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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일본 ‘반도체 밀월’, 삼성에 독일까 약일까

중앙일보 2021.06.06 05:00
TSMC 로고. [연합뉴스]

TSMC 로고. [연합뉴스]

 
한해 500조원쯤 되는 반도체 시장은 한국·미국·중국·대만·일본·유럽 등 6개 나라와 대륙이 치열하게 경쟁하는 구도다. 일본은 1980년대 중반까지 세계 1위였지만, 미국과 플라자합의(1985년) 이후 쇠락의 길을 걸었다. 일본의 반도체 자급률은 2019년을 기준으로 7%에 그치고 있다. 

키워드: TSMC에 러브콜 하는 일본
연구단지 투자금액 절반 밀어주고
재료·장비 업체 20여 곳 ‘총동원’
업력+내공 변수 “뒤집기는 어려워”

 
최근엔 분위기가 확연하게 달라졌다. 한국과 미국, 한국과 대만 사이의 틈을 공략하고 나섰다. 지난 3일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은 “가토 가쓰노부(加藤勝信) 관방장관이 주재하는 성장전략회의에 ‘반도체 등 디지털 산업의 기반 강화를 위한 새로운 전략’ 보고서가 올라갔다”고 보도했다.  
 
일본의 수도 도쿄에서 북동쪽으로 60여㎞ 떨어진 이바라키현(縣) 쓰쿠바시가 일본의 ‘잃어버린 30년’을 회복해줄 거점으로 꼽힌다. 쓰쿠바는 연구소만 300여 개, 연구인력이 줄잡아 3만 명에 이르는 ‘박사 도시’다. 한국으로 치자면 대전시 대덕연구단지 비슷하다.  
 
그리고 그 지렛대는 대만 TSMC다. 일본 경제산업성은 지난달 TSMC가 일본 쓰쿠바시에 연구개발 거점을 조성하는데 190억 엔(약 1925억원)의 보조금을 지원한다고 발표한 바 있다. 전체 사업비(370억 엔)의 절반을 정부가 몰아주는 것이다.

 
여기에서 TSMC는 세계 최고의 경쟁력을 보유한 반도체 후공정(패키킹) 연구에 주력할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의 소재·부품·장비업체 20여 개가 협업한다. 패키징 전문업체인 이비덴과 소재 기업인 아사히카세이, 장비 제조업체 시바우라메카트로닉스 등이다. 닛케이는 “다음 달 쓰쿠바시에 있는 일본산업기술종합연구소(AIST)에서 시험라인 정비가 시작되고, 내년부터 본격적인 연구개발을 시작한다”고 보도했다.  
 
일본과 대만 관계가 더욱 밀착하는 모양새다. 일본은 최근 코로나19 사태로 반도체공장 가동 중단 등 큰 타격을 받은 대만에 국가 차원의 지원 의사도 밝혔다. 실제로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을 대만에 보내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조금 더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면 대만 기업은 샤프나 파나소닉 반도체 자회사 등 일본 기업에 대한 굵직한 인수를 성사시켰다. TSMC는 일본 도쿄대와 반도체 설계 분야에서 협력하고 있다. 이를 두고 전문가들은 미국이 안보를 이유로 중국 제재에 나서자, 중국을 재빠르게 ‘손절’하는 대신 일본과 손잡으려는 의도로 풀이한다.  
 
삼성전자를 비롯한 국내 업체의 고민이 깊어지는 순간이다. 미국과 일본, 대만이 단단한 한 축을 이루고 있는데 한국이 이 고리에서 빠져 있어서다.  

 
최근 코로나19 환자가 급증하고 있는 대만 타이베이의 한 역사에서 방역작업이 한창인 가운데 시민들이 마스크를 쓴 채 지나가고 있다. 일본 정부는 대만에 코로나19 백신 제공 방안을 추진 중이다. [로이터=연합뉴스]

최근 코로나19 환자가 급증하고 있는 대만 타이베이의 한 역사에서 방역작업이 한창인 가운데 시민들이 마스크를 쓴 채 지나가고 있다. 일본 정부는 대만에 코로나19 백신 제공 방안을 추진 중이다. [로이터=연합뉴스]

 
다만 익명을 원한 반도체업계 관계자는 “일본은 오랜 업력을 바탕으로 반도체 소재와 장비 분야에서 세계적 경쟁력을 자랑하지만, 제조 공정은 다르다”며 “특히 수십조원에 이르는 막대한 투자를 감당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반도체 설계와 패키징 등 일부 분야에서 현 시장 구도를 비집고 들어올 수는 있어도, 뒤집기는 쉽지 않다는 의미다. 
 
박재근 한양대 교수(한국반도체디스플레이학회장)는 “정부가 나서서 파격적인 지원 방안을 제시하고 기업을 모셔와야 할 만큼 요즘 세계 반도체 시장이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한국 정부가 보다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도 주문했다. 박 교수는 “세제나 금융 지원은 물론 현재의 화학물질 관리나 주 52시간제 같은 엄격한 규제를 과감하게 풀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상재 산업2팀장 lee.sangja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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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재 이상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