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갈수록 대담해지는 제재 위반···"北, 中통해 유조선 3척 샀다"

중앙일보 2021.06.03 12:06
북한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제재를 피해 재작년부터 유조선 세 척을 사들였다는 연구 보고서가 나왔다. 세 척 모두 중국의 중개업자를 거쳐 인수가 이뤄졌는데, 이 중 두 척은 과거 한국 업체 소유였던 것으로 파악돼 대북 제재 위반 우려가 제기된다.
 

"北, 지난해 유조선 2척 인수"
"중국 거쳐 인수...정제유 수송 정황"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산하 아시아해양투명성이니셔티브(AMTI)는 지난 1일(현지 시간) '북한이 제재에도 불구하고 유조선을 인수하고 있다'는 제목의 보고서를 공개했다. 
보고서와 국제해사기구(IMO) 홈페이지에 따르면 지난해 10월 '신평 5호'라는 유조선이 북한 선박으로 등록됐다. 이 선박은 과거 부산에 위치한 한국 선사 소유였는데, 지난 2019년 7월 27일 한국에서 중국 북동 연안 왕자만으로 이동했다. 
 
신평 5호는 현재 평양 소재 명류무역 소유로 돼 있다. 미 재무부와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위원회의 전문가패널은 명류무역이 소유한 또다른 선박인 '명류 1호'가 유류 밀무역에 가담한 정황을 포착하기도 했다. 명류무역이 신평 5호를 인수한 것 역시 비슷한 목적으로 사용하려는 것일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지난해 10월 북한 선박으로 등록된 '신평 5호'는 과거 '우정호'로 불렸다. 과거 한국 선사 소유였다가 현재는 평양 소재 명류무역 소유다. 사진은 '우정' 호 당시 관련 정보.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산하 아시아해양투명성이니셔티브(AMTI) 홈페이지 캡쳐

지난해 10월 북한 선박으로 등록된 '신평 5호'는 과거 '우정호'로 불렸다. 과거 한국 선사 소유였다가 현재는 평양 소재 명류무역 소유다. 사진은 '우정' 호 당시 관련 정보.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산하 아시아해양투명성이니셔티브(AMTI) 홈페이지 캡쳐

2019년 11월에 북한 소유로 넘어간 '광천 2호' 또한 과거 한국 선사 소유의 배였다. '광천 2호'는 북한 남포항에 10차례에 걸쳐 유류를 실어나른 정황이 있다. 
 
지난해 북한이 추가로 인수한 '월봉산'의 경우 과거 홍콩에 있는 업체 소유의 선박이었다. '월봉산' 또한 유엔 안보리 전문가 패널의 조사 결과 남포항으로 이동한 정황이 포착됐다. 또 2017년부터 2020년까지 북한의 선박 간 환적 장소로 자주 사용됐던 중국 저우산항 동쪽 지역을 여러 차례 오간 기록이 확인됐다. 
 
앞서 지난 2017년 12월 유엔 안보리 결의 2397호는 북한이 반입할 수 있는 정제유를 연간 총 50만 배럴로 제한했다. 또 유엔 회원국들이 북한에 정제유를 제공할 경우 양을 보고하도록 하고 있다. 
미 재무부는 지난 2019년 30일(현지시간) 북한과의 불법 환적 혐의를 받는 대만인 2명과 해운사 3곳, 선박 1척에 대해 추가 독자 제재를 부과했다고 밝혔다. 사진은 대북 불법 환적에 연루돼 이번 미국의 제재를 받게 된 선박 상위안바오호의 모습. 마린트래픽

미 재무부는 지난 2019년 30일(현지시간) 북한과의 불법 환적 혐의를 받는 대만인 2명과 해운사 3곳, 선박 1척에 대해 추가 독자 제재를 부과했다고 밝혔다. 사진은 대북 불법 환적에 연루돼 이번 미국의 제재를 받게 된 선박 상위안바오호의 모습. 마린트래픽

또 2016년 11월 채택된 유엔 안보리 2321호는 북한에 신규 선박을 판매하거나 공급, 이전하는 행위 자체를 금지하고 있다. 이후 2017년 12월 채택된 2397호는 이 금지 조항의 범위를 중고 선박으로 확대했다. 북한은 유조선 세 척을 구할 수 있었던 것 자체가 제재 회피 행위인 셈이다. 
 
특히 세 척 중 두 척은 당초 한국 소유였던 만큼 이들 선사가 대북 제재를 위반했는지 조사가 이뤄질 수도 있다. 판매하는 선박의 소유권이 최종적으로 북한에 넘어갈 것이란 정황을 사전에 인지했다면, 한국 선사나 중개인 역시 제재를 위반했을 소지가 있다. 
보고서를 작성한 레오 번 연구원은 "중국에서 활동하는 선박 매수인들은 분명히 유엔의 제재를 위반했으며, (이들에게 배를 판) 한국의 중개업자들도 함께 제재를 위반한 것으로 볼지는 업자들이 중국 측에 대한 실사 작업을 어떻게 진행했는지에 달렸다"고 분석했다.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위원회 전문가 패널은 2019년 3월 12일(현지시간) 발표한 보고서에서 북한 선박의 제재 위반이 계속되고 있다고 밝혔다. 사진은 2018년 8월과 9월 베트남 인근 통킹만에서 화후호가 북한 백양산호(오른쪽 사진 위쪽 선박)과 불법환적을 하고 있는 모습. 유엔 안보리 대북제제위 보고서 캡쳐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위원회 전문가 패널은 2019년 3월 12일(현지시간) 발표한 보고서에서 북한 선박의 제재 위반이 계속되고 있다고 밝혔다. 사진은 2018년 8월과 9월 베트남 인근 통킹만에서 화후호가 북한 백양산호(오른쪽 사진 위쪽 선박)과 불법환적을 하고 있는 모습. 유엔 안보리 대북제제위 보고서 캡쳐

정부도 경위 파악에 나섰다. 아직 유엔 안보리 차원에서 한국 정부에 공식적으로 관련 문의나 정보 요구를 한 바는 없지만 선제적으로 선사 관계자에 대한 조사와 계도 활동을 했다는 입장이다. 또한 한국 선사도 선박 판매 시 주의를 기울였어야 하지만 북한으로 배가 넘어갈 것을 모른 채 중국 측에 판매한 행위만으로는 제재 저촉 소지가 없다고 보고 있다. 선사 측은 "2019년 우정호('신평5호'의 과거 이름)를 중국에 팔았을 뿐 따로 현장 실사를 간 적은 없으며 이후 배가 북한으로 간 줄도 몰랐다"는 입장이다.  
외교부 당국자는 3일 기자들과 만나 "정부는 국제사회와의 긴밀한 공조하에 안보리 결의를 충실히 이행한다는 방침"이라며 "정부는 북한의 안보리 제재 회피 동향을 긴밀하게 주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미국의소리(VOA) 방송은 2일 보도에서 북한이 남포항에 새로운 유류 하역시설을 건설을 건설하고 있지만 기존의 시설에 드나드는 유조선은 올해 들어 단 2척에 그치는 등 사실상 유조선 왕래는 끊기다시피 했다고 분석했다.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외화 고갈과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로 유류 반입이 어려워진 상황에도 북한이 중국을 통해 유조선을 아예 사들이는 방식 등으로 제재를 피하고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박현주 기자 park.hyunju@joongang.co.kr 
공유하기

중앙일보 뉴스레터를 신청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