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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대통령 녹색 원조 확대 약속…성과 제대로 거두려면 [뉴스원샷]

중앙일보 2021.06.05 05:00
아프리카의 한 빈민촌. 한국에서도 1950~60년대에는 이곳과 비슷한 판잣집들이 많았다. 중앙포토

아프리카의 한 빈민촌. 한국에서도 1950~60년대에는 이곳과 비슷한 판잣집들이 많았다. 중앙포토

"아시아·아프리카 개발도상국에 가서 흙 마당을 밟고 판잣집 사이를 걸으면 그렇게 마음이 편할 수가 없어요. 꼭 어릴 적 고향에 온 것 같은 느낌이 들거든요."
 

50년 만에 최빈국에서 선진국으로
ODA 크게 늘었지만 충분하지 않아
개도국 지원 사업 열매 맺으려면
돈·기술뿐만 아니라 스킨십 있어야

제 주변에 이런 말씀을 하시는 분이 계십니다.
태어났을 때는 한국전쟁 후 최빈국이었지만, 이제는 어엿한 선진국이 된 대한민국에서 살아가시는 분이죠. 저 역시 비슷한 느낌이 든 적이 있습니다.
 
불과 한 사람의 생애 동안 찢어지게 가난한 나라에서 세계 10위권의 경제 대국으로 성장한 것은 기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외국에서 그런 한국을 경이롭게 바라보는 것은 당연합니다. 
개도국들이 그런 한국의 경험을 공유하고 싶어 합니다.
 

한국 성장 경험 배우려는 개도국 

1991년 서울 화재가 발생한 난지도 쓰레기 매립장. 난지도 매립장은 위생 매립 개념이 부족해 악취가 심했고, 침출수로 인한 하천 오염도 발생했다. 중앙포토

1991년 서울 화재가 발생한 난지도 쓰레기 매립장. 난지도 매립장은 위생 매립 개념이 부족해 악취가 심했고, 침출수로 인한 하천 오염도 발생했다. 중앙포토

세계 최고 수준의 위생매립지로 운영되는 인천 서구 수도권매립지. [수도권매립지관리공사]

세계 최고 수준의 위생매립지로 운영되는 인천 서구 수도권매립지. [수도권매립지관리공사]

개도국의 녹색성장 전략을 지원하는 글로벌 녹색성장기구(GGGI)라는 국제기구가 있습니다.

이명박 대통령 정부가 주도해서 만든 이 GGGI가 짧은 시간 내에 국제기구로 승인을 받고 출범할 수 있었던 것도 한국이라는 브랜드가 배경에 있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있습니다.
 
박영우 전 유엔환경계획(UNEP) 아태지역 사무소장은 “GGGI가 호응을 얻은 것은 한국이 만든 국제기구는 뭔가 다르게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라는 개도국의 기대가 있었던 것”이라고 말합니다.
 
서론이 길었습니다.
이 이야기를 꺼낸 것은 문재인 대통령이 최근 녹색 ODA(공적 개발원조)를 확대하겠다고 국제사회에 약속했기 때문입니다.
이 약속은 지난달 30~31일 열렸던 '2021 P4G 서울 녹색미래 정상회의' 때 나왔습니다.
 
P4G는 녹색 성장과 유엔의 글로벌 목표 2030을 위한 연대(Partnering for Green Growth and the Global Goals 2030)를 줄인 말입니다.
녹색성장은 환경을 해치지 않는 경제성장을, 글로벌 목표는 2015년에 유엔에서 정한 지속가능발전 목표(SDG)를 의미합니다.
SDG는 물·에너지·도시·자원순환 등 모두 17가지로 2030년까지 국제 사회가 달성하려는 목표를 담고 있습니다.
 

개도국 기후변화 적응 기금 요구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달 30일 오후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열린 '2021 P4G 서울 녹색미래 정상회의' 개회식에서 연설하고 있다. 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달 30일 오후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열린 '2021 P4G 서울 녹색미래 정상회의' 개회식에서 연설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번 회의에서 개도국 정상들은 지난 2015년 파리 기후협정 체결 때 선진국이 약속했던 연간 1000억 달러의 기금을 내놓으라고 요구했습니다.

개도국이 기후변화 피해 예방, 청정에너지 보급, 생활 수준 향상에 필요한 돈입니다.
 
개도국 입장에서는 한국도 기금을 내야 할 선진국이어서, 모른 체할 수가 없습니다.
문 대통령도 P4G 회의 개막 연설에서 ODA 확대와 함께 GGGI에는 500만 달러, P4G에는 400만 달러를 더 제공하겠다고 밝혔습니다.
 
한국은 과거부터 거듭해서 선진국과 개도국을 잇는 가교 역할을 자임하고 나섰습니다.
그러니 주머니를 계속 열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선진국의 원조를 받다가 원조를 제공하는 한국.
한국은 2010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개발원조위원회(DAC)에 가입했습니다.
DAC는 선진 원조 공여국 간의 협의체입니다.
 
외교부에 따르면 올해 기준으로 한국의 유·무상 ODA는 모두 3조7000억원 규모로 DAC 내에서 15~16위 수준입니다.
또, 최근 5년간(2015~2019년) 한국의 ODA 연평균 증가율은 7.3%로 DAC 회원국 연평균 증가율 2.9% 대비 2.5배 수준입니다.
 
하지만 GNI(국민총소득) 기준으로는 0.15%에 머물러 OECD 평균 0.3%의 절반 수준에 그치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정부는 제3차 국제개발협력 종합기본계획(2021~2025) 기간에 ODA 규모를 두 배로 늘릴 계획입니다.
이 계획에는 보건 분야 ODA를 확대하고, 개도국의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전략적 그린 뉴딜 ODA 추진하겠다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ODA 늘리는 게 능사 아니다

한국국제협력단(KOICA) 동아시아 기후파트너십(EACP:East Asia Climate Partneship)은 기후변화에 취약한 아시아지역 개도국의 국제협력 사업으로 방글라데시 다카 마니칸즈 농촌지역에 태양광 시설을 설치했다. 중앙포토

한국국제협력단(KOICA) 동아시아 기후파트너십(EACP:East Asia Climate Partneship)은 기후변화에 취약한 아시아지역 개도국의 국제협력 사업으로 방글라데시 다카 마니칸즈 농촌지역에 태양광 시설을 설치했다. 중앙포토

하지만 이렇게 예산만 확대한다고 능사는 아닙니다.

돈 주고 뺨 맞는 일은 없어야 할 것입니다.
 
선진국에서 돈과 기술을 지원하더라도, 개도국 정부나 주민들이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하면 소용이 없습니다.
개도국 사정에 맞지 않는 시설은 제대로 작동하지 않습니다.
 
선진국에서 파견됐던 전문가가 떠나버리면 값비싼 시설도 무용지물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한국이 지구촌에서 그린 리더십을 발휘한다면 바로 이 지점입니다.
 
은퇴했거나 이제 은퇴하는 베이비붐 세대의 한국 전문가들은 개도국과 선진국 모두를 경험한 분들입니다.
첨단 선진 기술을 알고, 이를 개도국 현지 사정에 맞게 잘 접목할 수 있는 분들입니다.
지난해 11월 새마을운동중앙회가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새마을중앙연수원에서 지구촌새마을운동 ODA 컨퍼런스를 진행하고 있다. 정성헌 중앙회장이 개회사를 하고 있다. 뉴스1 [새마을운동중앙회 제공]

지난해 11월 새마을운동중앙회가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새마을중앙연수원에서 지구촌새마을운동 ODA 컨퍼런스를 진행하고 있다. 정성헌 중앙회장이 개회사를 하고 있다. 뉴스1 [새마을운동중앙회 제공]

쓰레기를 마구 퍼붓던 난지도 매립지를 알면서도 수도권 쓰레기 매립지처럼 첨단 매립기술까지 경험한 분이죠.

처음 외국에서 차관을 들여와 하수처리장을 어렵게 건설했고, 이제는 고도처리시설까지 설계 운영하셨던 분입니다.
 
박영우 전 소장은 “개도국 지원이 제대로 이뤄지려면 재원뿐만 아니라 능력배양(Capacity Building)과 기술 이전(Technology Transfer)도 함께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자본과 기술뿐만 아니라 스킨십도 중요합니다.
전문가가 현지에 상주하면서 컨설팅을 해야 기술이 뿌리를 내릴 수 있습니다.
 

개도국 맞춤형 기술 제공해야

한국국제협력단(KOICA·코이카)가 기후변화 피해가 극심한 과테말라 산림복구를 위해 10만 그루의 묘목을 기증했다.   사진은 지난 3월 묘목을 심고 있는 현지 농민들. 연합뉴스[코이카 제공]

한국국제협력단(KOICA·코이카)가 기후변화 피해가 극심한 과테말라 산림복구를 위해 10만 그루의 묘목을 기증했다. 사진은 지난 3월 묘목을 심고 있는 현지 농민들. 연합뉴스[코이카 제공]

이 때문에 영어 능력 위주로 선발하는 해외 자문관 파견제도 역시 개선이 필요합니다.

영어 소통 능력이 뛰어나다고 현장과 기술을 모르는 사람을 파견하는 일은 없어야 합니다.
 
다양한 경험을 가진 은퇴자와 영어 소통이 가능한 청년 기술자를 한 팀으로 묶어 3년 단위로 파견해야 효과를 거둘 수 있다는 게 박영우 전 소장의 생각입니다.
 
이미 국내에서는 국제기구에 파견할 청년, 환경기업에서 일할 청년을 위한 교육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프로그램을 활용하거나 응용하면 됩니다.
 
이렇게 이뤄진 팀이 개도국에서 장기 체류하면서 도움을 준다면, 해외 원조도 효율적으로 집행될 것이고, 그게 바로 지구촌의 녹색성장으로 이어질 것입니다.
 
개도국에 필요한 기술을 제공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안성훈 서울대 기계공학과 교수는 지난 2일 국회에서 열린 토론회에서 네팔이나 아프리카 탄자니아에 태양광 발전시설을 제공한 경험을 소개했습니다.
 
‘기후변화 시대 스마트 ODA를 위한 과학기술’이란 주제로 열린 이 날 토론회는 한국과학기술단체 총연합회와 변재일 국회의원실, 적정기술학회가 공동 주최했습니다.
이날 행사에서도 문 대통령의 ODA 확대 발언이 여러 차례 언급됐습니다.
 
안 교수는 2억 원 정도의 예산으로 네팔 산간지역에  태양광과 풍력, 소수력 발전으로 170여 가구에 전기를 공급하는 사업을 진행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주민들이 직접 전봇대를 세우고 토목공사에 참여하면서 주인 의식을 갖고 스스로 시설을 운영할 수 있게 됐다는 것입니다.
 
탄자니아에서는 태양광 발전으로 지하수를 끌어올리고, 집에서 휴대폰을 충전할 수 있게 됐습니다.
덕분에 충전하러 왔다 갔다 하던 시간이 절약돼 그 시간만큼 일해 소득을 높이게 됐고, 소득을 다시 에너지 시설 유지 보수에 투입하는 선순환이 이뤄지게 됐습니다.
 
토론회에서 김형주 녹색기술센터(GTC) 선임부장은 “방글라데시 연안 지역을 대상으로 한 염분 제거 정수 기술사업처럼 현지 수요와 국내 유망 기술을 매칭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습니다.
김 부장은 “기술 제공자는 물론 기술 수요자 모두 총체적 역량을 강화하기 위해 연구과 교육이 필요하고, 이 분야에 대한 더 많은 투자가 필요하다”고 지적했습니다.
 

양자 협력보다 다자간 협력이 바람직

지난해 9월 서울 중구 더플라자호텔에서 개최된 '글로벌 그린뉴딜 촉진을 위한 그린 ODA 파트너십' 체결식에서 참석자들이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앞줄 왼쪽부터) 윤제용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장, 유제철 한국환경산업기술원장, 이미경 코이카 이사장, 장준영 한국환경공단 이사장, 정병기 녹색기술센터 소장. 연합뉴스 [ [코이카 제공]

지난해 9월 서울 중구 더플라자호텔에서 개최된 '글로벌 그린뉴딜 촉진을 위한 그린 ODA 파트너십' 체결식에서 참석자들이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앞줄 왼쪽부터) 윤제용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장, 유제철 한국환경산업기술원장, 이미경 코이카 이사장, 장준영 한국환경공단 이사장, 정병기 녹색기술센터 소장. 연합뉴스 [ [코이카 제공]

ODA를 제공하는 체계, 플랫폼도 개선이 필요합니다.
 
남상민 유엔 아·태경제사회위원회 동북아지역사무소 부대표는 “두 나라 사이에 이뤄지는 양자 ODA보다는 다자체제로 진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합니다.
 
아시아·아프리카 여러 나라를 하나의 단위로 묶고 ODA를 집행하면, 서로서로 배우고 정보를 제공할 수 있어 더 큰 효과를 거둘 수 있다는 것입니다.
남 부대표는 “특히, 한국의 전문기관이 기획하고 진행하면서 리더십을 발휘한다면 효과를 높일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국회 토론회에서도 성경륭 전 경제인문사회연구회 이사장은 “한국이 독일·프랑스·캐나다·호주 등과 집단 리더십을 구축해 개도국의 역량을 증진하는 사업을 추진할 경우 큰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미국이나 중국 주도에서 벗어나 중견국 중심의 글로벌 협력체계를 구축할 필요가 있다는 것입니다.
 
아무튼 ODA를 확대해야 한다면, 효과 있게 효율적으로 잘 사용해야 합니다.
 
글로벌 국제 협력 시스템에서부터 개도국 작은 마을 현장까지 세심하게 살피고 소통하고 고쳐나가야 할 겁니다.
그래야 기후위기를 극복하면서 한국의 위상을 높이는 데도 도움이 될 수 있을 테니까요.
 

강찬수 환경전문기자   kang.chans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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