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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윤·이규원만 빼고…검사사건 400건, 검찰에 떠넘긴 공수처

중앙일보 2021.06.07 05:00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가 판·검사의 고위공직자범죄 사건 등을 검찰이 자체 수사해서 처리하라며 넘긴 사건이 400건을 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중 검찰이 수사를 마친 뒤 공수처에 송치하라는 ‘기소 유보부 이첩’을 요청한 사건은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과 이규원 검사의 직권남용 혐의 1건뿐인 것으로 파악됐다. 공수처가 이제껏 “검사의 범죄혐의에 관해선 전속적 관할권을 갖고 있다”고 주장한 게 무색할 정도다.
 

"'기소 유보부 이첩' 요구도 선택적"

6일 중앙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공수처는 출범 이후 고소·고발 등으로 접수한 현직 판·검사의 고위공직자범죄 사건 등 403건(지난 1일 기준)을 검찰에 ‘단순 이첩’했다. 대부분이 공수처가 자체 접수한 검사와 관련된 고소·고발 사건이라고 한다. 단순 이첩이란 아무런 조건을 달지 않고 사건을 다른 수사기관에 넘기는 걸 의미한다.
 
다른 수사기관이 발견한 검사의 범죄 혐의 사건도 무조건 이첩 받는 공수처(공수처법 25조)가 자체 접수한 사건 대부분을 검찰이 알아서 수사해 기소 여부를 결정하라고 떠넘긴 셈이다.
 
김진욱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장이 지난 4일 오전 경기도 정부과천청사 내 공수처 청사로 출근하고 있다. '기소 유보부 이첩'이라는 새로운 형사법 개념을 제시한 그는 지난 3월 국회에서 "사법부나 헌법재판소에서 적법 여부가 가려질 것"이라고 말했다. 헌재는 지난달 26일 이규원 검사가 검찰의 '유보부 이첩' 거부 및 기소에 대해 제기한 헌법소원을 재판관 전원 일치 의견으로 각하했다. 뉴스1

김진욱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장이 지난 4일 오전 경기도 정부과천청사 내 공수처 청사로 출근하고 있다. '기소 유보부 이첩'이라는 새로운 형사법 개념을 제시한 그는 지난 3월 국회에서 "사법부나 헌법재판소에서 적법 여부가 가려질 것"이라고 말했다. 헌재는 지난달 26일 이규원 검사가 검찰의 '유보부 이첩' 거부 및 기소에 대해 제기한 헌법소원을 재판관 전원 일치 의견으로 각하했다. 뉴스1

 
이는 공수처가 앞서 지난 3월 3일 수원지검으로부터 이첩받은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불법 긴급 출국금지(출금) 관련 사건 중 이성윤 지검장의 수사무마, 이규원 검사의 불법 출금 혐의를 같은 달 12일 재이첩하면서 “수사만 한 뒤 송치하라”고 유보부 이첩을 주장했던 태도와 상반된다. 수원지검은 공수처의 이같은 주장을 거부하고 지난 4월 1일 이 검사를, 지난달 12일 이 지검장을 각각 불구속기소했다.
 
검찰과 공수처는 아직 사건 이첩과 관련한 이견을 해소하지 못하고 있다. 검찰은 “이첩의 대상은 사건이기 때문에 이첩받은 기관은 그 기관의 법적 권한을 행사할 수 있다”고 주장하지만, 공수처는 “검찰이 기소까지 하는 건 현직 검사의 혐의 발견 시 공수처로 사건을 이첩하도록 하고, 공수처에 판·검사 및 경무관 이상 경찰관의 고위공직자범죄에 대한 기소권을 부여한 공수처법 취지에 맞지 않는다”고 반박하고 있다.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이 지난 4일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검 청사에서 퇴근하며 기다리던 취재진을 바라보고 있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는 지난 3월 이 지검장의 직권남용 혐의 사건을 검찰에 재이첩하면서 '기소 유보부 이첩'을 주장해 논란이 일었다. 뉴시스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이 지난 4일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검 청사에서 퇴근하며 기다리던 취재진을 바라보고 있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는 지난 3월 이 지검장의 직권남용 혐의 사건을 검찰에 재이첩하면서 '기소 유보부 이첩'을 주장해 논란이 일었다. 뉴시스

공수처는 최근 이 지검장이 기소된 김 전 차관 불법 출금 수사외압 사건과 관련해 2019년 대검 반부패강력부 소속이던 문홍성 수원지검장(당시 선임연구관), 김형근 서울북부지검 차장검사(당시 수사기획과장), A 검사 등 3명을 공수처로 이첩해달라고 수원지검에 요청하기도 했다. 앞서 수원지검은 지난달 12일 이 지검장을 기소하면서 윤대진 사법연수원 부원장(당시 법무부 검찰국장), 이현철 서울고검 검사(당시 안양지청장), 배용원 전주지검장(당시 안양지청 차장검사)만 공수처로 이첩했다.
 
검찰이 윤 부원장 등의 혐의와 함께 문 지검장 등의 혐의를 발견하고도 공수처로 이첩하지 않았거나, 공수처로 넘어간 윤 부원장 등 사건과 문 지검장 등의 사건이 사실상 중복된다는 게 공수처의 판단으로 보인다. 공수처법 25조 2항은 다른 수사기관이 현직 검사의 고위공직자범죄 혐의를 발견한 경우 공수처로 이첩해야 한다고, 공수처법 24조 1항는 공수처장이 공수처 수사와 중복되는 다른 수사기관의 범죄수사에 대해 이첩을 요청하는 경우 반드시 응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김오수 검찰총장이 후보자 시절이던 지난달 26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열린 인사청문회에 출석해 의원들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김 총장은 당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의 '기소 유보부 이첩' 주장에 대해 "현 법체계와 맞지 않는다"고 말했다. 오종택 기자

김오수 검찰총장이 후보자 시절이던 지난달 26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열린 인사청문회에 출석해 의원들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김 총장은 당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의 '기소 유보부 이첩' 주장에 대해 "현 법체계와 맞지 않는다"고 말했다. 오종택 기자

검찰 안팎에서는 “다수는 단순 이첩하고, 어떤 건 콕 집어 유보부 이첩을 하더니 이번에도 사건을 취사선택해서 이첩을 요청하고 있다”는 반발이 나온다. 현직 검사 사건의 경우 선택적으로 이첩을 요구하는 방식으로 공수처 수사의 공정성 논란을 키운다는 지적이다. 한 법조계 인사는 “의도적으로 사건을 새로 만들어 현행법상 인정되지 않는 유보부 이첩을 편법으로 관철하려는 방법으로 보인다”며 “공수처법 24조 1항의 입법 취지에 반(反)한다”고 말했다.
 
한편 김오수 검찰총장은 오는 8일 김진욱 공수처장을 예방해 상견례를 가질 예정이다. 김 총장은 지난달 26일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공수처의 유보부 이첩 주장에 대해 “이첩이라는 게 새로이 들어온 게 아니고 여태까지 있던 제도를 활용하는 것이라서 그 체계하고 안 맞는 부분이 있다”며 “그 부분은 입법적으로 정리하든지, 앞으로 공수처와 소통해서 해결방안을 찾아보겠다”고 말했다.
 
하준호·강광우 기자 ha.junho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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