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한 손에 ‘골드바’ 다른 손엔 ‘달러’…부자들의 인플레 쇼핑법

중앙일보 2021.06.03 06:00
인플레 공포로 금융시장 변동성이 커지자 자산가들은 달러와 금 등 안전자산 비중을 늘리고 있다. 중앙포토.

인플레 공포로 금융시장 변동성이 커지자 자산가들은 달러와 금 등 안전자산 비중을 늘리고 있다. 중앙포토.

#1. 중소기업을 운영하는 A(68)사장은 지난달 초 서울 종로3가 한국금거래소 직영점에서 1k 짜리 골드바(금괴)를 18개 사들였다. 금액으로 따지면 14억원이다. A사장은 “금융시장이 출렁일 때는 금(金)만 한 게 없다”며 “장기간 갖고 있으면 금값은 오른다는 믿음이 있다”고 말했다.  
 
#2. 50억원 상당의 금융자산을 보유한 사업가 B(70)씨는 지난 1일 거래 은행을 찾았다. 달러 약세로 환율이 달러당 1110원 아래로 떨어진(원화 가치 상승) 소식 때문이다. B씨는 곧바로 달러예금에 1억원을 입금했다. B씨는 “연말로 갈수록 테이퍼링(자산매입 축소) 우려 등으로 달러가치가 오를 것으로 본다”고 했다.  
 
최근 고액 자산가는 안전자산인 금과 달러를 사들이고 있다. 세계적으로 인플레이션(물가상승) 공포가 엄습하는 가운데 테이퍼링 우려까지 점점 커지고 있어서다. 금융시장 변동성이 더 커질 것을 대비해 부자들이 발 빠르게 자산 재조정(리밸런싱)에 나선 것이다. 
 
주명희 하나은행 아시아선수촌PB센터지점장은 “이미 올해 초부터 주식·펀드를 차익실현해 위험자산 비중을 낮춘 고객이 많다”며 “이들은 대신 금이나 달러 등 안전자산은 전체 자산의 10% 가까이 늘리고 있다”고 말했다. 
 
김인응 우리은행 영업본부장도 “자산가들은 재산 지키는 게 가장 중요하다”며 “경제에 대한 불확실성이 커지면 현금 보유를 늘리고 실물자산에 투자하는 경향이 있다”고 덧붙였다.  
 

부자들은 3월부터 골드바 쇼핑

다시 반짝이는 금값.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다시 반짝이는 금값.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자산가가 선호하는 1kg짜리 골드바는 불티나게 팔리고 있다. 송종길 한국금거래소 전무는 “자산가들은 금값이 연중 최저가로 떨어졌던 지난 3월부터 몰리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연초 이후 지난달까지 골드바를 포함한 금 판매액(매출액)은 1조1000억원에 이른다. 지난해 1년간 벌어들인 금액(1조8200억원)의 60%를 다섯 달 만에 채운 셈이다.  
 
윤정아 신한PWM강남센터 팀장은 “인플레이션 우려가 커지면서 (고객들이) 헤지 수단으로 금 투자 비중을 적극적으로 늘렸다”고 말했다. 지난달 비트코인 가격이 수차례 급등락하며 롤러코스터를 탄 점도 반사이익으로 작용했다. 
 
김소현 대신증권 연구원은 “(투자금은) ‘디지털 금’으로 불리던 비트코인의 가격 변동성이 커지자 전통적 인플레이션 헤지 자산인 금으로 이동했다”고 얘기했다. 돈이 몰리면서 금값도 오름세다. 2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금 1g은 6만8040원에 거래됐다. 연중 최저가인 3월 5일(6만2300원)과 비교하면 9.2%가량 올랐다.  
 

‘쌀 때 사자’ 수요에 7조 몰린 달러 예금

돈 몰리는 달러예금.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돈 몰리는 달러예금.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자산가들의 위험자산 선호도가 낮아지며 손에 쥐는 현금은 늘어나는 모양새다. 특징은 원화 대신 달러를 선호한다는 것이다. 올해 들어 원화값이 크게 오를 때마다 자산가들의 달러 매수 주문이 늘고 있다는 게 은행권 프라이빗뱅커(PB)들의 공통된 목소리다. 달러 가치가 쌀 때 미리 사두겠다는 의미다. 
 
2일 서울 외환시장에서 달러당 원화 가치는 전날(1105.9원)보다 7.4원 하락한 1113.3원으로 거래를 마쳤다. 달러 강세로 원화 값이 연중 최저가였던 3월10일(1142.7원)에 비하면 2.6% 올랐다.  
 
주명희 센터장은 “고객 대다수가 하반기부터 미국이 풀었던 돈을 죄는 신호가 나타나면 달러값이 반등할 것으로 본다”며 ““달러당 원화가치가 1110원 선을 뚫고 오를 때마다(환율이 떨어질 때마다) 분할매수 하려는 투자자가 많다”고 말했다.  
원화값 움직임.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원화값 움직임.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달러의 인기는 숫자로도 드러난다. 지난달 4대 시중은행(국민ㆍ신한ㆍ우리ㆍ하나은행)의 달러 예금 잔액은 올해 최대 규모인 554억700만 달러(약 61조7000억원)다. 지난해 말(490억5500만 달러) 이후 다섯 달 사이 63억5200만 달러(약 7조761억원)가 불어났다.
 
상당수 전문가는 하반기로 갈수록 달러 상승 압력은 커질 것으로 본다. 백석현 신한은행 이코노미스트는 “연말까지 테이퍼링 이슈나 채권 금리 오름세가 이어져 달러 약세(원화 강세)가 지속하긴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민경원 우리은행 연구원은 “세계적으로 경제회복 속도가 가장 빠른 미국이 가장 먼저 테이퍼링에 나설 것으로 예상한다”며 “올 연말까지 원화값은 달러당 평균 1140원까지 하락할 것”으로 전망했다.
 

염지현·윤상언 기자 yjh@joongang.co.kr      
공유하기

중앙일보 뉴스레터를 신청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