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갈 곳 잃었던 가파도 찰보리…140톤 전량 수매자 찾았다

중앙일보 2021.06.03 06:00
가파도 보리밭. 사진 홈플러스

가파도 보리밭. 사진 홈플러스

 
바다 건너 한라산과 산방산 등 제주의 모든 산 9개가 한눈에 담기는 곳, 연간 약 4만명이 찾는 가파도, 바로 청보리의 본산이다. 제주 모슬포항에서 지난 1일 뱃길 따라 10분 남짓만에 도착한 가파도에는 기대했던 초록색이 아닌 황금색 들판이 펼쳐져 있었다. 신록이 창취했던 보리밭에는 추수 때 잘려나가고 남은 노란 보릿대가 여행객을 맞았다. 
 

해풍 맞아 병충해 적고 100% 무농약 재배 

가파도는 보리 천국이다. 약 300명이 거주하는 이 작은 섬은 전체 면적(0.9km²)의 65%가 보리밭이다. 주민도 대부분 보리농사를 짓는다. 과거엔 ‘보리 방학’도 있었다. 부모가 모두 보리밭에 일하러 나가니 집에서 동생들을 돌보도록 하기 위해서다. 가파도에서 나고 자라면서 평생 보리농사를 지었다는 김동옥(65) 씨는 “우리에게 보리는 인생 그 자체”라고 했다. 이날 마지막까지 보리밭을 지키던 보리는 막바지 추수에 나선 김씨의 콤바인에 우수수 잘려나갔다.
 
보리는 12월에 씨를 뿌려 청보리 축제가 열리는 3~4월에 푸르름이 절정에 달하고 노랗게 익는 5월 중순부터 수확하기 시작한다. 여름을 앞둔 6월의 첫날, 가파도가 때 이른 가을 정취를 풍긴 이유다. 가파도의 비옥한 화산 토양과 따뜻한 기후는 보리 생육에 최적화되어 있다. 특히 365일 바다에서 불어오는 해풍으로 병충해가 적어 100% 무농약으로 재배한다. 그래서 다른 지역 보리보다 비싸다.  
 
그러다 지난 2018년 가파도 농민들의 생계가 막막해졌다. 값싼 해외산 유입 등으로 보리 가격이 전년보다 30% 폭락하면서다. 공급이 많아지니 비싼 보리를 찾는 이들은 없었다. 싼값에 넘긴다고 해도 유통업자들은 물류비용 등을 이유로 농민들에게 쉽사리 손을 내어주지 않았다. 김 씨는 “제발 좀 사 달라고 사정하다시피 해서 일부 물량만 겨우겨우 팔았다”고 말했다.
 

“농민은 판로 확보…홈플은 좋은 상품 확보”

제주시의 진생영농조합법인 본사에서 가파도 찰보리 포장 작업 중인 직원. 사진 홈플러스

제주시의 진생영농조합법인 본사에서 가파도 찰보리 포장 작업 중인 직원. 사진 홈플러스

 
판로가 막혀 애를 태우던 가파도 주민들에게 ‘은인’이 나타났다. 가파도 보리를 전량 수매한 이명훈(46) 진생영농조합법인 대표다. 가파도 보리는 상품성은 있었지만, 이 대표 역시 소비자에게 직접 팔 길은 막막했다. 수소문 끝에 농협중앙회의 소개로 홈플러스와 연이 닿았다. 찰보리 전량 수매 계약이 성사됐다. 찰보리는 찰기가 있어 주로 쌀밥과 섞어 먹고 부드러운 식감과 단맛이 특징이다. 수확한 보리는 진생영농조합의 RPC(미곡종합처리시설)를 통해 도정과 풍무(바람으로 씻기는 작업)를 거쳐 선별, 품질 검사까지 마친 후 홈플러스 매장으로 옮겨진다.
 
이렇게 홈플러스가 전량 사들여 판매한 가파도 찰보리는 지난해 3개월 만에 2만 포대(한 포대 2㎏ㆍ4990원)가 모두 완판됐다. 가파도는 지난해엔 찰보리와 겉보리(사료용이나 맥주용)를 6대 4 비중으로 재배했지만, 올해는 찰보리만 재배했다. 이에 따라 홈플러스는 전년 물량의 두 배 수준인 140톤을 전부 사들여 6월 중순부터 판매한다. 홈플러스 관계자는 “가파도 농가는 판로 걱정 없이 보리 재배에만 전념할 수 있고, 홈플러스는 좋은 보리를 합리적인 가격에 판매해 좋은 평을 얻게 됐다”고 말했다.
 
추인영 기자 chu.inyoung@joongang.co.kr

관련기사

공유하기

중앙일보 뉴스레터를 신청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