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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4000개 팔린다, 요즘 강릉 여행 잇템 '순두부젤라토'

중앙일보 2021.06.03 05:00

손민호의 레저터치

요즘 강릉에서 가장 인기가 높다는 순두부젤라토. 사진은 순두부젤라토를 맨 먼저 만든 '초당소나무집'의 순두부 인절미젤라토다. 손민호 기자

요즘 강릉에서 가장 인기가 높다는 순두부젤라토. 사진은 순두부젤라토를 맨 먼저 만든 '초당소나무집'의 순두부 인절미젤라토다. 손민호 기자

격세지감을 느꼈다. 지난주 강원도 강릉에서였다. 강릉에서도 경포호수와 강문 해변 사이 솔숲에서였다. 이 솔숲 있는 마을의 이름이 초당동이다. 그래, 초당 순두부의 그 초당이다. 
 
초당 순두부는 원래 한 인물에서 비롯됐다. 조선 중기 문인 허엽(1517∼1580)의 아호가 초당(草堂)이다. 허엽은 모르는 사람이 많지만, 허엽의 아들과 딸은 아는 사람이 많을 테다. 아들이 국내 최초의 한글 소설 『홍길동전』을 쓴 허균(1569∼1618)이고, 딸이 비운의 천재 시인 난설헌 허초희(1563~1589)다.  
강릉 허난설헌 생가. 초당 솔숲 언저리에 생가를 조성했다. 손민호 기자

강릉 허난설헌 생가. 초당 솔숲 언저리에 생가를 조성했다. 손민호 기자

허균ㆍ허난설헌 기념 공원에 있는 허난설헌 동상. 천재 시인이었으나 요절했다. 손민호 기자

허균ㆍ허난설헌 기념 공원에 있는 허난설헌 동상. 천재 시인이었으나 요절했다. 손민호 기자

초당이 강릉 부사로 내려왔을 때 일이다. 관청 뜰의 우물물이 유난히 맛이 좋았다. 이 우물물로 초당은 두부를 만들어 먹었다. 끓인 콩물을 응고시켜 두부로 만들려면 간수를 넣어야 하는데, 강릉에서는 소금이 귀했다. 초당은 바닷물을 길어와 간수로 썼다. 초당 두부가 탄생한 비화다. 
 
400여 년 전 일화에 신산한 현대사가 더해진다. 한국전쟁 직후 지금의 초당동에는 피란민이 모여 살았다. 먹고살 게 마땅치 않았던 피란민이 만들어 팔았던 게 두부다. 여전히 바닷물로 간수를 썼다. 초당 두부는 1970년대 이후 상업화됐다. 초당 순두부 마을의 원조로 통하는 ‘초당할머니순두부’가 1979년 영업을 시작했다.  
초당 순두부. 바닷물로 간수를 쓰는 게 초당 순두부의 특징이다. 중앙포토

초당 순두부. 바닷물로 간수를 쓰는 게 초당 순두부의 특징이다. 중앙포토

허엽이 지금의 초당동에 살았는지는 불분명하다. 그러나 초당 두부의 전통은 이 솔숲 있는 마을이 계승했다. 하여 마을 이름도 초당이다. 허균·허난설헌 기념 공원도 솔숲 안에 있다. 그래서 강릉에 가면, 강문 해변에서 해맞이를 한 뒤 초당 마을에 들어가 순두부 아침을 먹고 허난설헌 생가를 들렀다가 솔숲을 거니는 게 오래된 여정이었다. 여행기자에게 초당에서의 아침은, 하얗거나 빨간 순두부찌개와 모두부 한쪽이었다. 
 
요즘 젊은 세대는 아니다. 초당 순두부를 즐기는 방법이 딴판이다. 자극적인 맛의 짬뽕 순두부와 한상 거하게 나오는 순두부전골 정식이 더 인기다. 강릉시 강근선 관광과장은 “평창올림픽 이후 부쩍 늘어난 초당 순두부 집들이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메뉴를 다양화한 결과”라고 말했다. 초당에는 지금 서른 곳이 넘는 순두부 집이 모여 있다.   
'초당소나무집'의 순두부젤라토와 인절미젤라토. 흑임자젤라토까지 세 종류가 인기가 높다는 데 흑임자젤라토는 이미 다 팔렸다고 했다. 손민호 기자

'초당소나무집'의 순두부젤라토와 인절미젤라토. 흑임자젤라토까지 세 종류가 인기가 높다는 데 흑임자젤라토는 이미 다 팔렸다고 했다. 손민호 기자

여기까진 알겠는데, 순두부로 아이스크림을 만들어 먹을 줄은 몰랐다. 순두부젤라토. 요즘 젊은 세대의 강릉 여행 잇템이다. 인스타그램을 검색해봤더니 관련 게시물이 6만 개가 넘었다. 온통 먹방 인증사진이었다. 순두부젤라토를 맨 처음 개발한 ‘초당소나무집’을 찾아갔다. 어머니 최문선(61)씨의 순두부 가게에서 아들 김범준(32)씨가 2017년 만든 게 시초였다.
 
“축구를 했었습니다. 독일로 축구 유학을 갔다와서 어머니를 도와드리다 젤라토를 만들었습니다. 독일에서 자주 먹었으니까요. 아침마다 어머니가 만드는 순두부에 이탈리아에서 수입한 원료로 젤라토를 만듭니다.” 
'초당소나무집'의 최문선 대표와 아들 김범준씨. 어머니가 날마다 만드는 순두부로 아들이 젤라토를 만들고 있다. 손민호 기자

'초당소나무집'의 최문선 대표와 아들 김범준씨. 어머니가 날마다 만드는 순두부로 아들이 젤라토를 만들고 있다. 손민호 기자

순두부젤라토가 인기를 끈 건 평창올림픽 이후 젊은 세대가 강릉을 찾으면서부터다. 코로나 사태 이후 오히려 손님이 더 늘었다. 하루 4000개가 팔린 날도 있었단다. 지금 초당동에는 젤라토를 파는 순두부집이 열 곳이 넘는다. 신경이 쓰일 법도 한데 막상 원조 집은 느긋하다. 다들 알아서 원조 집을 찾아온단다. 
 
애초의 초당 순두부는 한이 서린 음식이다. 정쟁에서 밀려 대관령 너머까지 쫓겨온 초당이 만들어 먹었고, 전쟁에서 남편을 잃은 아낙들이 만들어 팔았던 음식이다. 이제는 아니다. 순두부젤라토 먹으려고 긴 줄을 선 젊은 세대의 얼굴은 하나같이 밝았다. 음식에 밴 사연 따위는 개의치 않는 표정이었다. 젤라토 한입 떠먹다가 격세지감을 실감했다. 순두부젤라토가 정말 고소했다. 
 
레저팀장 ploves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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