이었다. 타예의 학교 폭력 피해는 그렇게 4개월이 지나서야 수면 위로 떠올랐다.
 
미국 오하이오주 신시내티 공립초등학교에서 극심한 학교 폭력을 이기지 못하고 2017년 1월 스스로 목숨을 끊은 가브리엘 타예(당시 8살). [AP=연합뉴스]

미국 오하이오주 신시내티 공립초등학교에서 극심한 학교 폭력을 이기지 못하고 2017년 1월 스스로 목숨을 끊은 가브리엘 타예(당시 8살). [AP=연합뉴스]

미 오하이오주를 떠들썩하게 했던 ‘초등생 사망 사건’이 4년 만에 매듭지어졌다. 5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오하이오주 교육구는 사건이 발생한 신시내티 공립 카슨 초등학교가 타예의 가족에게 300만 달러(약 33억원)를 배상하고 학교 내 괴롭힘 방지 시스템을 개선하는 데 합의했다고 발표했다. 
 
카슨 초등학교 교육위원회(CPS)가 학부모 측과 합의한 내용에는 ▶학교폭력 연루 학생의 반복된 위치 추적 ▶학교 간호사의 학교폭력 보고 의무 강화 ▶괴롭힘 방지 모델 개선 ▶교사 및 교직원 학교폭력 예방 교육 실시 등이 담겼다.
 
이번 합의는 지난해 12월 연방 법원이 학교 관계자들에게 아들의 사망 책임을 물은 타예 부모의 손을 들어주면서 마무리됐다.
 
보도에 따르면 타예는 사망 3개월 전인 2016년 10월부터 학교 폭력에 시달렸다. 학생들은 이유 없이 타예를 따돌리고, 불러내 때렸다. 잦은 구타로 타예의 몸에는 피멍과 상처가 생겼고, 윗니 두 개가 부러지기까지 했다.
 
당시 엄마 레이놀즈는 수상한 낌새를 눈치채고 학교를 찾아가 문제를 제기했다. 그때마다 학교는 “단순한 말다툼에서 비롯된 싸움이고 원만하게 화해했다”며 문제를 봉합했다.  
 
2017년 1월 24일 가브리엘 타예(당시 8살)가 신시내티의 칼슨 초등학교 화장실에서 친구들의 집단 구타로 실신하자 학생들이 놀라서 뛰어 나오고 있다. [AP=연합뉴스]

2017년 1월 24일 가브리엘 타예(당시 8살)가 신시내티의 칼슨 초등학교 화장실에서 친구들의 집단 구타로 실신하자 학생들이 놀라서 뛰어 나오고 있다. [AP=연합뉴스]

하지만 타예가 숨지기 이틀 전까지 폭행은 계속됐다. 2017년 1월 24일 타예는 학교 화장실에서 집단 구타를 당해 의식을 잃었다. 폭행은 타예가 기절한 뒤에도 7분 동안 계속됐다. 아이들은 쓰러진 타예를 발로 차고 짓밟았다. 
 
이날 타예는 하교 후 복통을 호소했다. 하지만 친구들에게 맞았다는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병원에서 장염 진단을 받고 이틀간 입원한 타예는 26일에서야 다시 학교에 갔다. 타예의 마지막 등교였다.
 
타예의 사망 소식이 전해지자 학교는 술렁였다. 학생과 학부모 사이에서는 타예가 학교 폭력을 당하고 있었다는 소문이 퍼졌다. 
 
타예 가족은 학교 측에 책임을 물었다. 하지만 학교 측은 당시 학교 폭력 신고는 4건밖에 없었고, 모두 해결됐던 일이라며 모르는 일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교내 CCTV 영상은 연방 프라이버시 법을 근거해 공개할 수 없다며 조사에 협조하지 않았다.
 
결국 이 사건은 경찰이 개입하면서 실마리가 풀렸다. 아이가 죽고 4개월 만에 공개된 CCTV 영상에는 타예가 폭행당하는 장면이 모두 담겨 있었다. 화장실 폭행 사건 당시 학교 측은 쓰러진 타예를 발견하고도 911을 부르지 않았던 것으로 확인됐다. 물론 타예 부모에게도 알리지 않았다. 사망 당일 학생들은 타예에게 화장실 물을 받아마시라고 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미 오하이오주 신시내티에 위치한 카슨 공립초등학교. [연합뉴스]

미 오하이오주 신시내티에 위치한 카슨 공립초등학교. [연합뉴스]

학교 측이 학교 폭력 상황을 몰랐다는 사실도 거짓으로 드러났다. 학생들과 교사는 타예가 다른 친구들에게 괴롭힘당하고 위협받는 장면을 여러 번 목격했고, 학교 측에 알렸다고 경찰에 진술했다. 당시 피해자는 타예 외에도 여럿 있었으며, 몇몇은 괴롭힘을 견디지 못하고 전학을 간 것으로 확인됐다. 
 
학부모들은 학교 측이 만연한 폭력을 알고도 구설에 휘말리지 않기 위해 문제를 숨긴 것이라고 비판했다. 레이놀즈는 “타예는 밝고 쾌활한 아이였다. 학교가 아이의 피해 상황을 알려주기만 했어도 아이는 지금 살아있을 것”이라며 학교 관계자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이에 학교 측은 “학생들 간 흔한 다툼으로 알았을 뿐 문제를 외면한 적 없다”고 주장했다. 양측의 법적 다툼은 4년간 이어졌고, 지난해 12월 6차 연방 항소법원이 학교 측의 책임을 인정하며 일단락됐다. 
 
이날 양측이 법원 명령에 따라 배상에 합의하면서 긴 싸움이 끝났다. 타예의 부모는 “타예의 죽음이 헛되지 않은 순간을 기다려왔다”면서 “이번 합의를 통한 학교 개혁이 학교 폭력을 종식할 것”이라고 말했다. 
 
오하이오주 교육구는 이번 합의에 대해 “학교 내 괴롭힘 방지를 위한 관리·교육 과정을 개선해 가고 있다”면서 “왕따·폭력 등 학교 내에서 발생하는 어려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최선의 방안”이라고 밝혔다. 다만 타예 사건과 관련해선 “교사와 교직원은 타예의 비극적 죽음에 책임이 없다고 확신한다”며 법원 판결에 또 한 번 불복 의사를 밝혔다.
 
이민정 기자 lee.minjung2@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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