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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건 “北, 조금 포기하고 일방적 양보 얻길 원해…결국 기회 놓쳐”

중앙일보 2021.06.04 10:53
스티븐 비건 미 국무부 부장관 겸 대북특별대표가 지난해 12월 서울 종로구 아산정책연구원에서 '미국과 한반도의 미래'를 주제로 강연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스티븐 비건 미 국무부 부장관 겸 대북특별대표가 지난해 12월 서울 종로구 아산정책연구원에서 '미국과 한반도의 미래'를 주제로 강연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트럼프 행정부에서 대북 협상을 이끌었던 스티븐 비건 전 국무부 부장관이 2019년 2월 하노이 북ㆍ미 정상회담과 관련해 “그런 일련의 기회를 언제 다시 세울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바이든 행정부와 그들의 협상팀이 그럴 수 있기를 바란다”며 “하지만 결론은 북한이 기회를 놓쳤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전 국무부 부장관, 미국군축협회 인터뷰
"北 하노이서 원한건 전면적 제재 완화
바이든 정책 논리적…결과 다를지는 의문"
바이든 성패도 결국 ‘비핵화-보상 패키지’
'선대선 강대강' 북한과 근본적 시각차

4일 미국의소리(VOA) 방송에 따르면 전날 공개된 미국군축협회(ACA)와의 인터뷰에서 비건 전 부장관은 “결국 마음을 정해야 하는 것은 북한이다. 그들은 오래된 사고방식에 갇혀 있다”며 이처럼 밝혔다. 또 그는 “그들은 자신들이 지켜야 하는 약속은 최소화하고, 가능한한 적게 포기하길 원했다. 그러면서 (상대방으로부터는)일방적인 양보를 얻어내길 바랐다”며 “그런 일이 일어나기란 불가능했다”고 돌아봤다.  
 
비건 전 부장관은 하노이 노 딜 뒤 북한이 “미국이 유엔 제재 중 민수경제와 인민생활에 지장을 주는 항목들만 먼저 해제해주면 영변의 핵물질과 생산시설을 완전히 폐기하겠다고 제안했지만 미국이 받아들이지 않았다. 전면적 제재 해제를 요구한 게 아니다”라고 주장한 것도 반박했다.  
그는 “북한이 요구한 것은 안보리 제재의 전면 해제였다. 무역에 대한 일부 제한만 남겨놓는다면 북한이 대량살상무기(WMD) 거래를 활발히 하는 결과로 이어질 게 뻔했다”고 설명했다. “(비핵화에 대해)조금이라도 아는 전문가라면, 북한이 제안한 게 ‘부분적 비핵화에 완전한 제재 해제’를 받아내면서 실질적 약속은 없는 것이라는 점을 알아차렸을 것”이라면서다. 또 “이는 북한을 사실상 핵보유국으로 인정하는 의미까지 내포하는 제안이었다”고 설명했다.
 
북한 이용호 외무상이 2019년 3월 2차 북미정상회담 북측 대표단 숙소인 베트남 하노이 멜리아호텔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전날 열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2차 정상회담이 합의에 이르지 못하고 결렬된 데 대한 입장 등을 밝히고 있다. 왼쪽은 최선희 외무성 부상. 연합뉴스

북한 이용호 외무상이 2019년 3월 2차 북미정상회담 북측 대표단 숙소인 베트남 하노이 멜리아호텔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전날 열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2차 정상회담이 합의에 이르지 못하고 결렬된 데 대한 입장 등을 밝히고 있다. 왼쪽은 최선희 외무성 부상. 연합뉴스

비건 부장관은 바이든 행정부의 새로운 대북정책에 대해서는 “논리적 결론이었으며, 솔직히 가능한 선택지 중 가장 나은 방법을 택한 것”이라면서도 “과거 시도됐던 상당수 대북 정책과 크게 다르지 않아 (이전과)다른 결과를 기대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라고 우려했다. 또 “미국이 북한과 진전을 이룰 수 있을지 여부의 핵심은 북한 정부가 이 길을 갈 준비가 돼 있는지 여부”라고 지적했다.  
 
결국 바이든 행정부의 대북 정책 성패도 ‘패키지’ 구성에 달린 것으로 볼 수 있다. 패키지란 북한이 어떤 비핵화 조치를 했을 때 어떤 보상을 제공할지 묶은 조합인데, 이런 패키지들이 쌓여 비핵화 목표 달성을 향해 가는 셈이다.
여기서 관건은 비핵화 조치와 보상 조치 간의 무게를 균등하게 잡는 것이다. 애초에 하노이 북ㆍ미 정상회담도 결국 주고받기의 등가성이 맞지 않아 노 딜로 이어졌다.
 
2019년 2월 베트남 하노이에서 만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연합뉴스

2019년 2월 베트남 하노이에서 만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연합뉴스

외교 소식통은 “미국이 결국 북한을 불신하게 된 것도 영변 외에 다른 핵시설의 존재는 인정도 하지 않으면서 영변을 포기할 테니 제재를 해제해달라고 계속 요구했기 때문”이라며 “미국으로선 북한이 ‘북한의 비핵화’가 아니라 ‘영변의 비핵화’만 하고 넘어가려는 것이라고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고 전했다.  
미국이 비핵화의 최종목표와 로드맵에 대해 합의하는 게 우선이라고 버틴 이유도 이 때문이다. 패키지의 내용에 대해 사전 합의가 되지 않으면 결국 비핵화 조치를 잘게 나눠 행동을 할 때마다 보상을 내놓으라는 북한의 ‘살라미 전술’에 당할 우려가 커지기 때문이다.  
 
트럼프 행정부 당시 비건 전 부장관과 이도훈 전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이 이끄는 한ㆍ미 북핵팀이 북한과의 협상 초기부터 중점을 둔 것도 주고받기의 패키지 구성을 어떻게 할지였다. 바이든 행정부도 북한이 ‘특정한 조치’를 취했을 때만 제재 완화를 제공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역시 패키지 구성에 고심하고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북한은 여전히 미국을 향해 ‘선대선, 강대강’ 원칙을 고수하고 있다. 미국이 어떤 보상을 줄 수 있을지 먼저 보겠다는 식인데, 비핵화 로드맵 합의에 대한 근본적 시각차를 해소하는 게 바이든 행정부가 직면한 가장 큰 과제인 셈이다.
 
2019년 6월 판문점 남측지역에서 문재인 대통령,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회동했다. 뉴시스

2019년 6월 판문점 남측지역에서 문재인 대통령,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회동했다. 뉴시스

한편 비건 전 부장관은 인터뷰에서 북한 협상단이 하노이에 “비핵화를 제외한 모든 것과 관련한 아이디어를 가져왔다”고 소개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합의를 이루는 데 절박하다고 보고 실무협상에선 그런 제안들을 하지 않고 아껴뒀다가, 정상회담에 와서야 내놨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비건 전 부장관은 “하지만 이는 잘못된 전략이었다. 북한 내부가 됐든, 아마 한국에서조차도 이런 전략을 추구하도록 부추긴 사람이 있다면 그것은 큰 실수였다”고 말해 당시 청와대가 북ㆍ미 사이에서 ‘정직한 중개자’ 역할을 했는지에 대한 의문을 넌지시 제기했다.
유지혜 기자 wisepe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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