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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발자 키워 달라” 크래프톤 11명, KAIST에 110억 기부

중앙선데이 2021.06.05 00:20 739호 12면 지면보기
크래프톤 장병규 의장 등 임직원 11명이 4일 모교 KAIST에 110억원을 발전기금으로 기부했다. KAIST 이상엽 연구부총장·이승섭 교학부총장, 장 의장, 이광형 KAIST 총장, 신승우 크래프톤 임직원 대표, 류석영 KAIST 전산학부장(왼쪽부터)이 기부 약정식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김성태 객원기자

크래프톤 장병규 의장 등 임직원 11명이 4일 모교 KAIST에 110억원을 발전기금으로 기부했다. KAIST 이상엽 연구부총장·이승섭 교학부총장, 장 의장, 이광형 KAIST 총장, 신승우 크래프톤 임직원 대표, 류석영 KAIST 전산학부장(왼쪽부터)이 기부 약정식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김성태 객원기자

4일 오후 1시 대전 유성 KAIST 캠퍼스 본관 1층 1 회의실. 4차 산업혁명위원회 위원장을 지낸 장병규 크래프톤 의장과 이광형 KAIST 총장 등이 한자리에 모였다. 이날 행사는 장 의장과 김창한 대표 등 크래프톤 전·현직 구성원 11명이 미래 소프트웨어 인력 양성을 위해 모교에 110억원의 발전기금을 내는 약정식이었다. 장 의장은 KAIST 전산학과 91학번, 김 대표는 같은 과 92학번이다. 김 대표를 포함한 다른 7명의 기부자는 코로나19의 확산 예방을 위해 온라인으로 참석했다. 발전기금은 크래프톤 임직원 11명이 55억원의 개인 기부금을 먼저 조성한 뒤, 회사가 같은 액수의 출연금을 보태는 1대 1 ‘매칭 그랜트’(matching grant) 방식으로 약정했다.
 

장병규 의장, 김창한 대표 포함
전산학과 90학번 이후 동문 참여
배민·카카오 등 IT업계 나눔 확산

KAIST 전산학과 동문의 모교 기부 행렬이 줄을 잇고 있다. 계기는 장 의장이었다. 그는 지난해 1월 KAIST 총동문회 2020 신년교례회에서 100억원의 발전기금을 쾌척하며 “개인의 기부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동문의 적극적인 기부 참여를 이끌어내는 마중물이 되기를 희망한다”고 강조한 바 있다. KAIST 동문 중에서 100억원 이상을 기부한 것은 장 위원장이 처음이었다. 이후 기부 의사가 있지만 구체적인 기부처를 정하지 못했던 크래프톤 내부의 KAIST 동문 구성원들이 장 의장과 합심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4명이었던 기부 희망자는 퇴직자까지 동참해 총 11명으로 늘어났다. 크래프톤 측에 따르면 본격적인 모금 활동을 벌인지 약 2개월여 만에 55억원의 기부액이 모였으며, 지금도 동문 구성원의 참여 문의가 이어지고 있다.
 
기부에 참여한 신승우씨(92학번·휴직)는 “모교에서 좋은 사람들을 만나 배우고 얻은 것들에 감사하는 마음을 늘 가지고 있었지만 표현하지 못했었다”며 “그 고마운 마음을 후배들에게 돌려주자는 제안에 마음이 움직였다”라고 기부 취지를 설명했다. 김 대표는 “모교 졸업생들이 회사가 성장하는 데 많은 역할을 해준 것처럼 기부를 통해 좋은 개발자를 키워낼 수 있다면 회사는 물론 산업계 전반에 걸친 장기적인 발전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KAIST는 해당 약정금을 공간 부족에 시달리는 전산학부의 증축기금으로 활용할 계획이다. 2016년에 450여 명이었던 전산학부 학부생은 2021년 현재 900명을 넘어선 상태다.
 
국내외 주요 대학의 연간 기부금 모금액

국내외 주요 대학의 연간 기부금 모금액

KAIST 전산학과 동문의 모교 기부는 크래프톤 뿐이 아니다. 지난 4월에는 우아한형제들(배달의민족)의 김범준(93학번) 대표가 1억원을 냈다. 그는 “도움을 준 사람에게 다시 갚는 페이백(Pay Back)보다는 내가 받은 호의를 다음 세대를 위해 사용하는 페이 잇 포워드(Pay It Forward) 방식으로 도울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해 왔다”고 말했다. 또 김 대표의 기부 소식을 들은 서하연(95학번)·한동훈(96학번) 전산학과 동문 부부가 2000만원을 기부했다. 서씨는 카카오에서 데이터전략담당 상무를, 한씨는 우아한형제들에서 데이터서비스실 리더를 맡고 있다. 이어 게임 개발기업 데브시스터즈에서는 전산학부 06학번부터 16학번까지를 아우르는 젊은 엔지니어 11명도 십시일반으로 총 3320만원의 기부금을 전달했다.
 
특이한 점은 최근 줄을 잇고 있는 동문 기부금 행렬의 대부분이 90년대 학번 이후라는 점이다. 이에 대해 KAIST의 한 관계자는 “KAIST는 1971년 대학원 과정으로 처음 발족했다가 1989년 대전 과학기술대학과 합쳐지면서 학부생이 생겨났다”며 “넥슨 창업주인 김정주 대표와 네이버 창업주 이해진 회장 등도 KAIST 대학원에서 전산학을 전공했지만, 학부는 서울대에서 마쳤다는 점에서 학부 1학년부터 KAIST를 다닌 장병규 크래프톤 의장 등 후배들과는 온도 차가 있다”고 말했다.
 
기부금은 대학의 발전을 위한 대표적 재원이다. 이 때문에 국내·외 주요 대학들은 학교발전재단을 만들고 기업과 동문을 비롯한 개인을 대상으로 기부금 모집 경쟁을 벌이고 있다. KAIST는 개교가 늦은 탓에 100년 이상의 역사를 가진 고려대나 연세대 등 국내 명문 사학들에 비해 동문 기부금 비중이 현격히 작다. 고려대는 2019년 기준 전체 기부금(748억원) 중 동문 기부금액 비중이 39%, 연세대는 324억원 중 24.7%이지만, KAIST는 200억원 중 1%에 못 미친다. 다만, 지난해 이수영 광원산업 회장(676억원), 김재철 동원그룹 명예회장(500억원)의 기부에 힘입어 KAIST는 서울대와 고려대·연세대를 제치고 국내 1위에 올랐다. KAIST는 올해도 4일 현재까지 350억원의 기부금 모집 실적을 올리고 있다.
 
미국의 경우 주요 명문대의 기부금 규모는 한국과 차원을 달리한다. 하버드대가 2018년 14억1810만 달러(약 1조5790억원)를, 스탠퍼드대가 10억9800만 달러(약 1조2226억원)를 모으는 등 연간 10억 달러 안팎의 기부금 실적을 올리고 있다. 이광형 KAIST 총장은 “뛰어난 교수, 뛰어난 학생, 이를 바탕으로 한 뛰어난 연구 성과의 기본에는 결국 투자가 있어야 한다”이라며 “세계 일류 대학으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그만큼의 돈이 필요하다는 얘기”라고 말했다.
 
최준호 과학·미래 전문기자 joon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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