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일본의 파우치' 올림픽 재고 발언에…스가 "입 다물게 해" 격노

중앙일보 2021.06.06 16:32
도쿄올림픽 개막이 47일 앞으로 다가왔지만 여전히 올림픽 개최 여부를 둘러싸고 일본 내 갑론을박이 이어지고 있다. 특히 정부의 입장을 대변하는 역할을 해온 코로나19 정부대책분과회의 오미 시게루(尾身茂) 회장이 최근 연이어 올림픽 개최에 제동을 거는 듯한 발언을 내놓으면서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총리를 격노하게 했다고 일본 언론들이 전했다. 
 

오미 코로나 분과회장, 연일 쓴소리
"지금 상황서 올림픽? 보통은 안 해"
FT "스폰서 기업들, 2개월 연기 제안"

지난달 7일 열린 기자회견에서 스가 요시히데 일본 총리(왼쪽)의 옆에서 코로나19 상황을 설명하고 있는 오미 시게루 코로나19 정부대책분과회 회장. [AP=연합뉴스]

지난달 7일 열린 기자회견에서 스가 요시히데 일본 총리(왼쪽)의 옆에서 코로나19 상황을 설명하고 있는 오미 시게루 코로나19 정부대책분과회 회장. [AP=연합뉴스]

오미 회장은 일본을 대표하는 의학박사이자 감염증 전문가로 세계보건기구(WHO) 서태평양지역 사무국장을 지냈다. 미국의 앤서니 파우치 국립알레르기·전염병연구소 소장처럼 일반인들 사이에 가장 널리 알려진 전문가인 그는 코로나19 유행 후 정부 자문기구인 코로나19대책분과회 회장을 맡아왔다. 긴급사태 선언·해제 등 정부의 코로나19 정책을 추인하고, 스가 총리 기자회견에 동석해 전문적인 설명을 맡는 역할도 했다.
 
그랬던 그가 최근 정부의 올림픽 강행에 제동을 거는 발언을 연이어 내놓아 스가 총리를 당황하게 만들었다. 오미 회장은 지난 2일 중의원 후생노동위원회에 출석해 "현재 같은 팬데믹 상황에서 보통이라면 올림픽은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하려면 개최 규모를 가능한 한 작게 하고, 관리 체제를 가능한 강화하는 것이 주최자의 의무"라고 덧붙였다. 
 
이어 "이런 상황에서 도대체 무엇을 위해 (대회를) 하는지 목적이 명확지 않다"며 정부의 소통 부족을 대놓고 비판하기도 했다. 
 
'작심 발언'은 4일에도 이어졌다. 이날 중위원회에서 오미 회장은 "정말 한다면 나는 긴급사태 선언 하에서의 올림픽은 절대로 피할 것"이라면서 "할 것이라면 각오를 가지고 여러 감염대책을 시행해야 한다"고 했다. 정부의 '거리 응원' 방침에 대해서도 "사람들은 밖에 나가 술을 마시고, 어깨를 걸고 응원을 하고 싶어 한다"며 이 행사가 사람들의 이동을 늘려 감염 위험을 높일 것이라고 경고했다. 
 
일본 정부 내에선 이런 발언에 대해 "그가 올림픽 개최 여부를 판단할 입장은 아니다"며 불쾌하다는 반응이 나오고 있다고 지지통신이 5일 전했다. 아사히신문 계열 주간지 '아에라(AERA)'는 4일 온라인판에 "오미 회장의 '모반(謀反)'에 스가 총리가 격노"라는 제목의 기사를 실었다. 
 
이 기사에서 일본 정부 고위관계자는 "(스가 총리는 오미 회장에 대해) 입을 다물게 해라, 자기가 총리라도 된 양 행동한다며 분노하고 있다"면서 "원래 '어용학자'로 옆에 두었던 오미 회장이 반란을 일으켜 적이 됐다는 생각이 강해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분과회 '제언' 막은 정부에 대한 반발?   

오미 회장의 이 같은 '반란'은 그만큼 일본의 코로나19 상황이 심각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5일 일본 전역에서 새로 확인된 코로나19 감염자는 2652명으로 토요일 기준 지난 4월 초 이후 처음 2000명대로 내려갔다. 
 
지난 3일 도쿄 오다이바에 설치된 올림픽 조형물의 모습. 사진 왼쪽 위 '멈춤' 표지판에 함께 찍혀 있다. [AFP=연합뉴스]

지난 3일 도쿄 오다이바에 설치된 올림픽 조형물의 모습. 사진 왼쪽 위 '멈춤' 표지판에 함께 찍혀 있다. [AFP=연합뉴스]

하지만 올림픽 개최도시인 도쿄에서는 이날 주말임에도 436명의 감염자가 나왔으며, 전체의 82.6%가 전파력이 높은 영국발 변이 바이러스 감염자인 것으로 나타났다. 일본 정부는 일본 10개 광역자치단체에 내려진 긴급사태 선언을 오는 20일까지 연장한 상태지만, 오랜 '집콕' 생활에 지친 사람들이 몰려나오면서 재확산 우려도 커지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스가 총리는 올림픽 강행 의사를 굽히지 않고, '관중 있는 경기'에 대한 욕심까지 내비치고 있다. 아에라는 이에 대해 "총리의 머릿속은 도쿄올림픽을 성공시켜 총리 연임을 결정한 후 중의원 선거에서 승리하는 이미지로 가득 차 있다"며 "거기에 아무도 끼어들 수 없다"고 총리 측근 의원의 말을 인용해 보도했다. 
 
실제로 오미 회장이 이끄는 분과회가 감염 상황 단계별 올림픽 개최 여부에 대한 제언을 준비하고 있었으나, "정부가 싫어한다"는 메시지가 전달되며 무산됐다는 폭로가 지난달 31일 마이니치 신문을 통해 나오기도 했다. 
 

후원 기업들 "두 달이라도 미루자"

후원 기업들도 이런 상황에서 대회를 강행하는 데 우려하는 분위기가 감지되고 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4일(현지시간) 더 많은 관중 입장으로 광고 효과가 높아지길 기대하는 도쿄올림픽 후원 기업 일부가 조직위에 올림픽을 9~10월로 연기하자는 내용의 물밑 제안을 했다고 전했다.
 
이들 기업은 올림픽이 9~10월에 열리면, 백신 접종이 진척돼 관중을 많이 받아들일 수 있으며, 날씨도 서늘해져 반대 여론이 줄 것이라는 견해를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조직위는 5일 기업들로부터 이 같은 제안을 받은 적이 없다며 부인했다. 
 
6일 일본 요코하마의 백신 접종센터에서 시민들이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 [AP=연합뉴스]

6일 일본 요코하마의 백신 접종센터에서 시민들이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 [AP=연합뉴스]

 
한편 일본이 현재 속도대로 백신을 접종할 경우, 내년 4월 이전 긴급사태를 3번 더 발령해야 것이라는 연구 결과도 나왔다. 
 
6일 도쿄신문 등에 따르면 '군성오키나와임상연구센터'는 현재처럼 일본 전국에서 하루 44만회씩 백신 접종이 이뤄진다고 가정할 경우, 올해 7월과 10월, 내년 1월에 다시 긴급사태를 선언해야 하는 상황이 올 것으로 전망했다. 하루 감염자 5000명 이상에 긴급사태 발령, 1000명 이하 때 해제를 기준으로 시뮬레이션한 결과다. 
 
연구진은 현재의 두 배인 하루 88만회 접종이 이뤄져도 올림픽이 진행 중인 7월 말엔 다시 감염자가 늘어 긴급사태가 선언될 것이라며 "백신 접종을 더욱 가속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관련기사

 
도쿄=이영희 특파원 misquick@joongang.co.kr
 
◇ 독자 여러분과 함께 만드는 국제뉴스
알고 싶은 국제뉴스가 있으신가요?
알리고 싶은 지구촌 소식이 있으시다고요?
 
중앙일보 국제팀에 보내주시면 저희가 전하겠습니다.
- 참여 : jglobal@joongang.co.kr
공유하기

중앙일보 뉴스레터를 신청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