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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평적 직장문화라더니…스타트업·IT기업의 ‘능력주의 갑질’

중앙일보 2021.06.06 16:22
6일 시민단체 직장갑질119는 지난 1~5월 이메일 제보 중 직장 내 괴롭힘 관련 제보 분석 결과를 공개했다. 뉴스1

6일 시민단체 직장갑질119는 지난 1~5월 이메일 제보 중 직장 내 괴롭힘 관련 제보 분석 결과를 공개했다. 뉴스1

“대표는 스타트업이라서 근로기준법을 위반해도 된다는 식으로 얘기하고 다녔습니다. 스타트업 회사는 이래도 되는 건가요?”

 
스타트업 회사에서 해고를 당한 A씨가 시민단체 ‘직장갑질119’에 제보한 내용이다. 회사 대표에게 2개월 동안 괴롭힘을 당했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A씨는 “오전 8시에 출근해 점심시간도 없이 밤 늦게까지 일하고 휴일에도 출근했다. 그런데 대표는 ‘생산성이 낮아서 야근을 한다’며 모든 직원들이 있는 앞에서 조롱하고 시말서를 쓰게 했다”고 토로했다.
 
스타트업ㆍIT업계의 직장 내 갑질이 수면 위로 떠오르면서 논란이 되고 있다. 지난달 25일 네이버 직원이 ‘업무상 스트레스를 받았다’는 내용이 담긴 메모를 남기고 극단 선택을 하면서 관심이 커졌다. 앞서 지난 2월 직장인 커뮤니티 블라인드에는 한 IT 대기업 직원이 인사 평가에서 비롯된 따돌림에 따라 극단 선택을 하겠다는 글이 올라오기도 했다. 
 
수평적인 조직 문화와 민주적 운영 등으로 ‘꿈의 직장’으로 각광받던 국내 대표 IT 기업들에서 직장 내 갑질 의혹이 잇따라 제기되는 것이다. 일각에선 능력주의의 ‘민낯’이 드러났다는 평이 나온다.
 

“능력주의 대표들, 직원 무시하고 조롱”

6일 직장갑질119는 “스타트업 제보 사례를 살펴보면 능력주의에 빠진 대표들이 적지 않다”며 “자신이 뛰어난 능력을 갖고 있다고 믿고, 능력이 부족한 직원을 무시하고 조롱하고 연봉을 깎고 쫓아내는 일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고 있다”고 밝혔다.
 
직장갑질119에 따르면 지난 1~5월 동안 이메일로 접수된 1014건의 제보 중 직장 내 괴롭힘이 532건으로 52.5%에 달한다. 직장 내 괴롭힘을 유형별로 살펴보면 ▶따돌림ㆍ차별ㆍ보복(54.7%) ▶부당지시(52.3%) ▶폭행ㆍ폭언(51.1%) ▶모욕ㆍ명예훼손(37.8%) 순으로 많았다. 또한 직장 내 괴롭힘을 신고해 본 200명 중 피해자 보호 등 조치 의무가 지켜지지 않았다는 응답이 78명(39%), 신고를 이유로 불리한 처우를 한 경우가 62명(31%)에 달했다.
 
권두섭 직장갑질119 대표는 “스타트업과 IT기업 같은 경우, 밖으로 보여지는 것과는 다르게 기존 전통적 기업보다 개인별 성과를 더 요구한다. 이런 전반적인 조직문화나 경영 방식이 저변에 깔린 문제”라며 “성과에 대한 보상이 강조되고, 결국 능력이 뛰어난 몇몇 소수에만 혜택이 돌아가는 운영 방법보다는 개인 구성원들의 인권을 존중하는 방식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말했다.
 

지시 따라도 돌아온 건 모욕감

스타트업에서는 전공ㆍ담당 외 업무를 지시하는 일이 다반사라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한 스타트업 회사에 프로젝트 매니저로 입사한 B씨는 “전공 분야가 아닌 업무를 시켰으나, 스타트업 특성상 다양한 업무를 할 수 밖에 없다는 걸 알고 있어서 열심히 일했다”며 “그러나 대표는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으면 무조건 화를 내고 소리를 질렀다. 일을 못한다며 무시하고, 많은 사람이 있는 자리에서 창피를 줬다”고 말했다.
 
콘텐트 제작 경력직이었던 C씨도 “팀 변동이 있으면서 파트장이 저를 팀장 업무에서 배제하고 잡무를 시켰다”며 “회의실 예약, 회의록 작성과 같은 인턴이 하는 업무를 저에게 주면서 직원들 앞에서 모욕감을 줬다”고 했다.
 

“스타트업, 직장갑질 실태 조사해야”

오는 10월 14일부터 개정된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이 시행되면서 사용자 또는 사용자의 친인척이 직장 내 괴롭힘 사건의 가해자가 될 경우 1000만원 이하의 과태료가 부과될 전망이다.
 
법 개정에 따라 갑질 신고 시 의무사항에 ‘당사자 등을 대상으로 객관적으로 조사’ ‘비밀유지’ 조항이 추가됐다. 또 직장 내 괴롭힘 사건 신고시 ▶지체없이 객관적 조사 ▶괴롭힘 확인 시 피해자 보호 ▶가해자 징계 ▶비밀 유지 등 조사ㆍ조치 의무를 이행하지 않을 경우 500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하도록 했다. 그러나 노동계는 여전히 가해자 처벌 조항이 없는 점, 5인 미만ㆍ하청ㆍ특수고용ㆍ프리랜서 등은 적용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반쪽짜리’ 법이라는 지적이 있다.
 
직장갑질119는 “정부는 스타트업들이 자금을 확보할 수 있도록 다양한 형태로 스타트업 정부 지원 사업을 하고 있지만, 육성해야 할 것은 기술이지 갑질이 아니다”라며 “정부는 정부지원금을 받는 스타트업 기업들에 대한 전수조사를 통해 직장갑질 실태를 조사하고, 심각한 기업에 대해서는 특별근로감독을 벌여 직장갑질을 근절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권혜림 기자 kwon.hyer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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