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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도 많은 공자학원, 서구에서 ‘퇴출 물결’인 이유

중앙일보 2021.06.04 18:00
 
  
“그들의 새 삶을 노래하네, 위대한 공산당을 노래하네. 오 마오 주석이여, 오 공산당이여, 우리를 정성껏 키워 자라게 하네.”
 
2013년 3월 16일 미국 미시간 대학. 연미복을 차려입은 한 남자 대학생이 유창한 중국어로 공산당을 찬양하는 노래 ‘초원 위로 지지 않고 떠오르는 태양(草原上升起不落的太阳)’을 불렀다. 미시간대 공자학원이 주최한 중국 전통 노래 콘서트에서 있었던 일이다.
 
 
이즈음 북미ㆍ유럽 대학에선 공자학원을 중심으로 여러 갈등이 빚어졌다. 2008년 미국 노스캐롤라이나 주립 대학에선 학내 공자학원의 반대로 달라이 라마 방문이 취소됐다. 2014년 포르투갈 브라가ㆍ코임브라에서 열린 유럽 중국학회 콘퍼런스에선 대만 관련 자료가 공자 학원 측 개입으로 삭제되기도 했다. 
 
한 미국 미시간대 학생이 중국 공산당을 찬양하는 노래를 부르고 있다. 다큐 ‘공자라는 미명 하에’ 캡처

한 미국 미시간대 학생이 중국 공산당을 찬양하는 노래를 부르고 있다. 다큐 ‘공자라는 미명 하에’ 캡처

 

서구에서 문화 충돌 빚는 공자학원

 
공자학원은 중국이 중국어와 자국 문화를 알리기 위해 만든 교육 기관이자 문화 보급 기관이다. 중국 교육부 지원으로 2004년 설립됐다. 2020년 말 기준 전 세계 162개국 총 541개 공자학원이 운영되고 있다. 열흘에 1개 꼴로 전세계에 확산됐다. 공자학원은 보통 해외 대학과 연계하는데, 설립할 때 대학 측에 약 10억원을 지원해주고 매년 운영비로 1억~2억원을 주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대학생 중국 탐방단, 장학금, 교수 연구비도 지원하는 등 설치하는 대학을 위한 혜택이 풍부한 편이다.
 
중국만 공자학원 같은 기관을 운영하는 건 아니다. 우리도 한글을 가르치고 우리 문화를 알리는 세종학당을 2007년 설립해 76개국 213곳에 보급했다. 영국 브리티시 카운슬, 독일 괴테 인스티투트, 프랑스 알리앙스 프랑세즈도 비슷한 기관이다. ‘문화원’ 역할을 위해 설립된 공자학원이 왜 유독 서양 국가에서 논란을 빚게 된 걸까.
 
 
공자학원을 고발하는 내용의 다큐멘터리 ‘공자라는 미명 하에’에 따르면, 2013년 캐나다 맥마스터대를 시작으로 지금까지 세계적으로 공자학원 80여 군데가 폐쇄됐다. 한때 100개가 넘는 공자학원이 있었던 미국에선 지난해만 20곳이 넘는 공자학원이 문을 닫았다. 유럽 최초로 공자학원을 설립한 스웨덴은 지난해 4월을 마지막으로 모든 공자학원과 관계를 끊었다. 당시 스웨덴 스톡홀름대 아스트리드 비딩 부총장은 외신 인터뷰에서 “다른 나라의 자금을 받는 기관을 대학이라는 틀 안에 설립하는 것은 의심스러운 관행”이라고 말했다.
 
2014년 10월 29일 캐나다 토론토교육청 앞. 이날 교육청 위원회는 공자학원 제휴 중단 안건에 대해 찬성 20표, 반대 2표의 결정으로 공자학원을 토론토 교육 기관에서 퇴출하기로 결정했다. 이에 앞서 공자학원 반대 시위대(왼쪽)과 중국 정부 지지 시위대(오른쪽)가 교육청 앞에서 세를 겨뤘다. 다큐 ‘공자라는 미명 하에’ 캡처

2014년 10월 29일 캐나다 토론토교육청 앞. 이날 교육청 위원회는 공자학원 제휴 중단 안건에 대해 찬성 20표, 반대 2표의 결정으로 공자학원을 토론토 교육 기관에서 퇴출하기로 결정했다. 이에 앞서 공자학원 반대 시위대(왼쪽)과 중국 정부 지지 시위대(오른쪽)가 교육청 앞에서 세를 겨뤘다. 다큐 ‘공자라는 미명 하에’ 캡처

 
공자학원을 폐쇄하는 국가들은 공자학원이 중국 공산당의 선전기구이며 학문의 자유를 침해한다고 판단한다. 2018년 미국 국회가 발간한 미ㆍ중 경제ㆍ안보 위원회 보고서는 “중국 공산당은 여론 조작을 위해 다양한 수단을 활용하는데, 그중 하나가 공자학원”이라고 주장했다. 미국 국무부는 지난해 8월 공자학원을 ‘해외임무기관(Foreign Mission)’으로 지정하고 공자학원을 설립하려는 기관은 인적구성과 예산 등을 의무 보고하도록 했다.
 
반발이 심해지자 중국 정부는 지난해 7월 공자학원을 ‘중국어 교류·협력센터’라는 이름으로 간판을 바꿔 달았다. 운영 주체도 ‘국가한어국제보급영도소조판공실(한판·汉办)’에서 신설 비영리기구인 ‘중국국제중문교육기금회’로 바꿨다. 두 기구 모두 중국 교육부 산하에 있지만, 국가가 관여한다는 인상을 지우기 위한 조치로 풀이된다.
 

우리나라의 공자학원은?

 
우리나라는 세계 최초로 공자학원이 설립된 국가다. 2004년 11월 21일 서울 강남에서 문을 연 서울 공자아카데미를 시작으로 연세대ㆍ경희대ㆍ한양대ㆍ충북대ㆍ충남대 등 22개 대학교에 설립되는 등 전국 총 23곳의 공자학원이 설치돼 있다.
 
시민단체 ‘공자학원 실체 알리기 운동본부’에 따르면, 우리나라 공자학원에서 사용된 교재 ‘나와 함께 중국어를 배워요(Learn Chinese with Me)’에 ‘홍호수랑타랑(洪湖水浪打浪)’라는 노래가 실렸다고 한다. 이 노래엔 ‘공산당의 은혜가 동해보다 깊다(共产党的恩情比那东海深)’는 가사가 나온다. 운동본부 측은 공자학원 영문 홈페이지에 6ㆍ25 전쟁을 미국에 대항한 전쟁으로 표현한 영상이 올라왔다가 삭제된 사례도 있었다고 했다. 
  
한 유튜버가 공개한 공자학원 영문 홈페이지 영상 캡처. 6ㆍ25전쟁 관련 영상인데 미국을 침략자로 묘사하고 있다. 영상은 공자학원 영문 홈페이지에 올라와 있었지만 지금은 삭제됐다.

한 유튜버가 공개한 공자학원 영문 홈페이지 영상 캡처. 6ㆍ25전쟁 관련 영상인데 미국을 침략자로 묘사하고 있다. 영상은 공자학원 영문 홈페이지에 올라와 있었지만 지금은 삭제됐다.

 
하지만 전반적으로 우리의 공자학원에 대한 인식과 대응은 해외와는 차이가 크다. 대부분 대학이 공자학원을 단순한 어학원 차원으로 보고 운영을 허가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2020년 10월 19일 충남대학교에서 열린 교육위원회 국정감사 회의록을 보면 국민의힘 정경희 의원이 “공자학원으로 인해 대학이 중국 공산당의 체제 선전 무대가 되는 것 아닌가 우려된다”고 하자 이진숙 충남대 총장은 “공자학원은 비교적 순수하게 중국어와 문화적 안내를 하는 곳으로만 알고 있었다”고 답했다. 당시 국감에서 교육부 역시 이런 지적이 나오자 공자학원에 대해서 조사를 진행하겠다고 했다. 교육부 관계자는 최근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동북아 역사재단과 함께, (공자학원이) 문제가 있는지 조사를 아직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공자학원 측 “문화적 차이”

 
현재 북미ㆍ유럽을 제외한 국가들에선 적극적인 퇴출 움직임이 있지만, 아프리카ㆍ남미 등 개도국에 설립된 공자학원은 우리나라처럼 별다른 움직임이 없다. 세계 경제에 중국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중국과 문화적인 교류를 이어가는 게 국익에 도움이 된다고 판단하는 것으로 보인다.
 
아프리카에선 아직 공자학원 퇴출 움직임이 없다. 2015년 9월 케냐 공자학원 학생들이 중국 무술 시범을 보이고 있다. 신화=연합뉴스

아프리카에선 아직 공자학원 퇴출 움직임이 없다. 2015년 9월 케냐 공자학원 학생들이 중국 무술 시범을 보이고 있다. 신화=연합뉴스

 
다큐 ‘공자라는 미명 하에’의 감독 도리스 리우는 “공자학원이 대학 캠퍼스 안에서 검열을 자행한다는 증거는 차고 넘친다”며 “하지만 일부 국가들은 중국의 영향력 때문에 반발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중국 측이 만든 중국어 교재는 정교한 뉘앙스로 조작된 선전 요소로 돼 있어 외국인의 시각으로는 걸러낼 수 없다”며 “이러한 일은 국가를 막론하고 어느 나라에서나 벌어지고 있는 일”이라고 했다.
 
하지만 국내 공자학원 측은 해외에서의 논란이 “문화적 차이로 인한 것"이라며 "국내에선 별 탈 없이 운영되고 있다”고 말한다. 김현철 연세대 공자학원 원장(중어중문학과 교수)은 “국내 공자학원은 교재와 교사 선정에도 관여하므로 중국 공산당을 선전하는 내용을 담은 교재는 쓰지 않는다”며 “공자학원이 공산당 선전기관이라는 건 근거 없는 주장”이라고 밝혔다. 
 
김 교수는 또 “우리는 인구 5000만 명에 중국어 학습자가 100만 명이 넘지만, 미국은 인구 3억 명 중 중국어 학습자가 10만 명이 넘는 수준이라 중국에 대한 이해가 우리보다 훨씬 부족하다”며 “(해외의 사례는) 양국이 상호존중하지 않고 문화를 이해하지 못해 퇴출까지 이르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이정봉 기자 mole@joongang.co.kr
영상=김지선ㆍ정수경 PD, 김지현ㆍ이가진 인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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